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픔. 오랫동안 비어 있었던 남자의 자격 새로운 멤버를 맞이하기 위한 환영식을 설명하는 단어는 이 하나면 충분합니다. 몰래 카메라라는, 이경규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이 설명되는 굉장히 익숙한 장치를 활용했고, 남격 스스로도 한번 겪은 적이 있는 마라톤을 소재로 구성한 이 잔치에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먹을 것이 없고 초라하기만 했습니다. 양준혁이라는 걸출한 멤버를 새롭게 녹아들게 하기에는 적절한 장치였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준비하고 보여주는 것에는 미숙함과 서투름, 무엇보다도 준비 부족이 확연하게 드러났어요. 그들이 지금까지 쌓아올린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어설프기 짝이 없었습니다.

과연 체력적인 한계를 만나는 마라톤을 소재로 삼았어야 했는지, 이미 이윤석을 비롯한 이들의 입에서 나온 것처럼 귀농 일정을 소화하고 살인적인 일정을 짜면서 무리하게 강행했어야 하는지의 여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몰카의 희생자를 바보로 만들고 고생을 시키는 이유가 그의 인간미와 친근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이긴 하지만 발을 절뚝거리며 마라톤을 완주하게 만든 그들의 심보가 얄밉기는 해도 하나의 형제로 환영하기 위한 통과의례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겪어본 길을 공유한다는 것만큼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또 없거든요.

하지만 그것을 위한 준비에 대한 지적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협조자와의 충분한 협의와 준비가 필요한 몰카 미션임에도 단지 다른 멤버들을 골탕 먹이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김태원을 제외한 이들에게는 미리 언질조차 주지 않아 혼선을 불러 온 것부터가 문제의 시작입니다. 그 뿐인가요? 참가 인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그 많은 인파 속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미션을 달성할 수 있을지의 방법은 전혀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하다못해 각 멤버들을 맡고 있을 VJ와의 연락을 통해 중단시킬 수도 있었음에도 이경규와 김태원은 뿔뿔이 흩어져 완주를 위해 뛰고 있는 형제들과 연결도 되지 않고 중단시킬 방법을 찾지 못해 허둥지둥하기만 했죠. 몰카의 메인 컨트롤 타워인 본부 차량이 언제 차량 통제가 풀리는지도 알지 못해 속절없이 참가자들과 함께 뛰어야만 했고,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쓴다며 시간을 허비하다 이경규는 물론 다른 멤버들이 거의 완주에 가까운 경주를 소화하는 생고생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게다가 몰카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주인공인 양준혁에게 맞추어져야 했지만 카메라는 줄곧 이경규의 허둥지둥하는 모습과 아무것도 모르고 공범이 아닌 피해자로 강등되어 버린 다른 멤버들에게 분산되어 버렸습니다. 방송 말미에 혼자만 완주한 양준혁의 모습을 집중하긴 했지만 그 모습이 전해줄 수 있었던 감동이나 기존 멤버와의 하나됨은 정체불명이 되어버린 몰카에 김이 새어 버리고 말았죠. 왜 시도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엉망진창의 구성. 몰카가 실패한 적도 있었고,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도 많았지만 이렇게 어설프게 만들어진 것은 처음 본 것 같네요. 이건 몰카도 아니고 마라톤도 아닌 어정쩡함으로 시작해서 괴상한 감동으로 마무리해버린,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패작이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작진은 이 모든 책임을 이경규 개인에게 묻고 있습니다. 마치 그가 혼자 주동하고 기획한 것이고 다른 출연진은 물론 제작진까지도 이경규 때문에 휘둘리다가 같이 망해버렸다는 식으로 말이죠. 분명 그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판을 벌인 것은, 그리고 어설프게 구성을 짠 것의 핵심에는 이경규가 있으니까요. 그 스스로도 다른 멤버들에게 용서와 양해를 몇 차례에 걸쳐 구하고, 끝까지 민망해하던 것을 보면 이번 실패의 가장 큰 책임은 이경규에게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작진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수습은커녕 오히려 사태를 더욱 크게 만들고, 혼란을 배가시킨 책임은 확실히 제작진에게 있어요. 몰카를 진행하는 와중에 중심을 잡아야할 제작진들은 오히려 더욱 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이경규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고, 변수들을 충분히 계산하지도, 예측하지도 못하고 무작정 달려들며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는 어설픔을 보여주었습니다. 둔탁하고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야말로 정말로 세심하고 충분한 사전 준비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보여준 실패작이었죠. 하지만 맘 편한 제작진은 수시로 자막을 통해 이경규 탓만 할 뿐이었어요.

물론 그렇기에 이런 서투름과 둔탁함이 남자의 자격이 가지는 매력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치밀하고 완벽한 계획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비어보이는 아저씨들의 좌충우돌이야말로 남자의 자격만이 보여줄 수 있는 미덕인 것은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순진함이 이번처럼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의도되지 않은 생고생을 멤버들에게 강요하고,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재미를 반감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칭찬만 하고 있을 수는 없어요. 이번 몰래카메라는 새로운 멤버가 들어온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지금, 남자의 자격 제작진이 곱씹어야 할 실패입니다. 비난의 화살은 이경규보다는 그의 계획에 아무런 손질도, 보조도 해주지 못한 제작진에게 더욱 아프게 날아가야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출연자가 유능하고 뛰어나다 해도, 영향력이 막대하다고 해도 별다른 준비도, 노력도 없이 속절없이 휘둘리기 시작하면 결론이 좋게 나올 리가 없으니까요. 런닝맨이 아직 건재하고, 나는 가수다가 돌아오는 정말로 치열한 경쟁무대가 되어 버린 일요일 저녁에서, 이런 어설픔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경규만 탓하는 제작진의 태도는 그야말로 비겁한 변명일 뿐이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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