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는 오랫동안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말을 들으며, 아시아 최강국이라고 자부해 왔습니다. 1986년 이후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좋은 성적으로 통과해 본선에서 아시아를 대표할 만한 실력과 성적을 냈던 게 바로 한국 축구입니다. 아시아에서는 꽤 수준 있는 리그 수준, 점차 성장하는 인프라 등은 아시아 최강국이라는 면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륙별 최강팀을 가리는 진정한 무대로 볼 수 있는 아시안컵에서 한국 축구는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1960년 이후 51년 동안 한국 축구는 아시안컵에서 우승에 실패했고, 결승에 오른 것 역시 지난 1988년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아시안컵에서 한국 축구는 큰 힘을 쓰지 못했고, 박종환(1996년), 허정무(2000년), 핌 베어벡(2007년) 감독이 이 대회를 끝으로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나며 '감독들의 무덤'이 되기도 했습니다. 성적 부진이 무엇보다 아쉽기는 했지만 월드컵이 최고라는 인식 때문에 상대적으로 아시안컵을 소홀히 했던 경향은 대외적으로 특히 일본과 중동 지역에서 한국 축구를 얕잡아보는 빌미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 축구가 다시 한 번 아시안컵 도전에 나섭니다.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23명 엔트리를 확정 발표한 뒤 2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최종 전지 훈련지인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 이동했습니다. 51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이라는 목표 아래 선수들의 각오는 당찼고 그 어느 때보다 가장 튼튼한 전력으로 대회에 나서 과연 어떤 성적을 낼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 아시안컵 정상 정복에 나서는 축구대표팀 ⓒ연합뉴스
한국 축구 입장에서 이번 아시안컵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무엇보다 앞을 내다보는 측면에서 이번 대회의 의미가 상당히 남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일단 출범한 지 단 6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조광래호의 첫 번째 메이저급 국제 대회 출전이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지난 8월,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에서 공식 출범한 조광래호는 냉온탕을 오간 모습으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낳으며 주목받았습니다. 3경기를 펼쳐 1승 1무 1패를 기록한 조광래호는 내용 면에서 이전 허정무호와는 차별화된 행보를 보였는데 특히 짧은 전진 패스와 선수 개인의 창의적인 플레이를 중요시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윤빛가람이라는 새로운 자원이 크게 주목받았고, 한동안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선수들의 능력도 새롭게 조명 받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반면 '만화 축구'라고 할 만큼 다소 난해한 전술 운영, 선수들이 아직 적응 단계에 머물러 이란, 일본전에서 시원스러운 경기를 보여주지 못했던 것은 "과연 아시안컵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을까"라는 말이 나올 만큼 우려를 낳기도 했습니다. K-리그, 나아가 한국 축구 전체적으로도 가장 현대 축구 지식, 전술 운영에 해박하고 지도력, 리더십에서도 우수하다고 정평이 난 조광래 감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상황이 어떻게 됐든 그래도 조광래 감독은 기대와 비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짧은 시간에 아시안컵을 준비했고, 이제 그 실력을 제대로 검증받을 때가 왔습니다. 만약 조광래호가 기대했던 성과를 내면서 기분 좋게 대회를 마친다면 2014년 브라질월드컵까지 그야말로 탄력을 받으며 팀 운영이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첫 번째 검증이자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수 있는 아시안컵에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면 더욱 힘이 실려 브라질월드컵을 향한 행보를 기분 좋게 이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아시안컵 이후 가속화될 세대교체가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입니다. 최근 박지성 국가대표 은퇴 논란을 비롯해 기존 주축 선수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과정에서 세대교체는 한국 축구의 가장 큰 과제이자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조광래 유치원'이라는 별칭을 들을 만큼 선수 키우기에 나름 정평이 나 있는 조광래 감독은 당연히 이를 놓치지 않고 출범 초기부터 세대교체를 단행했고, 이 과정에서 대표팀의 평균 연령은 25살까지 확 줄어들었습니다.

이번 대회에 사실 젊은 선수를 많이 뽑은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있기도 했습니다.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을 갖고 과연 아시안컵 우승이라는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걱정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박지성, 이청용, 기성용, 차두리, 이영표 등 경험 많은 해외파들이 주축으로 버티고 있어 젊은 선수들이 이들과 잘 호흡을 맞춰 국제 대회에서 좋은 경험을 쌓고 좋은 성적을 낸다면 훗날 전체적인 성장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내용적인 면에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한국 축구의 아시안컵 우승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아시안컵 우승이라는 타이틀 그 자체라고 봅니다. 내부적으로는 아시아 최강이라 자부해도 외부적으로 아직 아시아 최강이라는 타이틀에 의문 부호를 다는 것은 바로 아시안컵 우승이 너무 없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인식하는 중요성을 떠나 어쨌든 아시안컵은 AFC(아시아축구연맹)에서 주관하고 FIFA(국제축구연맹)가 인정하는 아시아 최고 국가대표팀을 가리는 무대입니다. 이 대회에서 우승을 한다면 한국 축구는 월드컵 본선 진출, 그리고 최근 클럽 축구의 잇단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값어치도 더욱 높아져 진정한 아시아 최강국의 위용을 자랑하고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아시아 챔피언 자격으로 2013년에 열릴 대륙별 최강팀끼리 벌이는 '미니 월드컵'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출전해 미리 월드컵이 열리는 브라질에서의 경험을 쌓는 것은 우승에 대한 '보너스'가 될 것입니다.

대표팀 은퇴를 앞둔 '베테랑' 박지성과 이영표는 이번 대회에 남다른 각오로 출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대부분의 선수들 역시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우승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주축 공격수 박주영의 부상 낙마라는 안타까운 악재가 닥치기는 했지만 우승 전선에 크게 문제가 있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여러 가지 기대와 우려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가운데 과연 그동안의 한을 풀고, 명실상부한 아시아 축구 최강국으로서의 위용을 드러내는 한국 축구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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