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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 여왕, 알고 보면 꽤나 슬픈 이야기[블로그와] 탁발의 티비 읽기
탁발 | 승인 2010.11.09 09:14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일상의 지루함 혹은 불만족스러움을 드라마가 주는 극적요소들을 통해서 카타르시스를 얻거나 대리만족을 구하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대부분의 드라마는 말 그대로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특별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러다보니 불행하게도 막장 코드라는 한류라는 말이 부끄러운 현상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김남주를 앞세운 역전의 여왕 역시나 평범을 가장하고 있지만 사실 그렇지만도 않다.

또한 김남주와 정준호의 티격태격하는 대사가 코믹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이 드라마는 은근히 많은 슬픔들을 깔아놓고 있다. 김남주를 역전의 용사로 만들어줄 결정적 구세주 구용식은 한국 드라마에서 아주 흔한 케릭터이긴 하지만 그를 단지 재벌2세라고 해서 대단히 행복한 인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구용식을 행복한 남자로 보는 순간 이 드라마 감상 포인트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또한 구용식, 황태희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한상무 역시도 퀸즈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지만 그녀 역시도 불행하기는 마찬가지다. 자기를 배신한 황태희를 무려 5년간이나 쫓아다니며 앞길을 막을 정도의 집요하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황폐한 것이고, 그 황폐한 삶을 오직 권력 하나로 눈속임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녀의 심복 백여진이 한상무 눈 밖에서 몰래 봉준수와의 옛정을 갈구하는 것 역시도 참 딱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물론 이 드라마는 분명 해피엔딩으로 끝맺게 될 것이고, 김남주가 참 자주 실감나는 눈물을 흘려주고는 있지만 그 눈물이 역전의 여왕을 무겁게 하지는 않는다. 애증을 가져 더 무서운 한상무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역전 홈런을 쳐낼 황태희이기에 이 정도의 고난과 눈물을 나중의 희열을 위해 필요한 드라마 전개의 공식에 불과할 뿐이다.

한국의 고급 CF는 도맡아 해온 김남주의 극히 아줌마스럽고 억척스러운 모습은 시청자로 하여금 그녀에게 더욱 바짝 다가서게 하고 있다. 내조의 여왕 태봉이가 그랬듯이 구용식이 분명 태희앓이를 하겠지만 그렇다고 이 둘이 연애를 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의 지원군인 주부들의 분노보다 무서운 외면이 뒤따를 터이다. 결국 이 드라마는 이미 전편도 있기 때문에 결과를 미리 알고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인물들 간의 갈등과 어서 황태희와 구용식이 손을 맞잡고 역전의 가도를 달리기를 애달프게 기다리는 시청자 역시도 은근히 안쓰럽다. 역전의 여왕을 매주 챙겨보면서 황태희의 성공을 고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두가 봉황부부와 비슷한 처지인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할 것 없이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의 일상에는 아주 무거운 돌이 하나씩은 얹어져 있을 것이다.

   
   
자기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자고 일어나면 항상 어제 같은 아침을 맞는 변화 없는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이 드라마는 별 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기대와 희망을 이입하게 한다. 평생을 살아도 구용식 같은 구세주를 만나기란 로또에 당첨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로또도, 구용식도 없는 그러나 희망은 버리고 싶지 않은 고단한 장삼이사들이 이 드라마를 지켜보는 모습이 또한 서글프다.

이 드라마와 시청자의 사이를 생각하는 엉뚱한 발상 속에 의미는 다르지만 곽재구의 시 한 편이 떠올랐다. 구구한 사족을 생략하고 그의 시 일부를 옮겨와 본다.

황사바람 이는 땅끝에 와서
너를 사랑한다는 한마디 말보다 먼저
한 송이 꽃을 바치고 싶었다
반편인 내가 반편인 너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히죽 웃으면서
묵묵히 쏟아지는 모래바람을 가슴에 안으며
너는 결국 아무런 말도 없고 (하략, 곽재구 시 땅 끝에 와서 中)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탁발  treeinu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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