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그랬던 것처럼, <수영장>을 접하기 전에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전작을 떠올릴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카모메 식당, 안경>에서 호흡을 맞춘 고바야시 사토미와 모타이 마사코가 출연하거든요. 실제로 <수영장>은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우선 여자들이 주요 등장인물이고, 이국을 배경으로 하였으며, 당연하게도 일본영화 특유의 정서가 가미됐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기가마 나오코 감독의 작품을 기대하고 갔다간 적잖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쯤은 보시길 권해드리고 싶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카모메 식당>의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이 핀란드를 택했다면, <수영장>의 오모리 미카 감독은 태국으로 향했습니다. 쿄코는 태국에서 수영장이 딸린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귀한 손님이 오는지 아침부터 분주하게 시간을 보내는데, 알고 봤더니 이곳으로 오면서 떨어져 살았던 딸인 사요가 몇 년 만에 쿄코를 만나러 왔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재회는 영 미적지근합니다. 반가워하는 내색도 없고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모녀 사이라기엔 데면데면하기만 합니다. 단 둘이 식사를 하면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이 두 사람, 과연 벽을 깨부수고 서로에게 다가설 수 있을까요?

한 마디로 말해서 <수영장>은 느림의 미학을 관객에게 온전히, 사실적으로 그리고 너무나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영화입니다. <카모메 식당>의 핀란드가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라면, <수영장>의 태국은 너무나도 한가롭고 평온한 공간입니다. 이곳에서는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를 태국의 풍광으로 돌리는 것은 <카모메 식당>에서 토미가 핀란드의 숲을 운운하던 것과 흡사합니다. 다만 <수영장>의 오모리 미카 감독은 인물의 대사를 빌리는 대신에 종종 배경과 인물을 롱 테이크로 담아냅니다.

예를 들어 <수영장>은 아침에 일어난 사요가 하릴없이 주방의 의자에 앉아 하품을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거는 장면을 생략하지 않고 모조리 잡아내고 있습니다. 아울러 카메라가 돌아가는 세탁기를 응시하는 장면 또한, 이토록 평화로운 곳에서 정적을 깨는 것이라곤 이것이 유일하다는 의사의 표현인 것만 같습니다. 이런 방식의 연출이 <수영장>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외려 이것이야말로 감독의 의도가 100% 반영된 연출입니다. 보고 있노라면 프레임 안의 인물이 태국이라는 나라에서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태국이 어떤 곳인지 절절하게 전달됩니다. 태국을 가본 사람이라면 마치 화면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마저 하게 될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수영장>은 잔잔하다 못해 고요하기까지 한 영화입니다. 오가미 미카 감독은 풍경뿐만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을 다루는 데 있어서도 정적인 연출로 일관합니다. 사요는 자신을 내버려두고 떠났던 엄마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창 엄마의 손길이 필요할 나이에 헤어져야 했으니 그럴 만도 하고, 막상 그렇게 사라진 엄마는 타지에서 타인과 잘도 어우러지며 아무렇지 않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딸인 자신을 버려두고서 엄마가 그렇게 지냈다는 걸 알게 되니 울화가 치밀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쿄코는 분명 인자할지언정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엄마입니다.

그렇다면 쿄코와 마주한 사요가 울분을 토해낼 법도 하건만, 감정을 억누른 채로 잠시 옅은 성토를 쏟아내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나마 이에 대한 답변으로 돌아오는 쿄코의 반응은 여전히 무책임하게 보이까지 합니다. 이렇듯 <수영장>의 갈등을 내포한 두 사람은 지난날에 대한 회한으로 껴안으며 눈물을 흘리지도 않지만, 제대로 된 대화조차 오가지 않습니다. 이 장면은 이를테면 부모와 자식간에 긴 말을 나누지 않아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일 듯합니다. 혹은 태국의 정취 안에서라면 누구라도 삶을 달관한 자세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기도 하겠죠.

이건 연출의 일관성이나 배경과 인물의 심리 사이에 밀접한 연관을 뒀다는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관객의 입장에서는 조금 더 명확한 인과관계를 원하고, 그렇게 해야만 설득력이 갖춰진 내러티브가 완성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의도적으로 생략된 <수영장>이 마치 불가의 가르침을 설파하는 듯한 영화로 보이더라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요컨대 <수영장>은 태국이 가진 배경적 특성에 영화의 8할을 기대고 있습니다만, 나머지 2할이 빈약하다 보니 핵심이 퇴색하고 말았습니다. 개인적으론 범작 이하로 취급하고 싶지 않으나 보편적인 취향에 걸맞은 영화는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

덧) 혹시 제목이 왜 <수영장>인지가 궁금하신 분들은, 일반적인 의미가 아니라 영화에서의 그것을 찾아보도록 하세요.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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