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동자들을 처음 봤던 것은 2008년 여름 촛불집회 때였다. 새로운 광장 문화에 대한 찬양과 해설이 뜨거웠을 때, 그 노동자들은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긴박한 문구가 박힌 그러나 그 광장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아 진부해 보였던 손 팻말을 들고 함께 광장에 섰었다. 광장의 분위기가 발랄하게 늘어져갈수록 그 노동자들의 표정은 강경하게 일그러졌었다.

그리고 얼마 후 촛불은 꺼졌고, 그 노동자들은 사상 초유의 '옥쇄 투쟁'에 돌입했다. 방송 기자들은 그 '옥쇄 투쟁'을 '가장 그림이 되던 파업'이라고 기억한다. 그 때 방송 기자들은 노동자들이 사용한 '사제 무기'에 관심을 가졌고, 공장 옥상에서 벌어지던 추격의 활극을 쫓는데 카메라의 역량을 집중했다.

무려 68일간이나 이어지던 그 '옥쇄 투쟁'은 많은 것을 남기고, 할퀸 채 끝났다. 그리고 그 파업이 끝난 지어느 새 1년 6개월이 지났다. 그 회사는 그 사이 신차를 개발했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한다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은 6명의 노동자가 자살을 시도하고, 3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시간이기도 했다. 한 때, 모두가 주목했지만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던 사이 노동자들은 생떼 같은 목숨을 던지는 것으로 그 파업의 정당함을 호소했다. 처연한 일이었다. '사제 무기'와 '옥상 활극'을 쫓던 기자들은 더 이상 그 공장을 기억하지 않는다.

서울 근교의 한 아파트, 경찰이 한 가정집을 습격했다. 아파트에 생긴 누수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였다.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13층 집안의 배수 상태를 확인해야 했지만, 어느 누구도 1년 간 13층 세입자를 만나지 못한 상태였다. 도리가 없어 강제로 문을 열었다. 그런데 집 안에 웬 남자가 있었다. 턱밑까지 머리를 길게 기른 한 남자, 놀랍게도 그 남자는 1년이 넘도록 그 집 안에 있었다.

사연은 이랬다. 그는 2009년 여름, 15년 동안 다닌 직장의 일방적인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68일간 파업을 했던 노동자였다. 직장을 지키기 위한 파업이었지만, 그는 그 기간 동안 이혼을 했고 끝내 희망하지 않았던 '희망퇴직'을 당했다.

파업이 끝나고 세상이 그 노동자들을 잊어갈 무렵, 그는 집으로 숨어들었다. 그는 파업이 끝나고도 며칠 동안 출근을 했었다. 쫓겨났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파업이 끝나고 2개월 뒤 그래서 그는 다시 파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이번엔 홀로였다.

▲ 2월 11일 방송된 SBS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 "나 홀로 파업?! 남자는 왜 집안에 갇혔나?" 화면 캡쳐
1.5리터 생수 1,000개와 인스턴트 밥, 쌀, 담배, 비상약 등 파업 현장의 비상 용품은 그대로였다. 화상 카메라와 망원경으로 집 주변을 감시하는 그도 물론 그대로였다. 동생과 함께 파업에 참가했던 형은 동생의 증상을 알고 있었지만, 말릴 수 없었다. 동생이 나홀로 파업에 돌입한 이후 형은 어디서 신원미상의 시체가 나왔다고 하면 혹시 동생일까 가서 확인을 하곤 했다. 이미 6명의 노동자가 자살을 시도하고, 3명이 죽은 상황이었다.

11일 밤 방송된 SBS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 "나 홀로 파업?! 남자는 왜 집안에 갇혔나?"는 충격적이었다. 2009년 쌍용차 파업에 참가했던 한 노동자는 기억을 잃어버린 채 아니 차라리 기억이 멈춰버릴 것을 강요당한지도 모른 채 여전히 홀로 파업 중이었다.

분명, 무심하다고 해야 할 테지만 그렇다고 자책감을 갖기에도 모호한 문제다. 우리도 그 1년 6개월 동안 충분히 바빴고, 일일이 설명하기 힘들 만큼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여운은 길게 남았다. 그 노동자는 자신이 끝까지 쌍용차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중국인들이 기술만 빼가고 버렸지만 그래도 회사를 지키겠노라고 했다. 평범한 노동자가 정신 분열에 빠진 동안 쌍용차를 중국에 팔아치우기로 결정하고, 그 뒷감당을 포기한 이들은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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