대구에 내려와서 처음 대구구장을 봤을 때의 인상을 아직도 기억한다. 잠실구장을 주로 다니며, 고교시절 동대문 운동장의 추억까지 가지고 있던 나에게 "대구구장"은 참 작은 야구장이었다.

거기에 인조잔디는 또 어떤가? 동대문의 그것과 다름없었던, 딱딱한 느낌의 그라운드는 보기에도 위험했다.

우리 프로야구에서 가장 많이 가을야구를 펼쳤던 공간인데.

직접 눈으로 본 그곳의 여건은 너무나 어이없었고, 한편으로는 서글펐다. ‘우리 야구의 수준과 현실이 여기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2005년과 2006년,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던 순간에도 경기장의 수준은 최하위에 머물렀다.

2007년 개막과 함께 변화는 있었다.

선수들의 부상을 유발했던 낡은 잔디가 최신형 장파일 인조잔디로 전면 교체됐고, 무너질듯 허름하던 덕아웃은 천장을 높였다. 관중석에도 변화는 함께했고, 테이블석 신설 등, 여러 변화들이 함께했다.과거의 모습이 너무 허름했기에 느끼는 만족도겠지만, 나름의 만족도는 높아졌고, 그럭저럭 몇 년은 견딜 만 하다는 생각도 했다.

새로 고치며 아쉬웠던 중앙 본부석 앞의 굵은 그물. 중계할 때 화면에 상당히 거슬리는 요인이다.

직접 그라운드에서 뛰어야 하는 선수들이 더 그렇겠지만, 모두의 마음속에는 "조금만 더 이곳에서 참으면 된다"라는 막연함이 있었다. 늘 우승의 뒤에 따르는, 선거의 공약으로 함께하던, 야구개막 시즌마다 퍼져나오던, "대구구장 신축"에 대한 이야기.

뉴스는 늘 희망적이고, 확정적이며, 확신가득했다. "구장 신축 확정"-사실은 궁극적으로 지어야 한다는 결정을 했다는 거, 그럼 궁극적으로 신축하지 맙시다..라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나?-,

"새 야구장 부지 최종결정"-선정위원회가 부지를 결정했단 말이다. 선정위원회의 결정 사안은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이란다.-

"돔구장으로 결정, XXX이 투자"-결국은 무산됐던 양해각서(MOU) 체결에 대한 이야기, 우선 협상을 하겠다는 정도의 이야기다.-

늘 반복되는 이 야구장 낚시(?). 지겨웠고, 일하는 의욕도 없었다.

그러나 지난겨울은 달랐다.

무엇보다 대구구장의 주인공인, "삼성"이 움직였고, 다른 지자체에 비해서는 그나마 똑똑하게 움직이는 대구시였다. -그간의 많은 실패 덕분이다.- 2014년이란 이야기도 있었고, 상당히 구체적인 청사진도 나왔다. 무엇보다 돈을 어떤 식으로 마련할지가 정해졌다.

사람들은 3년 정도 뒤, 새로운 야구장을 보리라 기대했고, 확정된 사실처럼 받아드리며 새로운 야구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야구장 신축공사가 시작됐거나, 곧 시작되는 줄 알고 있다.-

유일한 대구구장의 장점, 해질녘의 노을풍경. 3루 뒤쪽으로 지는 해는 아름답지만, 이런 각도의 풍경을 본다는 건, 애초부터 야구장을 잘못 지었다는 증거다.
하지만. 이상한 이야기가 스물스물 들려온다. 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공사는 커녕 원론적 문제에 부딪혔다. 돈도 해결됐고, 시도 적극적인데. KBO나 야구인들도 한목소리인데... 누가 문제를 말한 건가? 그 주인공은 바로 대구시의회, 문제제기의 이유는 '새 야구장의 입지선정 과정에서 절차상 하자가 있다'라는 건데..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대구시의회 건설환경의원회는 이번 부지선정에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부지선정을 위한 기본 계획 자체에 제동을 걸었다는 거. "국토해양부가 정한 기준에 따라 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자문위원회 의결로 결정했기에 절차상의 하자가 명백하다"란다.

결국, 그런 이유들을 모아, "그린벨트 해제 등 도시관리계획변경 동의안을 보류했다"라는 결정을 말했단다. 그 이유만이라면 다행이다. 얼릉 알아보고, 현명한 답을 찾아주면 된다. 하지만, 이유가 과연 그것뿐일까?

수성구로 정해진 새 야구장 신축에 대해 다른 지역의 입김이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가 그것!

특히나 유력한 후보지 가운데 하나였던 "두류공원" 인근의 지역 정치인들의 반대나 불만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불꺼진 야구장 앞에선 금방이라도 야구장을 지을 기세로 떠들더니, 결국 이럴줄 알았다.
도대체, 정치적 희생양으로 대구가 희생된다는.. 그들의 외침은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인가?

그런 정치 논리로 목이 터지도록 외쳤던 "신공항"이나 "과학벨트" 등을 놓쳤고, 그런 정부를 비난하며 피해자라고 울부짖던 대구시. 스스로도 그런 모습에 빠져있는 거 아닌가? 스스로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고 풀어가는 과정에서도 서로 다투고, 결정을 못하는 건 아닌지.

남의 결정과 선택에는 비난하면서 자신들의 행동과 결정은 당연한 의사결정이라 여기는 건 아닌지. 이 모든 것에서 무기력하게 시간만 보내고, 아무런 결과를 만들지 못하는 대구시의 무능은 또 얼마나 답답한지.

정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답답하다. 갑갑하다. 야구는 어김없이 펼쳐지지만, 그 안에 희망은 또다시 절망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러면서도 야구장에 뻔뻔하게 나타나 가슴에 꽃을 달고, 시구를 하고, VIP석에서 돈도 내지 않고 야구를 보겠지. 그것이 그들의 수준이다.

대구구장의 초라함과 그 수준은 다름이 없다.

스포츠PD, 블로그 http://blog.naver.com/acchaa 운영하고 있다.
스포츠PD라고는 하지만, 늘 현장에서 가장 현장감 없는 공간에서 스포츠를 본다는 아쉬움을 말한다. 현장에서 느끼는 다른 생각들, 그리고 방송을 제작하며 느끼는 독특한 스포츠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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