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일은 드라마 완성도는 크게 기대할 바 되지 못한다. 죽음 이후를 다루는 판타지적 전제에 대해서 동의를 한 애청자라 할지라도 중요한 플롯변화에 대해서 의아한 부분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그런데 어차피 전제된 것이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오히려 생 오렌지 쥬스 속에 알갱이가 입안에서 씹힐 때 새삼 새콤함을 느끼는 것 같은 기분 좋은 불편함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한강이 송이경 속에 신지현을 발견하게 되고, 심지어 49일 여행의 비밀까지 알아차리게 되는 과정은 보는 사람마저 살짝 부끄러워질 정도로 작가의 독주가 심했던 부분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한강이 끼어들지는 않고는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빙이경(신지현 빙이된 송이경)을 현실적으로 도와 환생을 가능케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개연성을 따질 여지가 없다. 그러면서 이 드라마는 신지현의 초긍정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파스텔톤의 판타지보다 어쩐지 심령 드라마로 모습을 바꾸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물체에 직접 접촉이 안 되는 영혼 상태의 신지현을 옷을 걸던 송이경이 느끼는 부분에서 난데없이 싸늘한 체감을 느낀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것이 20일 정도 몸을 공유하고서 익숙해져서 그런 것인지 아직 이유가 설명되지는 않지만 앞으로 송이경, 송이수 커플이 금지된 기억의 장막을 뚫고 5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복선의 의미를 감지케 한다. 49일은 신지현이 삶을 되돌려 받는 과정을 통해서 송이경, 송이수 커플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진짜 주제로 감추고 있다는 것은 다 아는 부분이다.

신지현은 그런 송송 커플 사이에서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이러저러한 인과관계가 행복하고도 슬픈 결말을 짐작케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송이경이 전과 달리 신지현의 존재를 조금씩 느끼도록 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생각보다 아주 빨리 전개됐다. 며칠 동안 강민호의 집에 영혼상태로 있다가 돌아온 신지현은 송이수 생각에 서럽게 우는 송이경을 보며 덩달아 목 놓아 운다. 그런 밤을 보내고 아침에 눈을 뜬 빙이경은 가장 먼저 송이경의 졸업앨범을 찾아 송이수를 찾아냈다.

그런데 앨범 속 송이수는 스케줄러와 너무 많이 닮아있음을 발견했다. 그걸 알고 가만있을 신지현이 아니었다. 금세 쪼르르 달려가 앨범을 펼쳐들고 스케줄러에게 보여준다. 그러자 스케줄러는 경악하는 표정을 지으며 “이거 난데...”한다. 물론 그렇다고 단박에 스케줄러가 송이수로서의 기억을 되찾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스케줄러는 신지현과의 대화를 통해서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기억의 금단에 대해서 강력하게 말하기도 했다.

아마도 스케줄러로서의 송이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사후세계의 법도에 따라 당장은 놀랍지만 송이수에 대한 관심을 접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송송커플의 메신저가 될 신지현이 집요한 추적과 오지랖으로 차츰 닫혀진 기억을 향해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게 될 것을 짐작하게 된다. 그런 한편 송이경은 정신과 의사를 통해서 지난 5년간 닫아두었던 기억을 찾는 노력을 하고 있다. 송이경과 신지현의 서로 다른 노력이 결국 하나의 지점. 스케줄러 송이수로 모아질 때 49일은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결말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구조 속에서 49일이 가진 특징이 하나 발견된다. 드라마로서는 특이하게 여여커플의 관계가 점점 더 애틋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남의 몸을 빌려야 한다는 것이 미안한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송송커플과 신지현이 갖고 있는 아주 특별한 인연에 대한 궁금증도 생기게 한다. 아직은 진안여행을 통해서 송송커플의 타로점을 봐준 신지현의 과거 장면 정도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더 있을 것이라 짐작하게 된다.

아무튼 송이경이 송이수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오열할 때 신지현은 자기의 아픔인 양 함께 울어주고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위로하듯이 애절한 몸짓으로 송이경을 만지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지현이 워낙 착한 캐릭터이기도 했지만 송이경의 아픔을 대하는 것은 그런 천성 이상의 애틋함을 느끼게 한다. 물론 신지현과 송이경은 세상에 둘도 없는 아주 특별한 인연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신지현의 순수한 눈물이 49일을 여전히 동화적 터치를 유지시켜 주는 데 한몫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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