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 특집은 한국 공중파 방송의 대단히 안일하고 타성에 젖은 모습을 국민들에게 고백하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 최근 일본을 비롯해서 아시아에 뜨거운 문화 폭풍으로 성장한 것은 인정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설이라는 전통적인 명절을 맞아 천편일률적으로 편성한 아이돌 특집은 과해도 한참 과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각 사가 나름의 기획을 통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애쓴 흔적을 발견한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설맞이 아이돌 특집 중에서 방영도 되기 전부터 논란이 되던 것이 MBC의 아이돌 육상수영대회였다. 그러나 정작 전파를 탄 아이돌 수영대회는 선정적이라고 지적할 만한 것이 없었다. 오히려 다른 아이돌 특집보다 더 건강하고 밝은 모습을 담은 역작이라고 평가할 부분이 더 많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수영대회 특별 프로그램으로 선보인 레인보우의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의 특정 장면을 두고 선정적이라고 선동하는 언론도 있었는데, 제작진에서 그런 의도가 혹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을 선정적이라고 한다면 세상에 티비로 중계 못할 스포츠는 대단히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국민영웅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 중계도 19금 표지를 붙여야 할 것은 또한 물론이다. 이게 무슨 넌센스인가.

칼이라는 것은 흉기가 되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은 요리와 식사의 도구로 사용된다. 수영복이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선정적 사진을 위한 최소한의 의상이지만 스포츠에서는 기록과 경기를 위한 것이다. 그 다름을 구분하지 못하고 수영복만 보면 선정성을 느끼는 단편성이 오히려 놀라울 뿐이다.

육상이야 그럴 일이 덜했겠지만 수영대회를 위해서 아직 최고가 되지 못한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많은 노력을 했다는 캐스터들의 소개도 있었지만 스타트 총성이 울리고 수영장으로 힘차게 다이빙 하는 모습들에서 그 연습이 거짓이 아님을 누구나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많은 아이돌 그룹은 선정적인 어필을 자주 의도하기는 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번 수영대회에 그런 의도를 읽기는 어려웠다.

레인보우가 선보인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은 정말 쉽지 않은 종목이면서 동시에 흘린 땀만큼 아름다운 스포츠이다. 또한 수많은 비인기종목 중 하나인 것을 아마추어인 걸그룹이 노력해서 만들었다면 정지된 한 장면에 집착해 혀를 차기보다는 그들이 대중에게 보이고자 하는 절실한 마음을 봐주는 것이 성숙된 비평의 자세일 것이다. 아이돌들의 진정 어린 땀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어쩌면 그들의 마음속 은밀한 욕망의 반어적 표출이 아닐까도 싶다.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위해서 애먼 아이돌을 비난하는 것이라면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이돌 육상, 수영대회는 소속사의 힘과 능력이 아닌 대회에 참가한 아이돌 멤버 개개인이 흘려왔던 땀의 양에 대한 보상을 해준 것은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종합우승이 3관왕 민호의 활약으로 SM에게 돌아가기는 했지만 부분적으로 수영의 레인보우, 여자 육상에 시스타 그리고 제국의 아이들 등 아직 1부 리그에 올라서지 못한 후발 아이돌 그룹들이 활약한 것은 그들에게 희망과 작은 보상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아이돌 문화는 화려한 만큼 그 문제점도 많고 심각한 부분도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위를 넘는 것에 대한 비판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아이돌 문화를 피하거나 인위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이돌 현상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어린 걸그룹들이 선정성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무대에서의 선정적인 경쟁이 아닌 진실한 땀의 경쟁마저 선정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걸그룹에 대한 고루한 편견인 동시에 스포츠에 대한 모독이기도 할 것이다. 적어도 아이돌 육상수영대회는 건강하고 아름다웠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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