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4강전 패배의 아픔이 아직도 남아있는 듯합니다. 워낙 극적인 경기를 펼치다 맛본 패배여서 쓰라린 기분은 꽤 오래 남았습니다. 충격 때문에 조광래호 축구대표팀은 훈련을 취소하고 휴식을 취하는 등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데 안간힘을 썼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표팀 베테랑 이영표는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 밤 정말 잠이 안 온다'라는 메시지를 남겨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건 아닙니다. 3-4위전 우즈베키스탄전이 하나 남아있습니다. 패배에 대한 충격은 남아있어도 한국은 이 경기에서 꼭 좋은 모습으로 승리를 거둬야 합니다. 왜 조광래호 축구대표팀이 어떤 경기보다도 마지막 경기 3-4위전에서 최선을 다 해야 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넣은 뒤 환호하는 황재원 ⓒ연합뉴스
월드컵 본선 준비가 편하다

이번 3-4위전은 하나의 타이틀이 걸려있는 매치입니다. 바로 4년 뒤, 2015년 호주 아시안컵 본선 직행 티켓이 걸려 있습니다. 아시안컵에서는 3위까지 다음 대회 본선에 자동으로 진출할 수 있는 자격을 얻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본선 자동 진출권을 갖고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지난 2007년 대회를 사례로 들어보겠습니다. 당시 한국은 3-4위전에서 일본을 승부차기에서 꺾고 3위에 올랐습니다. 한국은 남아공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1월에 남아공 현지 전지훈련을 떠나는 등 월드컵 본선 준비를 알차게 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일본은 이 기간에 아시안컵 예선을 치러 쓸데없는 전력 낭비를 해야만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 일본 모두 월드컵 본선에서 16강에 오르기는 했지만 철저한 준비가 요구되는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아시안컵 본선 티켓을 갖고 있는 것이 상당한 프리미엄으로 작용했던 건 사실이었습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은 남아공월드컵만큼이나 환경, 시차 등 다양하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시안컵 본선 티켓을 미리 따놓는 게 하나의 필수 준비물이나 다름없습니다. 아쉽게 우승에 실패해서 2013년 컨페더레이션스컵 진출은 무산됐지만 아시안컵 본선 티켓을 따내 브라질 월드컵 본선을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마련하는 것만은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최소한의 성과물이라도 내야 한다는 얘깁니다.

박지성-이영표의 마지막 국제 대회 경기

이번 경기는 박지성과 이영표의 사실상 마지막 국제 대회 경기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두 선수 모두 남아공월드컵 본선 직후에 '아시안컵 이후 은퇴하겠다'고 밝힌 바 있었는데요. 그래서 이번 3-4위전이 2000년대를 풍미했던 박지성과 이영표가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뛰는 마지막 A매치가 될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한국 축구의 위상을 몇 차원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 이 선수들이 한 그라운드에서 마지막으로 뛴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경기 의미는 아주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모두 A매치 100경기 이상을 뛰어 센추리클럽에 가입한 두 선수의 마지막 경기가 기분 좋은 승리로 마무리되면 우승에는 실패해도 비교적 만족할 만한 '마지막'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신예들의 좋은 경험

박지성, 이영표의 대표팀 은퇴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 본선을 향해 나아갈 한국 축구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이들과 함께 뛴 젊은 선수들은 사실상 첫 국가대표 국제 대회인 이번 대회를 통해 새로운 목표와 꿈을 다지는 계기가 됐을 것입니다.

4골을 넣으며 득점 공동 선두에 올라있는 구자철을 비롯해 지동원, 손흥민, 이용래, 윤빛가람, 홍정호 등 앞으로 한국 축구를 이끌어나갈 차세대 신예들이 더 큰 포부를 갖고 한 단계 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려면 아시안컵 마지막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미 이 가운데서 구자철, 지동원, 홍정호 등은 2달 전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해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바 있습니다. 두 번의 쓰라린 아픔을 딛고 더 큰 도약을 꿈꾸는 신예들의 미래를 위해서 이번 경기 승리는 꼭 필요합니다.

마지막 자존심

무패를 거듭하다 일본전에서 아쉽게 패했지만 또다시 지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왕의 귀환'이라는 타이틀을 걸었을 만큼 한국 축구가 '아시아 축구의 왕'이라는 사실은 아시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시아 대륙에 있는 팀에게 또다시 패한다면 이는 마지막 자존심마저 상처를 입는 계기로 이어질 것입니다. 일본, 호주와 더불어 아시아 축구 빅3를 구축하고 있는 한국 축구가 이번 대회에서 어느 정도 체면을 유지하려면 이번 3-4위전에서 꼭 이겨야 합니다.

유종의 미

이번 대회를 위해 조광래호는 6개월 전부터 준비를 해왔습니다. 지난해 9월과 10월, 이란, 일본과의 평가전을 통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축구를 구사하며 체질 개선에 많은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그 성과는 완벽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달라진 모습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우승을 위해 선수들은 하나된 마음으로 투혼을 발휘하며 뛰고 또 뛰었으며, 8강 이란전, 4강 일본전과 같은 명승부를 만들어냈습니다. 열심히 뛰고 또 뛴 만큼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받으려면 마지막 경기 승리, 즉 유종의 미가 절실합니다. 어느 경기든 모두 중요하다고 하지만 조광래호가 보다 긍정적인 평가로 이번 대회를 마치려면 3-4위전에서 화끈한 모습으로 승리를 거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열심히 뛴 선수들에게 이기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많은 팬들은 언제든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기는 것을 바라고, 선수들은 그 같은 열망에 걸맞은 모습으로 승리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다시 뛰어야 합니다. 이번 대회에서 조광래호 축구대표팀은 충분히 최선을 다 했습니다. 다양한 가능성과 긍정적인 요소로 강한 인상을 남긴 조광래호가 꼭 마지막 경기에서 웃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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