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일은 죽음이란 대단히 무거운 주제를 남규리가 열연한 초긍정 캐릭터 신지현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상큼할 정도로 가벼운 동화로 바꾸어놓았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드라마가 잘 될 턱이 없는 것이어서 즐겁게 보면서도 적이 걱정스럽기도 했는데, 그런 우려는 그야말로 기우에 불과했다. 첫 회 남규리가 사고 나는 장면에서 빠졌던 결정적 사고 원인을 통해서 앞으로 이 드라마가 결코 순조로운 이야기들을 할 것이 아님을 단단히 예고했다.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한 부분이다.

한국사람 대부분이 매운탕처럼 얼큰하고 강한 맛을 즐기지만 그렇다고 아주 살짝만 간을 한 투명한 콩나물국의 시원함도 빠뜨릴 수 없는 것처럼 배수빈, 서지혜의 배신 구도 없이 49일이란 드라마가 동화를 보여줄 수 없었을까 하는 섭섭함이 남지만 결국 드러난 배신과 음모의 플롯이 좀 더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다. 그와 함께 당장 큰일인 것은 송이경의 몸을 빌린 신지현의 환생 작전이 엉켜버린 점이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영혼류 영화, 드라마를 통틀어서 가장 무력한 귀신인 신지현은 사람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방 안에 그대로 갇혀버리는 신세다. 영혼인데도 공간이동은 꿈도 꾸지 못하니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아주 허당 귀신인 셈이다. 그런 귀신 체면 구기게 하는 신지현이 49일 동안 진실된 사랑을 증명하는 눈물 세 방울을 어떻게 얻을까도 걱정인데 그것보다 더 엄청난 사건과 대면하게 된다. 물론 그래서 진실한 사랑을 찾게 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당장은 죽은 사실보다 더 죽고 싶게 하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편의점에서 야간 근무를 하는 송이경이 잠들어 있는 시간 동안 빙의할 수 있는 신지현은 반억지로 한강의 카페에서 근무를 하게 된다. 그러나 부잣집 외동딸로 귀히 자란 신지현이 카페 서빙을 잘할 리가 없다. 결국 신지현은 송이경이 근무했던 호텔에서 경력 증명서를 떼와야 할 정도로 의심을 받게 된다. 그런데 그곳에서 봐서는 안 될 것을, 또 그래서 기억해서는 안 될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약혼자 배수빈과 절친 서지혜가 호텔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됐고, 그리고 죽기 직전 신지현을 교통사고를 낼 정도로 큰 충격을 주었던 두 사람의 은밀한 광경이 기억나게 됐다.

세상에서 가장 믿었던 두 사람에게 배신당했음을 알게 된 신지현은 약혼자와 절친이 함께 들어간 방문 앞에 버틸 힘을 잃고 주저앉고 만다. 그런 신지현 눈앞에 놓여진 문은 어쩌면 자신에게 49일의 유예가 주어진 죽음의 벽보다 어쩌면 더 두렵고 압도적인 벽일지도 모를 일이다.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이라면 당장이라도 벽을 뚫고 들어가 두 배신 남녀에게 응징이라도 하겠지만 송이경의 몸을 빌려 간신히 운신하는 신지현은 허당 귀신일 따름이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다.

초긍정과 단순성을 가진 신지현은 죽어서 비로소 자기 주변의 진실을 보게 됐다. 그리고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주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두 사람의 눈물을 더 이상 기대할 수도 없다. 그래서 살아있는 신지현으로 다시 돌아가기 어려워진 것보다 더 기막힌 일은 배신일 것이다. 그러나 신지현이 놀라고 분노할 일은 결코 그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애초에 남규리와 배수빈이 만나게 된 등산도 충분히 사전에 계획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약혼자와 눈이 맞은 절친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오래된 음모가 엿보인다.

신지현으로서는 살기 위한 눈물 세 방울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엄청난 음모와 배신을 밝혀내야 하는 분노까지 겹쳐졌다. 살기 위한 49일도 결코 넉넉한 시간이 아닌데, 배수빈과 서지혜가 꾸미는 음모가 단순한 배신이 아닌 이상 그대로 살아 돌아간다고 될 일이 아니다. 결국 빙의된 송이경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영혼 신지현으로 그 음모를 알아내고 해결해야 비로소 49일의 미션이 성공하는 것이다. 그 모든 미션을 다 해결해가는 과정에 로맨스도 분명 생기겠지만 49일은 이미 잔혹해졌고, 동화의 껍질을 벗겨내고 있다. 이 잔혹동화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동화적 분위기에 잠시 달콤했던 느낌 때문인지 49일의 숨쉴 틈 없는 전개와 반전의 충격이 막장 드라마보다 더 독하게 다가온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