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공격합니다. 제일 큰 형 강호동은 형제들을 대표해서 매번 오프닝마다 불만을 토로하고, 다른 멤버들 역시도 게임이나 가혹한 환경들 때문에 볼멘소리를 털어 놓습니다. 심지어 이번 주 미션 중 하나였던 노래방 점수 맞추기를 수행하던 이수근은 재치 있는 가사와 함께 위협을 가하죠. 그들이 그토록 가열차게 공격하는 대상은 모두 동일합니다. 이 프로그램의 총 지휘자이자 수장. 그리고 진정한 메인 MC 나영석 PD에요.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이 수행하는 수많은 고행, 힘들다 못해 고통스럽고 불가능해보이기까지 한 미션들과 여행지들을 결정하고 이를 출연진들에게 부과하는 주체는 바로 나PD이기 때문이죠. 이번 주만 해도 그렇습니다. 봄철맞이 최고의 밥상이라는 봄동비빔밥을 맛보기 위해 인형 눈 100개를 붙이고, 108배를 하고, 점수도 안 나오는 노래방 기기를 붙잡고 씨름을 합니다. 2분 안에 자장면을 먹게 하고 고깔과자를 5초 안에 먹으라는 둥, 테트리스 최고점을 넘기라는 유치하면서도 괴이한 기준을 제시하고 가차 없이 잘라버리죠. 왜 이리 삭막하고 깐깐하냐며, 뭐 그리 그런 것을 다 시키냐며 원망과 짜증을 말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단지 짜증난다고, 너무한다고 나PD를 공격하고 원망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겉으로야 막무가내로 보이고 단순한 것 같아 보이지만, 330회를 넘는 시간동안 각종 구설수와 산전수전을 거치며 손발을 맞춰온 이들 능숙한 1박2일의 사람들은 실제로는 그렇게 우둔하지도 엉성하지도 않는 똑똑한 이들이거든요. 근래 들어 급증한 나PD를 향한 푸념과 공격의 이유의 이면에는 이탈과 하차, 교체와 영입을 반복하고 이제야 자리를 잡기 시작한 1박2일의 새로운 6인 체제와 캐릭터의 변화에도 그 이유가 숨겨져 있어요.

하나의 이야기를 뽑아내고, 그것을 진행해나가기 위해서는 일정한 패턴과 규칙, 그리고 그에 걸맞은 캐릭터와 관계가 필요하단 것이죠. 뭐든 받아주는 선한 역이 있으면 삐뚤거리며 사고를 만드는 악역이 있는 법이고, 문제를 일으키면 수습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만만하고 순진해서 괴롭히는 맛이 있는 순둥이의 맞은편에는 계략을 꾸미고 곤란한 곳에서 슬슬 빠져나오는 꾀돌이도 있는 거구요. 각기 다른 캐릭터란 결국 서로간의 관계를 통해 재미를 만드는 장치거든요.

그런데 현재 1박2일에선 이런 악당 역할을 감당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허당 이승기나 순둥이 엄태웅은 거리가 멉니다. 처음부터 줄기차게 악당 캐릭터를 맡아주던 강호동은 그와 톰과 제리 역할을 해주던 MC몽이 빠지고, 엄마 역할을 하며 전체를 조율해주던 김C가 하차하면서 힘이 떨어졌습니다. 국민앞잡이로 떠오르며 악당 역할에 가능성을 보여주던 이수근은 몇 차례의 무리수와 논란으로 몸을 사릴 수밖에 없고, 은초딩의 성향은 철이 없는 말썽꾸러기일 뿐, 악인은 아니죠. 어설프게 도전했던 김종민은 시청자들에게 욕만 얻어먹고 포기하고 말았구요.

애초에 착한 예능, 긍정적이고 친숙한 이미지를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는 1박2일에서 출연자들에게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역할을 지속적으로 맡길 수는 없는 일이죠. 게다가 3대 3의 짝수 대결 구도가 무너진 오랜 혼란기 동안 팀플레이를 기반한 악동 플레이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구요. 그런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처음에는 진행 보조로 시작했지만 조금씩 출연 지분을 넓히면서 1박2일을 출연 연예인뿐만이 아닌 촬영 스텝으로까지 확장한 주동자인 나영석 PD가 그 악역의 짐을 짊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입니다. 이제 나PD는 연출자 이상의, 출연 연예인과 같은 비중의 필수적인 출연자가 되어 버렸거든요.

그러니 멤버들의 나영석 PD를 향한 공격은 단순히 수행 미션에 대한 불만이라던지, 힘겨운 상황을 못 견뎌서 내뱉는 투정 이상의 것이란 거죠. 나PD를 공격할수록, 제작진과 척을 두며 아기자기한 경쟁, 혹은 대립 구도를 형성할수록 시청자들의 공감과 일치감을 고양할 수 있는, 악역에 맞서는 착한 이들의 버라이어티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겁니다. 신입생 순둥이 엄태웅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그리고 겨우 흐름을 타기 시작한 김종민이 자기만의 색깔을 확고하게 할 수 있을 때까지 나영석 PD의 악역놀이는 계속될 겁니다. 멤버들의 공격 역시도 끊이지 않을 것이구요. 만약 올해 연말의 연예대상에서 1박2일의 수상자가 나온다면 그 한자리는 나영석 PD에게 주어야 마땅합니다. 그는 이제 단순한 연출자가 아닌 이 프로그램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제7의 멤버거든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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