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교수의 새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습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만큼이나 놀라운 뉴스입니다. 과연 무엇이 장 교수의 책을 베스트셀러로 이끌었을까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장하준 교수의 전작, <나쁜 사마리아인들>, <사다리 걷어차기>,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다뤄왔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기존의 주장들을 23가지라는 틀에 맞게 분류해, 주장을 좀 더 명료하게 단순하게 만들었습니다. 때문에 장하준 교수의 전작을 전혀 읽지 않았다하더라도 장하준 교수의 주장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그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주장의 핵심은 명확합니다. “자유 시장경제의 신화를 허물자.”

자유 시장경제의 주장은 간단합니다. 무엇이든 시장에 맡겨두는 것이 최상이라는 것이죠. 자유 시장경제 옹호자들에 따르면 정부의 간섭은 적을수록 좋으며, 자유 무역을 막는 모든 장벽 및 자본의 이동을 막는 규제는 없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들은 정부가 운영하는 기업은 대부분 민간 기업으로 바꾸고 규제는 가급적 없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이렇게만 하면 모두가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절실한 전 세계의 일반인들은 일단 자유 시장경제 이론을 환영했습니다. 일단 배불리 먹게 해주겠다는데 거부할 이유가 없었죠.

언론과 경제학자들은 틈만 나면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우리들의 주머니를 무겁게 해줄 것이라 홍보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법칙은 곧 진리가 되었습니다. 자유주의 시장경제에 반하는 목소리는 경제 성장을 반대하는 집단으로 몰렸습니다. 시장 자유보다 정부 주도, 규제를 더 많이 이야기하는 사람은 시민들이 더 부자가 되는 걸 원치 않는 세력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자유 시장경제가 경제 대통령에 즉위한 지 약 20년이 흘렀지만 가난한 사람은 도처에 넘쳐납니다. 누군가 ‘혹시 자유주의 경제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자유 시장경제의 진리가 전달됩니다. “자유 시장 경제 아래서는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는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은 노력을 하지 않은 게으른 사람이다. 더 노력하라.” 어느 순간 자유 시장경제는 종교이자 신화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장하준 교수는 ‘과연 자유 시장경제가 우리의 지갑을 더 무겁게 해줬을까’란 의문과 함께 자유 시장경제의 신화에 도전했습니다. 동시에 ‘가난한 사람은 노력 하지 않은 사람이다’란 말에도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장 교수는 통계로 드러난 사실을 근거로 자유 시장경제의 신화를 해체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자유 시장경제가 경제 대통령에 즉위한 뒤 경제 성장률은 더 떨어졌습니다. 자유 시장경제를 도입한 뒤,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률은 3%(1960-70)에서 1.7%(1980-2000)로 떨어졌고요. 라틴아메리카 역시 3.1%의 성장률이 1.1% 곤두박질 쳤으며,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지역은 1.6%의 성장률이 0.2%로 떨어졌습니다. 세계은행 자료를 봐도 1960-1970년 사이 전 세계적 1인당 평균 소득 증가율은 3% 이였으나, 1980-2009년 사이에는 1.4%로 떨어졌습니다. (Thing 07. 자유 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

물론 자유 시장경제가 등장할 때부터 딴죽을 걸던 세력이 있었습니다. 바로 분배주의자들입니다. 하지만 자유 시장경제의 논리는 명확하고 간단하게 그들의 딴지를 일축했습니다. ‘일단 파이를 크게 만들면 모두에게 돌아가는 파이의 몫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말씀 역시 헛소리임이 증명됐습니다. 국제노동기구의 조사 결과, 1990-2000년 동안 20개 선진국 중 무려 16개국의 소득 불평도가 올라갔습니다. 미국의 소득 역시 상위 1%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에서 22.9%로 두 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심지어 1989-2006년 사이 미국 총소득 증가의 91%가 소득 순위 상위 10%에게 흘러갔습니다. 상위 1%가 차지한 몫은 총소득 증가의 59%에 달했을 정도고요. (Thing 13.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파이가 커지는 속도도 느려졌지만, 그나마 커진 파이도 소수의 부자들이 대부분 가져간 셈입니다.

굳이 미국을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시장 자유경제의 모범생이라 불리던 한국을 살펴보죠. 국제 노동기구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의 임금은 2007년 이래로 3년 연속 하락했습니다. (2007 -1.8%, 2008 -1.5%, 2009 -3.3%) 같은 시기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모두 플러스 성장을 유지했습니다. (2007 5.1%, 2008 2.2%, 2009, 0.2%) 한국의 노동 생산성은 최근 10년간 27.4% 증가했으나, 실질 임금율은 18.3% 인상에 그쳐, 28개 선진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는데요. 한 마디로 국가의 파이는 계속 커졌고, 노동자들이 파이를 만들어내는 생산성도 높아졌음에도, 노동자들의 지갑은 계속 가벼워져 왔단 의밉니다.

▲ 장하준 영국 캠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 ⓒ연합뉴스
이쯤 되면 우리 모두의 지갑을 더 무겁게 만들어줄 것처럼 이야기했던 자유 시장경제의 말이 모두 옳았던 것이 아니란 점은 분명해졌습니다. 신화의 틀 속에서 견고하게 보호받고 있었지만, 정작 신화를 해체하자 드러난 것은 거짓과 오류투성이였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자유 시장경제가 감히 악으로 평가하던 정부 주도 경제의 본 모습은 어땠을까요. 항상 옳은 것은 아니었지만, 정부 주도 경제 아래서도 시장 못지않은 성공 사례를 여럿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그랬고, 과거 선진국들이 그랬죠. 정부도 시장 못지않게 기업을 잘 성장시킬 수 있었고, 반대로 시장 역시 정부처럼 사업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결국 시장만이 유일한 답은 아니었습니다.

자유 시장경제는 경제 성장에 효율적인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자유 시장경제가 야기한 더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바로 불평등이 심화된 것입니다. 자유 시장경제는 소수의 부자에게는 완벽한 제도였지만, 다수의 서민들에게는 가난을 심화시키는 제도였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유 시장경제는 자신의 능력을 비판하는 세력들에게 ‘그 시간에 더 노력해서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라’는 이데올로기를 설파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유 시장경제 속에서 개천에서 용이 된 영웅들이 있습니다. 구두닦이 소년이 스탠포드 대학에서 박사를 따고 페루의 대통령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고등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페루 어린이들은 수백만 명에 이릅니다. 소수의 예외적 사례를 두고, 자유 시장경제는 서민들을 거짓 희망 중독에 빠트리고 있는 셈입니다.

실제로 장하준 교수는 “진정으로 공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개인의 가치에 맞는 임금을 받고 있다는 잘못된 신화를 깨트려야만 한다”(P.48)며, 여러 챕터에 걸쳐 가난과 개인의 능력 및 노력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웨덴 버스 운전사가 인도 운전사보다 임금을 50배 많이 받는 이유는 능력이 50배 뛰어나기 때문은 아닙니다.(직관적으로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또한 복지 제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나라일수록 계층 이동이 어렵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모두가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다는 미국에서는 가난한 아이들이 부자가 되는 경우가 극히 드뭅니다. 반면 많은 예산을 복지에 투입하는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는 가난한 아이들이 더 쉽게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장하준 교수가 자유 시장경제를 비판하며 대안으로 제시하는 정부 주도형 계획 경제는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부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장하준 교수는 결코 시장 자유경제를 폐기하자고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분명 시장 자유경제가 가져다 준 혜택도 어느 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 시장경제가 가장 효과적인 제도라는 믿음은 분명 바꿀 필요가 있다는 거죠. 자유 시장경제는 다양한 자본주의 이론 중 하나에 불과하며, 각 국가와 지도자들은 각각의 이론들을 상황에 맞게 취사선택해서 적용해야 합니다. “자본주의 경제를 운용하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자유 시장 자본주의는 이런 방법 중 하나일 뿐이고, 그 중에서도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다.”(P.329)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회적 행위를 시장에 맡기면, 그 행위를 규정하는 규범이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이었죠. 장하준 교수 역시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에서 자유 시장경제가 우리의 경제적 삶을 낫게 해주지 못했음을 증명했습니다. 공교롭게 비슷한 시기, 자유 시장경제를 비판한 서적이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번갈아 차지했습니다. 한국인들도 서서히 시장을 신봉하는 사회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일종의 신호탄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20년간 자유 시장경제가 외쳐왔던 주장이 거짓임을 사람들은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는 의미겠죠. 복지 예산을 늘리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이 경제 성장에 장애가 될 것이라는 믿음. 누구나 자유로운 시장에서 경쟁하다보면,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벗어나 좀 더 당당히 자유 시장경제의 독재에 대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신화에서 벗어날 때입니다.

책, 영화, 여행을 통해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추구하는 부지런한 블로거, ‘알스카토’입니다. (http://blog.naver.com/haine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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