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나는 금요일 저녁이 제일 좋다. 금요일 오후부터는 콧바람도 힘차다. 금요일 밤 9시이후 부터는 그야말로 내 세상이다. 작은 아들로부터 리모컨을 넘겨받아 흐물거리되 강한 흡착력을 지닌 낙지처럼 소파에 착 늘러 붙는다. 수영의 자유형과 배형을 오가듯 현란한 뒤집기 묘기를 선보이며 리모컨 쇼가 펼쳐진다. 금요일 밤 유일한 즐거움이다. 냉정한 시청자의 입장으로 돌아가 3초의 여유도 주지 않고 ‘흥미’와 ‘유익함’이 없으면 가차없이 채널을 돌린다. 금요일 밤에 좀더 ‘땡기는’ 프로그램은 역시 ‘흥미로움’이다. 일주일동안 보지 못한 각종 화제 만발 프로그램을 속성으로 해치우는 것도 이 시간이다. 이렇게 마스터한 프로그램은 기획론, 연출론 같은 강의에도 유용하게 활용되니 다소의 의무감도 수반된다.

▲ 온라인 투표가 진행 중이던 지난 9월 당시 '슈퍼스타K 2' 홈페이지 화면 캡쳐
2초 간격으로 리모컨을 돌리던 어느 날, 어느 어수룩한 소녀(?)가 기타를 들고 나와 노래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음색이 독특했다. 왕따를 당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음악으로 위안을 삼으며 어려운 시기를 극복했다는 그녀의 이야기에 마음이 짠했다. 노래도 잘하던 그녀는 여러차례 관문을 통과하며 매주 금요일 나로 하여금 방송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장재인’이라는 이름에 익숙해질 무렵, 그 프로그램이 <슈퍼스타 K2>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장재인과 김지수가 부른 <신데렐라>도 심사위원중의 한 사람인 박진영 못잖게 ‘재미있고 흥미롭게’들었고 탑 11 이후 심사위원들의 점수를 알아맞출 만큼 슈스케에 물들어 갔던 것은 참가자들의 이력 때문이다. 대부분 어렵고 힘든 성장기를 보냈으며 노래로 아픔을 극복했으며 슈스케를 통해 치유의 과정을 거쳐 음악적 성숙미를 더해가는 과정을 슈스케 김용범 책임PD못지않게 보람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탈락자의 눈물이 아름다운 것도, 그들이 탈락해서 우는게 아니라 이런 무대에서 설 수 있었던 게, 음악적 동지를 만난 것이 너무 행복해서, 이별이 못내 아쉬워서 운다는 것을 알고 박수도 보냈었다. 허각과 존박의 우정어린 대결구도, 중졸 검정고시 출신의 평범한 환풍기 수리공이 화려하게 슈퍼스타로 등극하는 드라마같은 과정을 거르지 않고 시청하며 케이블 TV 시청률 갱신에도 기여했다.
슈스케의 가장 큰 미덕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백그라운드 없이도’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열린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기적에 도전하고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응원했던 프로그램이다.

그렇다. 찍어낸 듯한 상품처럼 기획사에서 만들어진 스타들이 각종 채널을 장악하는 상황에서 거리의 가수 지망생들이 허름한 티셔츠에 세련되지 않은 매무새로 브라운관에 돌연 등장했다 해도 신선할 따름이었다. 그들이 ‘스타’를 꿈꾸든 꿈꾸지 않든 간에 도전은 아름다웠고 그들을 맞이한 ‘열린 문’이 멋졌다.

최근 전북에서는 크고작은 축제마다 미니FM이 활발하다. 지역주민들이 만들고 참여하는 방송이다. 전주국제발효식품엑스포 미니FM은 2006년부터 선보였고, 진안 마을축제는지난해부터 ‘진안미니FM 마이라디오’가 축제 기간중 운영된다. 김제에서는 작년 말 김제시 요촌동 김제 전통시장에서 ‘김제 장터 FM라디오’ 문을 열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 김제문화원에서 열린 김제미니FM 교육
지난 9월에는 김제 지평선축제를 앞두고 미니FM을 운영하기 위해 김제문화원과 전주MBC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라디오 제작 교육이 있었다. 9월7일부터 10월1일까지 14회에 걸쳐 진행된 교육과정 중 9월16일 오후7시부터 10시까지 <라디오 취재, 이론 및 실습>을 주제로 강의하기 위해 김제를 다녀왔는데 밤 늦은 시간까지 청취하는 김제시민들의 열성에 탄복했다. 미디어관련 진학을 꿈꾸는 고등학생부터 30~40대 주부와 회사원, 70대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30여명의 수강생들이 한눈 팔지 않고 열공하는 모습이었다. 소기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김제지평선 축제 기간 중 10월6일부터 10일까지 하루 6시간씩 진행된 미니FM은 성공적이라는 평이다. 전주MBC미디어센터 최병연실장은 “다른 지역의 미니FM 방송에 비해 평균연령이 60~70대로 노인층이 많은 것이 특징”이라며 “교육단계부터 매우 열성적인 자세로 준비해온 시민들이 직접 기획, 제작하여 만든 방송프로그램으로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모았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제작팀의 평균 연령이 높은 만큼 젊은이들보다 기술적, 감각적인 속도는 느리지만 열정 만큼은 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주일 동안 방송하면서 가슴 떨리던 추억이 미니FM 참여자들에게는 대단히 소중한 기억으로 자리할 것이다. 소통의 현장에 그 주역으로 당당히 서게 되었으니 그 보람이 얼마나 특별한 것이겠는가?

▲ 새김제 지평선축제 기간중 진행된 김제 미니FM, 시민들이 방송하고 있다.
지난 16일 최명희문학관에서 열린 <전북스토리창작스쿨>에 ‘스토리텔링 글쓰기’ 를 강의하러 다녀왔다. 역시 주경야독(晝耕夜讀)의 성실하고 인내심 강한 사람만이 수료할 수 있는 야간강의인데 젊은이들 다수의 수강생들 가운데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김제미니FM에서 만난 최경수 할아버지를 비롯, 권희옥, 이순덕, 장양례 할머니였다. 김제에서 전주까지 주2회 통학하며 글쓰기 공부에 도전하신 것이다. 라디오 원고를 잘 쓰기 위해 글쓰기 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는 이분들의 열성은 (이분들에 비해) 젊은 나도 못미친다.

이분들을 뵈면서 크게 느낀 점이 있다. 슈스케가 가진 것 없고 불우한 시절을 보낸 음악 지망생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었다면 지역의 작은 방송국, 미니FM이야말로 라디오 스타를 꿈꾸는 지역주민들에게 열린 공간이 아니겠는가. 미니FM 제작자들이 방송한번 잘 해보자고 저리 애정을 갖고 밤 늦은 시간 열공하는데, 문을 더 열어야겠다. 라디오 스타들이 몰려오고 있으니 말이다.

지역의 라디오 이야기를 쓰면서 꽤 오랫동안 직무유기한 반성을 얹어 예비 스타들의 소식을 기쁘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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