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가 성역 없는 드라마를 만들려는지 싸인이 재구성하는 사건 일지는 많은 영구미제사건들을 신랄하게 헤집고 있다. 아이돌 가수 서윤형의 죽음에 이어 미군에 의한 조직 폭력배 총기사건 등은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은 것들이다. 이러고도 괜찮을까 싶은 생각이 들던 터에 대물에 이어 연출자 교체가 단행되기도 했지만 어쩐 일인지 대물처럼 잡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 현상에 연출에서 대본 집필로 위치를 옮긴 장항준 감독의 심정은 어떨지 궁금하기만 하다.

한편으로는 꼭 옮겨야만 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은 것이 싸인에서 매번 발견되는 치명적인 옥에 티들 때문이다. 파스타의 순둥이 최재환을 일약 싸이코패스로 둔갑시킨 연쇄살인사건에서 기껏 범인이 왼손잡이라고 해놓고는 정작 김아중과의 추격신에서는 버젓한 오른손잡이로 나와 빈축을 샀다. 그렇지만 그 허물은 최재환의 열연에 어느 정도 가려졌다. 그리고 이태원 미군총기사건을 곧바로 연상시키는 이번 에피소드에서 역시나 그냥 넘기기에는 너무 심각한 옥에 티가 발견됐다.

처음 서윤형 살인사건을 은폐했던 강력한 대선후보의 참모에 의해서 미군에 의한 총기 살인사건 역시 철저히 조작됐다. 현장의 탄피와 탄환은 러시아제 토카레프로 범인을 알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실제 사용된 것은 베레타 기종으로 총알은 파라불럼이 사용됐다. 실제로 파라불럼탄이 미군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드라마의 설정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러나 최재환의 왼손잡이 옥에 티가 연출의 부주의라면 이번에는 대본 자체의 문제가 드라마 몰입을 방해했다.

이 사건을 은폐하고자 하는 측과 진실을 밝히려는 측 모두가 쫓는 인물이 있다. 바로 현장에서 미군에게 총을 맞은 김종호라는 인물이다. 검찰에서는 김종호를 범인으로 옭아매기 위해서 찾고 있고, 정겨운 등은 이 사건이 애초에 조폭 간의 다툼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주요 증인으로서 그를 찾고 있다. 그런 그가 마침내 발견됐다. 그런데 증언을 할 수 없는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여기서 활약할 수 있는 것은 죽은 이의 마지막 말을 듣는 국과수 부검만이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현장에서 박신양이 벌이는 미드 CSI를 방불케 하는 과학적 탄흔 조사와 이후 증거인멸을 막기 위해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고 현장 부검을 통해 파라불럼탄은 발견한 김아중의 해고 등의 드라마틱한 전개들을 무색케 하는 어이없는 실수가 저질러졌다. 그것은 김종호를 발견한 후 형사와 담당검사와의 통화내용이다. 먼저 짧은 통화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형사 : 김종호 발견했습니다. 저희가 도착했을 땐 이미 사망한 후였습니다.
검사 : 총창이라구요. 예 알겠습니다. 일단 시체실로 옮기세요.
형사 : 바로 국과수로 옮기는 게 낫지 않을까요?
검사 : 유가족들이 부검을 반대하고 있어요. 종교적인 문제라고...

형사 : 부검을 안 해요?

이들의 통화내용을 들은 김아중은 뭔가 조작, 은폐의 위기를 느끼고 의무실 문을 잠그고 현장 부검에 들어가게 했다. 위 통화내용을 보면 누구나 알겠지만 검찰과 경찰은 김종호를 주요 용의자로 찾고 있다가 겨우 찾은 것이다. 아직은 누구도 김종호의 총상 문제를 알지 못했고 생사여부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형사의 보고 내용도 김종호를 찾았다는 말부터 했다. 그런데 갑자기 유가족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부검을 막은 것은 너무도 부실한 변명이었다.

하루쯤 아니 적어도 몇 시간이라도 지나서 유가족들이 시신을 확인하는 등의 절차를 거친 후라면 납득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제 막 발견한 김종호의 죽음을 알 리 없는 유가족의 반대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이유였다. 특히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부검의의 신분이 흔들릴 것을 알면서도 현장부검을 단행하고 결국 해고당해 국과수를 떠나는 고다경의 슬픈 모습의 열연도 모두 가려버린 참 안타까운 옥에 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인은 재벌 아들 얘기에 허우적거리는 유치한 한국 드라마들과 차별되는 멋진 작품이다. 그러기에 더욱 세심한 연출이 요구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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