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일까 아니면 작가의 치밀한 계산일까. 아래적 두령 강포수를 짝패 천둥과 귀동이 구해내는 최대의 사건이 전개되는 22회 방영일이 4.19와 겹친다. 그리고 그 사건을 기점으로 해서 천둥이 비로소 오랜 방황을 끝내고 의적의 길을 걷게 되니 우연이라도 예사 우연이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천둥이 의적이 될까 싶더니 마침내 그 묘수의 실마리가 보였다. 아래적 두령 강포수가 귀동의 목숨을 구하려다 오히려 공포교의 총에 맞아 포도청에 잡힌 일은 일파만파의 여파를 주변에 끼치게 된다. 강포수가 포도청에 잡히고 이후 고문을 당하는 일련의 과정이 천둥과 귀동 모두에게 심적 갈등을 가져왔지만 먼저 실행에 옮기고자 한 것은 귀동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살리고 대신 잡힌 강포수를 도리 상 외면할 수 없는 것이 당시 사람의 정서였다.

복수를 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은혜에 보답하고, 의리를 지키는 것이 당시 사대부의 가장 큰 덕목이기도 했으니 귀동이 강포수를 탈옥시키겠다고 작정한 것은 대단히 어렵지만 또 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귀동은 자기 신분을 알게 되면서 이미 변화가 생겨났다. 전처럼 아래적에 대해 사나운 적의를 품지 않게 됐다. 의식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자기의 신분에 대한 무의식적인 동조도 적잖이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동기들이 인의라는 명분으로 강포수 탈옥을 결심하게 됐다. 그러나 귀동의 이런 변화와 결정은 천둥에게 일생일대의 변화를 맞게 할 것이다. 귀동의 제안한 강포수 탈옥작전에 끼어들고도 이 사건이 자신에게 미칠 절대적 영향을 모르고 있지만 강포수 구출작전이 온전한 자각을 바탕으로 한 변신은 아니지만 얼떨결에 의적에 합류하게 될 것 같다. 그러지 않고는 현재의 천둥이 스스로의 각성에 의해서 의적으로 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천둥의 결심을 굳히게 하는 것은 아마도 구해낸 강포수의 유언과도 같은 설득이며, 곧 강포수의 죽음이 될 것이다. 누군가 가까운 사람의 의로운 죽음은 가장 뜨거운 설득이며, 선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 김수영은 4.19를 보면서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중략)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이라고 노래했던 것이다. 죽음만큼 피 냄새가 짙고, 죽음만큼 고독한 일은 더 없기 때문이다.

천둥의 의적되기는 참 먼 길을 돌아왔고, 이렇게 된 이상 짝패의 구도도 수정이 불가피해보인다. 강포수 구출작전의 주범은 귀동이고, 그로 인해 천둥이 아래적의 두령이 되는 수순을 밟게 되고서는 이 둘은 어쩔 도리 없이 같은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운명을 걸어온 천둥과 귀동이 시대의 모순에 맞서게 되는 동기가 충분히 주어졌다. 게다가 귀동은 천둥과 달리 모든 것에 빨리 눈을 떴다.

물론 귀동이 천둥을 도와 의적에 전격 동참하기 힘든 이유도 있다. 진작 권력의 더러움에 구역질을 할 정도가 됐지만 한편 바뀐 자식임을 알고도 내치지 않은 아비 아닌 아비 김대감에 대한 의리가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다. 의적을 돕는 일이 곧 김대감을 곤경에 처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강포수를 구해내기 전 동녀를 찾은 것도 어떤 복선이 깔려 있을 수 있다. 귀동의 신분이 드러나면서 동녀의 태도가 변한다면 그로인한 또 한번의 반전도 있을 수 있다. 어쨌든 귀동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많은 심정 갈등을 겪는 인물이다.

이로써 천둥과 귀동의 갈 길이 정해졌다. 그와 함께 그동안 조연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시선을 가게 했던 신변잡기류의 에피소드들을 어떻게든 정리해야 할 이유도 생겼다. 조연들 분량을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이제 다소 산만했던 조연들의 일들이 드라마 주제로 좀 더 직접적으로 개입되어야 한다. 예컨대, 장꼭지가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일시적인 분노가 아니라 예전 부하 껄덕이에게 영향을 받아 진정한 아래적으로 발전하는 것처럼 큰년이, 삼월이 그리고 쇠돌이까지 모두 어떤 변화를 맞게 될지도 앞으로 이 드라마를 보는 관전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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