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결과이고 당연한 반응이고 당연한 혼란입니다. 매우 적절하고 영리한 기획이 미숙한 진행과 어설픈 준비로 얼마나 엉망이 될 수 있는지를 가장 적절하게 보여주는 예. 나는 가수다가 방송 단 3주 만에 이렇게 수많은 잡음을 내며 망가지고 있는 이유가 이것이죠. 많은 이들이 기다려왔지만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너무나 준비가 부족했다는 거예요. 시스템이, 사전 협의가, 무엇보다도 마음가짐이 말이죠.

슈퍼스타K의 연이은 성공과 세시봉 추억에 대한 환호, 아이유의 가요계 재패는 아이돌과 기계음으로 지배하던 가요계의 오랜 아이돌 천하에 힘겨워하던 대중들의 욕구가 분출된 것입니다. 이제는 노래하는 가수, 정말 노래를 잘하는 가수(가수에 대한 이런 우스운 부가 설명이 필요할 정도로;;)에 대한 열망과 그리움이 극한에 달했거든요.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그의 무대만 보는 것만으로도 오감이 만족되는 ‘가수’를 보고 싶다는 원초적인 기대. 우리에겐 똑같은 환경, 비슷한 조건에서 공장에서 찍어져 나오는 아이돌이 아닌 노래하는 사람으로서의 고민을 품은 목소리 그 자체가 악기이자 전부인 장인의 무대가 필요했어요.

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어 버렸습니다. 진행 내내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던 제작진의 무능, 혹은 준비 부족은 결국 3회 만에 폐지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와 고민을 만들고 있어요. 단지 김건모의 재도전으로 생긴 문제가 아닙니다. 최고의 가수에서 히스테리나 부리는 노처녀로 전락해버린 이소라나 오지랖 넓은 참견쟁이로 손가락질 받는 김제동도, 존경받는 경력의 연출가에서 줏대 없는 쌀집아저씨가 되어버린 김영희 PD도 마찬가지에요. 그렇다고 박명수의 원칙 지키기를 찬미하거나 불행한 1등 윤도현을 안타까워하는 것도 우스운 일입니다. 특정한 누구의 탓을 하기에는 이 프로그램 자체가 가지고 있는 헐거움이 너무나 크거든요.

애초에 7명이 모여서 멋진 무대를 만든다는 것 이외에 제작진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이 무엇인지가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누누이 말하는 것처럼 침체된 가요계를 되살리자는 의도라면 굳이 어설픈 리얼을 추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설픈 서바이벌 경쟁의 틀 역시도 마찬가지에요. 당연히 편집되었어야 하는 이소라의 감정적인 반응이나 가수들의 혼란스러워하며 괴로워하는 표정들을 담아내야 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죠. 그저 그들의 충실한 준비과정, 멋진 무대, 그리고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제작진은 마땅히 지켰어야할 그런 자제와 정도의 선을 자극과 논란, 관심에 대한 목마름으로 어리석게 넘어 버리면서 출연자들에 대한 보호와 존중을 져버렸어요.

포맷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등장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7명의 개그맨들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예능 출연이 낯선 이들을 배려하고 내용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것은 쉽게 눈치를 챌 수 있지만 출연 가수들이 편곡자와 세션들과 함께 하는 고도의 전문적 과정인 무대 준비를 위한 것에 개그맨들이 끼어들 자리는 없습니다. 그들이 꾸미는 무대에서는 더더욱 그렇구요. 고작해야 무대전후의 분위기 메이커를 하기 위해, 혹은 순서를 정하기 위해서 7명이나 되는 개그맨들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박명수의 매우 상식적인 발언이 주목을 받는 것은, 반대로 말하자면 오직 출연 개그맨들 중에서 박명수만이(그나마 예외를 두자면 알아서 분량을 챙겼던 김신영을 제외한다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겁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필요한 것은 그저 가수들의 최선을 다한 준비과정, 그리고 가공과 군더더기 없는 편집이 사라진 이들의 무대 그 자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가짐의 부족이 큽니다. 당연히 예상하고 있던 탈락이라는 결과에 출연자들이나 제작진 모두 당황했다는 것이 말이 되나요? 꼴찌를 해서 중도 하차한다는, 가수로서의 자존심과 서로간의 연대감을 한꺼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충격적인 결말을 2주에 한 번씩 거치기 위해서는 단순히 다른 가수에게 양보한다는 어정쩡한 포장 말고도 실질적인 의미부여와 가수 출연진에 대한 존중이 필요했단 것이죠. 단호하면서도 따스한,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평가 기준도 없이, 공개무대가 당연히 가질 수 있는 내용 유출의 위험에 대한 대비도 없이, 당연히 결과에 순응하고 다음을 준비하고자 하는 의지 없이 순진하게 혹은 생각 없이 기획의 힘에만 이끌려간 결과가 이런 사단을 만들었어요.

물론 프로그램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피면서 그 중에 좋은 것, 바람직한 것을 추리고 가다듬어서 같이 성장해가는 것이 예능 프로그램이 성장하는 과정이죠. 하지만 그런 과정을 고려한다고 해도 나는 가수다는 그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기본적인 것들을 너무나 쉽고 안이하게 무시해버렸습니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상처를 받고, 쓸데없는 논란들을 만들었고, 프로그램 자체의 유지 여부도 장담할 수 없게 되어 버렸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프로그램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김범수의 멋진 목소리, 박정현의 화려함, 윤도현의 패기, 이소라의 집중력, 김건모의 관록, 백지영의 호소력, 정엽의 기교 모두가 소중하고 강렬합니다. 다소 지나치고 매정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누누히 이야기하지만 TV에게 향하는 것만큼 정치인들에게 투표할 때 이렇게 공명정대하고 가혹했다면 우리는 좀 더 행복한 세상에서 살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이 프로그램을 향한 손가락질의 방향은 가수들의 무대 자체를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멋진 무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제작진의 무능에게 있습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이 큰 생채기를 극복하고 이 어마어마한 관심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만드는 것. 그래서 진정 가수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MBC와 일밤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대로 묻히기에는 너무나 아깝고 탐나는 기회이고, 무척이나 아쉽고 안타까운 ‘가수’들이거든요. 일밤이 살고 싶다면 이 위기, 위태로운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됩니다. 제작진이 집중해야 하는 목소리는 그들의 단점을 지적하며 공격하는 이들의 날선 불평이 아니라, 가수들의 무대에 매료되어 멍하니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던 관객들의 감동이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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