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풀어내고 싶은 소재야 무궁무진하겠지만 개중에는 참으로 매력적임과 동시에 위험천만한 그것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괴물이나 슈퍼 히어로 그리고 이 영화에 등장하는 초능력자가 그렇습니다. 이러한 소재는 관객의 상상력과 원초적인 욕구 혹은 대리만족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자칫 잘못하면 허무맹랑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그림으로 묘사하면서 다분히 판타지적인 접근이 보다 수월한 만화와 달리, 실제 영상을 통하는 영화는 보다 현실적인 면이 중시되기에 이처럼 다차원적인 소재를 다룸에 있어서 한층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제가 <초능력자>의 제작소식을 들었을 때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초능력이라는 소재를 얼마나 리얼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던져보니 다소 회의적인 답변이 떠오르더군요. 과거에 봉준호 감독님의 <괴물>을 보기 전의 반응도 이와 흡사했습니다. 같은 소재를 다룬 영화라 할지라도 할리우드에서 제작하는 것과 우리나라에서 제작하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비단 특수효과와 CG 따위의 현란한 테크놀로지의 수준을 논하는 것만이 아니라 배경 공간 자체가 가지는 이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번 간단하게 생각해보죠.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L.A.도심의 길거리 한복판에서 총격전이 펼쳐집니다. 사실 이런 영화가 한두 편이 아니었으니 더 이상은 어색하거나 신기할 일도 아닙니다. 더군다나 미국은 총기소유가 허용된 국가라는 것쯤은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 덕분에 요즘은 지구 반대편 국가에 사는 초등학생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영화가 가상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철저히 망각하다 못해 '미국이라면 진짜 저럴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착각마저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이번에 미국여행을 갈 때 은근히 걱정했습니다. 유치하게 들리시겠지만 영화를 많이 본 자의 폐해라고 생각합니다. -_-;) 반면 우리나라 영화에서 총격전이 펼쳐지는 것을 본다면? 최소한 '뭐야? 저런 말도 안 되는...'이라며 콧방귀를 뀌지는 않더라도 관객들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것이 어디까지나 영화라는 사실을 잊지 않습니다.

요는, 동일한 소재를 다루더라도 '익숙한 현실'과 '낯선 미지의 세계'라는 공간적 배경의 차이는 관객의 감정이입을 조절하는 데 꽤 유용하게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사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관객의 자각을 부채질하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담았다면 그 자체가 관객에게 환각과 판타지를 조성할 수 있습니다.

예고편을 보면서 선입견을 버리고 기대치를 가지게 됐던 것처럼 <초능력자>는 그런 점에서 제법 훌륭한 완성도를 지녔습니다. 장편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김민석 감독님은 돋보이는 연출력을 선보이며 최대한 현실과의 이질감을 없애는 데 성공했습니다. 주인공으로 만화적인 외모를 가진 강동원을 택한 것도 나름 캐스팅 센스로는 적절했다고 봅니다. (물론 다른 이유가 더 컸겠지만 말이죠) 여러모로 비현실적인 소재를 현실의 세계에 끌어와서 녹여낸 데 대한 점수로는 감히 봉준호 감독님의 <괴물>이나 최동훈 감독님의 <전우치>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습니다.

<초능력자>는 다분히 초능력자나 슈퍼 파워를 지닌 캐릭터가 등장하는 히어로물의 구도를 따르고 있습니다. 바로 선과 악의 대립(대결)이죠. 주인공은 선천적으로 남들과 다른 기이한 능력을 가졌지만 그것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는 비운의 운명을 지닌 자입니다. 해서 세상에 대한 증오심을 품음과 동시에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자신의 능력을 악용하여 사람들을 조종하고, 돈을 훔치면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반면 그와 맞서 싸우게 되는 규남은 속세의 기준에서 볼 때 참으로 궁색하고 허접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중졸에다 가진 것도 없어 평범 이하인 그는, 그러나 초능력자와 달리 세상에 대한 증오를 퍼붓는 대신에 믿기 힘들 정도로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을 지난 인물로 그려집니다.

이상과 같은 <초능력자>의 주요 캐릭터 두 사람은 일면 뜻하지 않던 곳에서 자신의 존재목적을 일깨워줬으나, 그가 바로 정면으로 대립해야 하는 자인 악의 상징임을 알게 되는 <언브레이커블>이 떠오르게도 합니다. (극 중에서 초능력자가 규남에게 이를 연상시키게 만드는 대사를 직접적으로 내뱉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어디까지나 만화적 상상력에 입각해 그것의 극치를 보여줬던 <언브레이커블>에 반해 <초능력자>는 보다 심오한 주제로의 접근을 위한 발걸음을 뗍니다. 이미 <엑스맨>에서 다뤄지기도 했었던 '다름으로 빚어진 틀림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 그것인데, 아쉽게도 <초능력자>는 이러한 깊은 고찰을 요하는 주제의식의 표출에서 미흡한 면을 드러냈습니다.

<초능력자>는 남들과 다른 능력으로 인해 주인공이 가지게 되는 세상을 향한 분노와 그 배경에 좀 더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와 규남의 대결에만 집중합니다. 이른바 장르 영화로서 히어로물의 공식을 그대로 뒤따르는 길을 택한 것이겠죠. 그러면서도 <초능력자>는 다름의 의미와 비주류에 속한 자들의 처절한 운명을 논합니다.

주인공은 초능력을 가졌으나 돈이 떨어졌을 때 전당포를 터는 것이 고작인 소박한(?) 인물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방에서 피겨를 만들고 그 피겨를 혼잡한 도시의 형상을 한 모형 사이에 놓습니다. 이것은 주인공이 세상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가진 한편으로 그 속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싶어 하는 욕망을 지녔음을 의미합니다. 규남 역시 보잘 것 없는 인물이지만 그는 다름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을 보유하지 않고 누구와든 어울릴 수 있는 친화력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가 후에 일하게 되는 전당포는 그 이름 그대로 '유토피아'에 다름 아닌 공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규남을 비롯한 사람들은 피부색과 인종, 국적을 초월하여 그 어떤 다름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화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들 사이에 주인공이 끼어들면서 비극이 시작되는데, 이것은 결국 다름이 어울릴 수 없는 가혹하고 비정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결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주인공은 다중적인 의미의 캐릭터로 변모합니다. 이전까지 다름으로 인해 억압받고 차별당한 비운의 사내였던 그는, 이제 공권력마저 휘두르는 거대권력을 암시하는 자로 옷을 갈아입으며 탈바꿈합니다. 기껏 전당포를 털고 지하철을 오가는가 하면 서민적인 아파트를 배경으로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주인공이 작금의 지도층과 오버랩되는 것이 결코 과잉해석은 아니리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규남과 주인공의 입장은 순식간에 역전이 됩니다. 주인공의 초능력으로 인해 규남은 사람들 사이에서 고립된 채 홀로 고군분투하게 된다는 설정 또한 동일한 관점에서 해석하게 됩니다.

다만 영화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두 사람의 대결에 가려 온전히 제 색깔을 드러내지 못하고 맙니다. 심지어 조금 성급하게 카드를 꺼내드는 순간도 종종 등장합니다. 그래서 프롤로그에 이어지던 강동원의 내레이션은 극이 진행될수록 공허하게만 들립니다. 아무래도 <초능력자>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비정한 현실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데는 실패하고 초능력자라는 소재에 침잠하는 장르영화에 충실하려고 노력한 쪽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초능력자>를 실패작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물론 연출도 서투름을 종종 노출한 대목이 있지만 보편적인 관점에서 재미와 의미를 두루 섭렵하거나 서로 녹여내지 못한 시나리오가 조금 아쉬울 따름입니다. 만약에 차라리 둘의 대결구도에만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했더라면 오락영화로서의 완성도는 지금보다 더 높아졌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초능력자>의 가치를 논하자면 완성도는 비록 떨어지더라도 지금의 영화가 갖고 있는 진중함을 - 설사 그것이 부족하더라도 - 택하는 것이 현실적인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나탈리>에 대해 악평을 쏟았을 때 혹자는 그 영화가 한국 최초의 3D라는 것을 내세우며 너무한 것이 아니냐고 하더군요. 뭐 그 시도를 높이 사야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겠죠. 그러나, 시도 자체만을 한 편의 영화가 내세울 수 있는 장점으로 꼽으려면 최소한 <초능력자> 정도의 완성도는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초능력자>를 높이 사고 싶습니다. 덧붙여서 에필로그에 보여진 규남의 모습은 살짝 전율을 가지게도 만들었으며, 동시에 미흡한 완성도에 대한 아쉬움이 더 짙어지게도 했습니다. 그래도... 거기서 더 나아간 장면은 감독님의 과욕으로 보이네요. -_-;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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