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손가락질을 해야 하는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양측의 정확한 발표나 입장 표명도 없는 상태이고, 설혹 그것이 발표되었다고 해도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인 결혼과 이혼 여부가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 연예인 개인의 사생활이 공인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 때문에 비난받거나 침해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이지아 측의 입장 표명이 있기는 했지만 그동안 팬들과 대중들에게 왜 그런 사실을 숨겨야만 했는지, 그 오랜 기간 거짓말을 하거나 부인하거나 숨겨온 이유에 대한 판단은 양측 당사자들의 모든 공식 입장 표명 뒤에, 그리고 정확한 사실 여부를 확인한 이후에 해도 늦지 않아요.

서태지와 이지아, 또는 정우성까지 얽혀있는, 당사자들의 이름이 주는 무게감이 큰 것뿐이지 숨겨온 부인, 혹은 자식이 있다거나 결혼 사실을 숨기는 일들은 다른 연예인들에게도 많이 보아온,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여러 번 있었던 것이 사실이니까요. 그들이 왜 그랬어야만 했는지, 혹은 그것이 정말 사실이고 어떤 과정을 거치고 있는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볼 일입니다. 연예인들의 겉과 속이 다른, 그래서 도무지 신뢰하기 점점 힘들어지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고, 그간의 대중들을 기만했던 일들에 대해서는 확실한 사과와 책임이 뒤따라야 하겠지만 팬이라고 무조건 옹호할 일도, 특정인을 매도할 일도 아니에요. 그냥 있는 그대로를 알아보고 그에 따라 판단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정작 제가 눈살을 찌푸리는 것은 이들 당사자들 사이에 얽힌 문제들이나 이상하고도 독특한(좋게 표현한다면) 그들의 가정사가 아닙니다.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그러면서도 그들의 개인사만큼이나 매우 괴이한 언론들의 태도 때문이죠. 분초단위로 쏟아지는 기사들을 읽고 있자면 이게 과연 우리가 깜짝 놀랄만한 비밀이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생기거든요. 왜 그리도 소상하게, 본말까지 완벽할 정도로 그림을 그릴 정도로 잘 알고 있던 사실을 이제서야 기자님들은 경쟁하듯이 실토하는 걸까요?

처음엔 이혼 소송이라고 했다가 이미 이혼했다는 이야기로 수정이 되고, 미국에서 14년간이나 결혼 생활 중이었다고 각종 정체불명의 지인이나 교포들의 증언을 덧붙이고, 2명이라던 자식들은 둘 다 딸이라는 사실까지 정확하게 표기해 줍니다.(이마저도 이지아 측의 입장 표명으로 오보로 판명되었죠.) 소송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었는지, 위자료 50억이 오가는 소송의 내용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충실하게 정보 제공을 해주고 있습니다. 정작 당사자들은 침묵, 또는 부인을 하고 있음에도 기자님들과 언론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태연하게 이 사건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들을 이야기해주십니다. 이래서야 아무것도 모르고 정신이 멍멍한 우리들이 보기엔 더더욱 기가 막힐 뿐이에요.

왜 알면서도 모른 척, 아닌 척 했던 건지. 아니면 사건이 터지자마자 그동안 쌓아왔던 정보들을 실토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세간의 의혹처럼 특정 정치 사건을 가리기 위한 음모라느니, 대중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쏠리게 하는 흔하디흔하게 반복된 패턴이라느니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 이전에 이건 언론의 정직성, 혹은 정보의 폐쇄성에 대한 문제거든요. 이래서야 연예인들의 삶을 믿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정보를 전달하는 언론들의 정직성과 솔직함에 의문부호를 찍을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진실을, 혹은 사실들을 그동안 모른 척, 아닌 척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번 서태지-이지아 스캔들을 통해 느낀 진정한 무서움, 섬짓함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 오랜 시간을 침묵하거나 부인하며 살아온 연예인들의 이중적인 가면도 무섭기 짝이 없지만, 우리와는 다른 정보를 이미 점유하고 있는 이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언제 어느 때라도 필요할 때면 한두 사람의, 그리고 그들을 사랑했던 이들의 관심과 마음을 한꺼번에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소름끼치거든요. 이미 다 알고 있고 짐작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그것이 눈앞에서 구구절절하게 실현되고 있는 것을 보니 무섭기까지 하네요. 특종이라는 것의 실체란 결국 그런 것이구나. 보이는 것만 믿어서는 안 되는구나를 절실하게 느끼는 어제와 오늘입니다. 이래서야 도대체 무엇을 믿고, 어떤 것을 신뢰하고 살아야 할까요? 정말 한숨만 나오는 요즘이네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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