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큐브>는 속편이라고 제작된 영화들이 사실상 판권만 사들여서 극장개봉보다는 홈비디오용에 적합한 B급 영화로 만든 흔적이 역력해 동정의 여지가 있습니다. 반면 <쏘우>는 2편부터 줄곧 극장개봉을 하고, 또 그게 흥행에서 지속적인 성공을 이루면서 제작사가 덧씌운 목줄을 좀처럼 벗어던지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로 시리즈는 장장 7편까지 이어지고 말았으나 그만큼 관객들의 원성은 차차 누적되는 역효과를 절절하게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두 영화의 제작사로 공히 2편부터 '라이온스 게이트'가 개입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라이온스 게이트는 이런 방면으로 유명한 제작사가 되었죠. 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들어 재미를 톡톡히 보는... 이젠 메이저도 무시 못 할 수준입니다)
<쏘우> 시리즈의 최대 패착이 바로 이것입니다. 물론 의도한 바이겠지만 <쏘우> 시리즈가 지금보다 더 많은 관객을 아우를 수 없었던 혹은 거센 비판을 받았던 이유는 "왜 죽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죽이느냐"에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게임 참가자(?)들이 어째서 살인도구 앞에 서게 됐는지에 대해 좀 더 정성스레 묘사했다면 관객으로부터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관객들이 저마다 간직하고 있는 심판자의 심리를 선동해 작은 쾌감을 선사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이 속편들은 "왜"가 아닌 "어떻게"에 집중적인 포커스를 맞추면서 도리어 죽어 마땅한 자들조차도 더 이상은 죽든지 말든지 그건 관심도 없게 만듭니다. 그저 눈살을 찌푸리게 될 지경에 이르게 되어버렸던 거죠.
무소불위의 힘을 이용해 범죄자를 처단하는 <데스 노트>의 '키라'와 <쏘우> 시리즈의 '직쏘'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저는 <데스 노트>를 읽으며 키라를 응원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키라를 막으려는 법치주의를 비난했습니다. 그것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이미 현실을 통해 절절히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테러리스트>의 한 대사를 신봉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조차도 직쏘의 행태에는 도무지 공감할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인생을 허비한다고 해서 자기가 뭐라고 주제넘게 타인을 징벌하려는 꼬락서니는 곱게 보아줄 수가 없더군요. 아무리 봐도 반성의 기회가 아니라 그저 살인게임을 즐기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말입니다.
<쏘우 3D>는 전작들과의 노선에서 전혀 벗어나질 않습니다. 이번에도 오프닝부터 잔혹한 실험대 위에 희생자들을 올려놓고 그들의 게임을 강제합니다. 그렇게 해서 <쏘우 3D>의 첫 희생자가 될 위기에 처한 자는 두 남자를 가지고 놀았던 여자입니다. 근데 말입니다. 저로서는 여지없이 공감대보다는 반발심이 앞서는 것도 변함이 없더군요. 물론 저 여자가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그게 과연 이렇게 처참한 죽음을 당해야 할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쏘우> 시리즈는 "왜"보다 "어떻게"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여실히 증명하는 대목입니다.
닥터 고든의 재등장도 참 허망하기 그지없더군요. 다 합해도 고작 5분이나 되려나요? 뭔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 줄 알았더니 뻔히 예상할 수 있는, 직쏘의 밑그림에 그가 있었다는 것을 '빨리 되감기'로 보여주는 것이 끝이라니! 그 밖에 반전이라고 보여지는 것도 나름 머리는 썼지만 인상적이라고 말할 정도는 되지 못하고...결과적으로 <쏘우 3D>가 가진 최대의 미덕은 "이것으로 시리즈는 종결이다"라는 것이 유일합니다. 닥터 고든을 직쏘의 후계자로 앉히면서 끝을 내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 그러나 여전히 추후에 시리즈가 부활할 수 있는 여지는 남겨둔 셈이었습니다.
라이온스 게이트로서는 케빈 그루터트가 앙심을 품고 <하피>처럼 개판 오분 전으로 만들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