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과 능청스러움. 연예인으로 성공하기 위한, 특히나 2011년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웃음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는 이들이 가져야 할 미덕은 바로 이 두 가지의 장점을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는 능력입니다. 물론 웃기기 위한 재치와 순발력.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캐릭터와 적응력이 기본이 되어야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는 현재의 흐름을 꽂아가기에 힘겹다는 것이죠. 우리가 지금 원하는 광대의 미덕은 단지 웃기기만 하는 사람은 결코 아니거든요.

리얼이라는 명목 하에서 그 어떤 분야에서보다도(심지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정치나 사회 지도층에게도 강요하지 않거나 포기한) 진정성과 진실성을 강요하는 한국의 예능판에서 진솔하고 솔직한, 아니면 그렇게라도 보이는 진정성 있는 이들만이 평가받고 인기를 구가할 수 있습니다. 그 성향이 이승기류의 허당이 되었든, 유재석과 강호동 같은 1인자로서 프로그램을 향한 열정이 되었든, 아니면 차라리 박명수처럼 원래 까칠해도 순박한 모습을 보여주던 간에 말이죠. 뭐라 하던지 저 사람은 정말 열심히 한다. 진실해보인다는 신뢰가 가지 않는 사람은 시청자들에게 외면받기 일쑤에요.

그렇지만 단지 진실하고 성실하기만 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리얼의 잔혹함. 자신의 모든 것을, 일부분의 모습이 과대 포장되는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맨살이 드러나고 거기에 돌을 던지는 이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필요한 미덕은 은근슬쩍 예능은 예능일 뿐, 오버하지 말자며 짐짓 그 굴레에서 능수능란하게 벗어날 줄 아는 능청스러움이거든요. 진정성이 시청자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기본 조건이라면 능청스러움은 그렇게 쌓게 된 신뢰가 주는 또 다른 위험으로부터 오래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필수 장치입니다. 우리가 지금 사랑하고 있는 수많은 연예인들, 예능인들을 보면 모두 자기만의 이런 진정성과 능청스러움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요.

2010년 거의 대부분을 예능 적응을 위한 혹독한 시간으로 버텨야 했던 김종민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이 두 가지 미덕이었습니다. 1박2일의 다른 형제들이 몸을 바치며 굴러다니는 그 전장에서 변화한 환경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태연하게, 혹은 미련하게 넋나간 모습을 보여주면서 노력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공격의 화살이 늘어날수록 어찌할 바를 못한 굳어진 모습으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도 했죠. 진정성이 있어 보이지도, 느긋하고 능글맞지도 못했던 그에게 중도하차를 요구했던 시청자들의 불만은 다소 가혹해보였지만 충분히 일리가 있는 지적이었어요.

하지만 시간과 경험은 결국 김종민에게 리얼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을 서서히 익히게 해주었습니다. 물론 그 속도가 너무 느려서 분통이 터지기도 했지만 지금의 그는 확실히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그리고 이런 성장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1박2일에서보다, 조금은 어깨에 긴장을 뺄 수 있는 공간, 라디오스타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습니다. 4명의 공격수들이 진을 치고 있는 라스에서 게스트들은 도리어 편안하게 망가지기도 하고, 위험수위의 말들을 태연하게 털어 놓으며 이전보다 더 좋은 웃음을 선사하거든요.

이전 열애설의 당사자 현영에 대한 이야기도, 그를 오랜 기간 동안 괴롭혔던 1박2일에서의 부진과 현재의 모습도, 솔로 활동 시작과 코요태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그의 언행에는 이제 망설임이나 주눅듦이 없습니다. 그가 가진 캐릭터처럼 조금은 바보스럽고 아둔한 어투로 솔직하고 거침없이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거짓이라거나 멍청하게만 보이지 않습니다. 후배들을 양 옆에 두고서 여유 있게 자신을 오픈하는 라스에서의 김종민은 살짝은 능청스러워진, 왠지 정이 가는 바보라는 우리가 사랑했던 김종민의 예전 모습이 서서히 살아나고 있음을 보여주었어요.

부활이다, 재기다, 혹은 재발견이라는 호들갑을 떨 것 없이, 이제부터의 김종민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그가 강호동의 충고처럼 얼마나 길게 보면서 방송에 임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말 몇 마디, 등락을 거듭하는 불규칙한 활약 때문에 그를 향한 비난이 싹 다 사라지진 않을 겁니다. 1년을 넘어가고 있는 욕 먹는 시간이 끝나버린 것이란 예단을 하는 것은 너무 낙관적인 기대일 거에요. 하지만 그런 매몰찬 시선보단 그냥 이제야 돌아온, 새롭게 출발한 예능인 김종민 2기의 모습을 천천히 기다리며 즐기면 그만 아닐까요? 오랜 부진, 몇몇 발언들을 꼬투리 잡으며 매몰차게 내쳐버리기엔 오직 그만이, 김종민만이 줄 수 있는 웃음의 포인트가 분명 존재하거든요. 무척이나 반갑고 즐거운 복귀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기에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이 조금은 불만스럽긴 하지만 말이죠.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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