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캐스팅이라는 혹평도 있었지만 짝패는 분명 주연의 구성이 약점이자 허점인 드라마다. 보통은 아역 시기에 고전하다가 성인들이 등장하면서 역전하게 되는데 짝패는 그 반대로 진행되고 있다. 성인 시기 4회가 지난 시점에서 정리를 하자면 주연 4인방이 부족한 연기와 카리스마로 점수를 까먹고 반대로 큰년이, 쇠돌이 등 조연들의 활약으로 드라마 분위기를 지탱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주연 중심인 드라마가 당연한 시청자에게 이런 진행이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12회가 끝난 짝패 시청자 게시판에 왜 조연 중심으로 드라마가 진행 되냐는 푸념의 글이 올라왔다. 몇 사람의 의견으로 전체를 짐작할 수는 없지만 그럴 시청자가 많을 것이다. 실제로 주연들을 중심으로 한 진행보다는 조연들에게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지는 듯한 느낌을 가질 법한 상황인 탓이다. 그러나 짝패 김윤경 작가가 아직은 주연들에게 더 시간을 주고 있을 거란 추측을 하게 된다. 노래로 따지자면 음치, 박치 같은 천정명의 대사를 보고 있자면 무리하게 분량을 늘이기보다는 호흡을 찾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질 것이다.

아무튼 현재의 짝패에서 주연들은 사건의 연결고리만 이어주고 있어 대단히 소극적 역할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임펙트도 그렇거니와 연기도 물 만난 고기처럼 자연스러운 큰년이의 스토리에 더 관심이 가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주에는 막순에게 버림받은 쇠돌이 급기야 설움에 지쳐 큰년에게 한번 안아달라는 말을 했는데, 큰년이도 딱히 싫은 표정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젊고 예쁜 작은년에게 장꼭지의 사랑을 빼앗긴 지 오래인 탓이다.

그러더니 이번 주에 와서는 짝패의 커플 플래너 임현식이 앞장서서 이 두 사람을 붙여주자는 수작이 농익게 펼쳐졌다. 전날 밤 막순이가 좋아하는 조선달을 눅실하게 패주고 사과할 요량으로 화장분까지 사들고 찾아갔으나 냉대에 결국 막순이를 포기한 듯한 심정으로 갖바치 영감을 찾은 쇠돌은 하룻밤 자고 가겠다고 한다. 그럴 찰나에 큰년이가 요란스럽게 집안으로 뛰어 들어와 쇠돌에게 조선달의 이야기를 전한다.

전할 이야기의 결론은 조선달이 막순의 주막에 다시는 얼씬거리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달이가 조선달이 없으니 주막 가서 자면 되겠다고 하자 큰년은 어차피 불을 넣을 거면 그렇게 하라고 그 방에서 허리를 지지고 자야겠다고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러자 황노인은 으뭉스럽게 입을 뗀다. “그러면 골방에서 둘이 같이 자면 되겠구만”한다. 그러자 쇠돌은 그저 놀라는 표정이고 큰년이 눈이 뚱그레져서 “누구랑 같이 자유?”묻는다. 쇠돌이랑 자라고 하자. 큰년은 당황한 듯 “엄마마 내가 왜 쇠돌동생이라 같이 자유”라며 내외를 하려한다.

그때 황노인이 “아니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잠만 자라는데...쇠돌인 넌 큰년이랑 같이 자는 게 싫으냐?”한다. 쇠돌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달이는 소리 내지 못하고 킥킥거린다. 그런 어색한 분위기에 큰년은 그걸 왜 쇠돌에게 물어보냐고 여자의 자존심을 내세운다. 그때 쇠돌이 마침내 입을 뗀다. “좌우간 저는 오늘 여기서 자고 갈랍니다” 한다. 그러자 큰년은 헉 하고 놀라면서 “어머 동상!”한다. 그 표정이 가히 일품이다.

큰년은 말로는 “어머 동상 이러면 안 돼. 이러면 안 돼”를 반복하면서 행동은 거꾸로 쇠돌의 손을 잡아끌고 있다. 그런 큰년의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도 우스워 죽을 일이지만 그렇게 맞잡은 손을 멀뚱히 쳐다보는 황노인과 달이의 표정 또한 배꼽을 잡고 웃을 해학의 절정이었다. 이쯤 되면 동상이몽이 됐건 춘정이 통했건 두 사람의 합방은 무르익어가고 있다고 생각할 즈음 용광로처럼 달궈진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말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쇠돌이 황노인을 보며 “어른신 방에서 재워주세유”한 것이다. 그러자 황노인은 큰년이가 잡은 쇠돌의 손을 거칠게 툭툭 떼어내면서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하면서 쇠돌의 손을 끌고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큰년은 “어,어,어” 앓는 소리를 하며 오묘한 표정을 짓는다. 그때 몇초 간에 변하는 큰년이의 황당해하는 표정변화는 티비 드라마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연기였다. 마당놀이를 즐겨본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판의 연기였다. 다만 마당놀이가 대사와 몸짓으로 표현한 것을 큰년이가 의뭉스러운 표정과 대사로 바꾼 것뿐이다.

다소 지루함감에 좀이 쑤실만한 시간에 벌어진 갑작스런 큰년과 쇠돌의 합방 상황은 50분의 불만을 한방에 날려버릴 만한 보상이었다. 물론 이 감칠맛 넘치는 관계를 단박에 한방으로 몰고 갈 초보 작가는 아닌 탓에 무산되고 말았다. 마지막에 큰년의 “아,아이”하는 탄식이 어디 큰년만의 것이겠는가. 시청자도 충분히 감정이입 될 분위기였다. 아쉽다고 대놓고 말할 수도 없고, 이게 아닌데 하는 큰년이의 속앓이가 그 단발마의 탄식에 모두 담겨졌다.

아직 주연들의 다분히 비극적 애정라인은 시작단계에 불과하지만 그런 사랑이야 드라마에서는 흔하디흔한 것이다. 그렇지만 짝패가 보여주는 큰년과 쇠돌의 애정은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좀 부족하고, 그저 정이라고 하기에는 애특함이 있어 오히려 더 귀한 사랑이다. 드라마에서 흔치 않은 저잣거리의 사랑, 그것을 보여주는 작가가 고마워서 주연들에 대한 불만, 스토리의 정체에 대한 불만을 잠시 잊게 됐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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