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타 영화와 저울질을 하다가 <굿모닝 에브리원>의 관람을 택한 이유는? 위의 포스터에 있습니다. 바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작가 + <노팅힐> 감독"이라는 문구입니다. 특히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직접 보기 전에 가졌던 선입견과 편견을 뒤집어버린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가 국내에서 개봉했던 당시를 전후해 한창 '된장녀' 비판 열풍이 불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스타벅스부터 명품까지 여성들이 열광하는 대상들이 자리하고 있었죠.

개인적으로는 이런 현상에 대해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보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회색분자는 아닙니다) 다만 악마가 프라다를 입는다니, 제목부터 여성들을 겨냥한 냄새가 폴폴 풍기는 건 거부감이 일었습니다. 예고편이나 스틸 컷을 보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오색찬연하고 휘황찬란한 명품 구두와 옷 등으로 눈을 현혹하리란 건 뻔했습니다. 종합적으로 말해서 원작을 읽어보지도 못한 상태라 "별 볼일 없는 영화겠거니"라고 지레짐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보고 난 후에는 대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분명 명품으로 '시각적' 환심을 사는 영화임은 맞지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는 그보다 더 깊이 있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여기서 구구절절 논할 수는 없고, 아무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사회 초년생 또는 매너리즘에 빠져 살아가는 이들에게 교훈을 던져주는 영화였습니다.

미국에선 신통치 않은 성적을 보였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상의 이유로 인해 <굿모닝 에브리원>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정말 여러모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연상시켰습니다. <굿모닝 에브리원>의 주인공 '베키'는 작은 방송국의 피디입니다. 그녀가 맡은 프로그램은 이른 아침에 방송되기 때문에 연애는커녕 사생활도 포기하고 일에 매달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키는 여차저차하여 직장에서 해고를 당합니다. 20대 후반의 나이로 졸지에 백수가 된 베키.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넣고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각오가 무색할 만큼 낙방이 잇따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늘이 도왔는지 마침내 재취업에 성공합니다. 베키는 해고의 아픔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좀 더 큰 방송국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습니다. 그것까진 좋은데, 하필 그녀가 맡은 프로그램은 방송국에서 최악의 시청률을 가진 아침방송입니다. 덕분에 다시 일할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고 첫 날부터 아주 골머리를 싸매죠. 이 난국을 타개하고자 베키는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는 전설적인 앵커 '마이크'를 힘겹게 영입합니다. 처음에는 저명한 인사들과 숱하게 만났고 상까지 휩쓴 전력을 가져 콧방귀도 뀌지 않던 그였지만, 그놈의 돈에 묶여 제의를 수락합니다.

베키는 이걸로 다 해결이 될 줄 알았지만 웬걸요!? 이제부터가 진짜 난국의 시작입니다. 정통 뉴스만 해왔던 고집불통의 노장 앵커 마이크가 아주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의 기준에서 경박한 아침방송에는 열성을 다할 의사가 없었습니다. 설상가상 파트너 앵커인 '콜린'과도 앙숙으로 지내고, 위에서는 낮은 시청률로 인해 아예 방송을 폐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베키는 이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시청률을 올리고자 혈안이 됩니다.

<굿모닝 에브리원>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직장 여성들의 비애와 고군분투를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영화의 주인공 모두 나이 든 상사의 비위를 맞추느라 아연실색하고, 일 때문에 연애에도 난관이 닥칩니다. 반면에 다른 점은 극에서 빚어지는 갈등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고, 또 어떻게 극복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디와 달리 <굿모닝 에브리원>의 베키는 처음부터 진심으로 자신의 일에 열정적으로 임합니다. 앤디의 경우에 지금의 잡지사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도중에 잠시 머무는 경유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죠.

<굿모닝 에브리원>에도 이와 흡사한 캐릭터가 있긴 합니다.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는 마이크입니다. 이 괴팍하고 까탈스러운 노인네는 전혀 어른답지 못한 태도를 보이면서 '세상에서 세 번째로 최악인 인물'이란 소리를 듣습니다. 그에게 베키의 프로그램은 마지못해 수락하고 건성으로 임하는 소일거리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마이크를 보면서 베키를 비롯한 제작진은 속에 천불이 납니다. 고로, 요컨대 <굿모닝 에브리원>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그것처럼 베키와 마이크의 관계를 중심으로 아웅다웅, 티격태격하는 이야기로 진행이 됩니다.

이처럼 비슷한 면이 많지만 애석하게도 <굿모닝 에브리원>은 '아류'라는 타이틀을 벗기엔 역부족입니다. 로저 미첼의 경쾌하고 재치 넘치는 연출은 나쁘지 않습니다. 최소한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듯한 기분으로 부담 없이 즐기기에는 그렇습니다. 단 '일과 싸랑, 싸랑과 일'을 동시에 품어야 함에도 일에 치우쳐 '싸랑'을 간과한 면은 아쉽습니다. 역시 비중은 크지 않지만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았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비교가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굿모닝 에브리원>이 갖춘 이야기의 매력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는 것입니다.

<굿모닝 에브리원>은 언뜻 신과 구, 진보와 보수의 대립과 화합을 보여주려는 듯했습니다. 이는 아침방송을 대하는 베키와 마이크의 시각차에서 잘 드러납니다만, 지나치게 큰 기대를 한 걸까요? 마지막까지 가슴에 와 닿거나 공감할 수 있을 만한 논제를 던져주지 못합니다. 갈등을 전개하는 방법은 좋지만 그것을 완화하고 합의점을 도출하는 과정은 성급하고 무성의합니다. 게다가 <굿모닝 에브리원>은 자본주의의 논리를 반영한 시청률의 허상을 좌시하다시피 합니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 무엇도 불사하는 인물들을 보면 영화 자체가 허망하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것을 현실주의적인 접근방법이라고 봐야 할까요? 뭐 그렇게 판단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나라 예능의 최고봉이라는 <무한도전>마저도 시청률이 저조하면 필요 없다는 투로 스스럼없이 말하는 게 현실이죠. 아무튼 <굿모닝 에브리원>은 '현실적'이라는 것을 방패막이로 쓰기에 무리가 따릅니다. 그만한 의식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고, 뻔한 전개를 이어가며 예정된 결말로 문을 닫는 전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로맨틱 코미디 버전으로 보면 꼭 나쁘지만은 않은 영화이긴 합니다.

★★★

덧 1) 다소 실망스러워 영화를 본 후에 찾아봤더니, 포스터에 적힌 '작가'라는 뭉뚱그린 단어에 함정이 있더군요. 정확히 말하면 <굿모닝 에브리원>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각색한 '앨라인 브로쉬 맥켄나'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각색을 하는 것과 시나리오를 쓰는 것에는 엄연히 차이점이 있죠.

덧 2) 레이챌 맥아담스는 해리슨 포드와 다이앤 키튼이라는 베테랑 배우들 사이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고 연기합니다.

덧 3)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로맨틱 코미디 버전이라고 했는데, <굿모닝 에브리원>이 진짜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로맨틱 코미디처럼 경쾌하고 발랄한 분위기라는 뜻에서 사용한 표현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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