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많은 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국가, 인종, 문화, 종교의 벽을 허물고 축구공 하나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안겼습니다. 그래서 축구가 하나의 종교처럼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축구가 만들어낸 평화에 흠집을 가하는 일도 적지 않았습니다. 폭력으로 인한 유혈 사태가 벌어지는가 하면 심지어 국교 단절, 전쟁 같은 일이 벌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바로 '인종 차별(Racism)'입니다.

최근 축구장에서의 인종 차별 문제가 국내팬들에게서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계기는 바로 스코틀랜드 셀틱에서 뛰고 있는 차두리, 기성용이었습니다. 차두리는 지난 30일, 세인트 존스턴과의 원정경기에서 상대팀 서포터, 팬들이 기성용에게 심한 야유와 함께 인종차별성 행위를 저질렀다고 폭로하면서 축구장 내 인종차별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차두리는 당시 기성용이 볼을 잡을 때 원숭이 소리를 내면서 인종 차별적 행위를 서포터들이 펼쳤다면서 "상당히 심각한 일이었고, 매우 불쾌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여기에 스코틀랜드 현지 언론은 팬들이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조롱하는 구호까지 질렀다면서 당시 상황이 상당히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했습니다. 상황이 일파만파 퍼지자 스코틀랜드리그는 진상 조사에 들어갔고, 세인트 존스턴 역시 자체 조사에 착수하는 등 또 한 번 축구장 내 인종 차별 문제가 도마에 올랐습니다.

▲ 기성용 차두리 선수 ⓒ연합뉴스
유럽 내 인종 차별 문제는 이미 오랫동안 지속돼 왔습니다. 특히 최근에 아프리카, 아시아계 선수들이 대거 유럽에 진출하면서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05년 사라고사와의 프리메라리가 원정경기에 나섰던 사뮈엘 에투가 상대팀 서포터들에게 모욕을 당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에투는 원숭이 소리를 들으며 모욕적인 상황을 맞았고, 특히 골을 넣은 뒤에는 상대 서포터들이 먹이를 먹으라는 듯 운동장에 땅콩을 던지는 행동을 취해 상당히 불쾌한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결국 에투는 이에 대항하듯 원숭이 춤 골뒤풀이를 펼쳤고, 이후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해 더욱 목소리를 높이는 대표적인 선수로 떠올랐습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에투가 뛰는 경기마다 인종 차별, 파시즘을 외치는 일부 팬들은 에투를 향해 더욱 인종차별적 구호를 외치고 있고, 지금도 에투는 인종 차별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유럽 내에서도 유색 인종이 대표로 발탁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이를 능멸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져왔습니다. 잉글랜드 대표팀의 핵심 수비수 리오 퍼디낸드는 독일 선수를 비롯해 몇몇 선수들로부터 경기 중에 인종차별적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고, 프랑스 축구 스타 티에리 앙리 역시 유럽 무대에서 수차례 인종차별과 관련한 모욕적인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스페인 내부에서는 이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게 벌어져 FIFA로부터 수차례 벌금을 물거나 주의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요. 특히 명문팀 레알 마드리드는 파시즘을 내세운 응원 구호로 엄청난 비난을 한 몸에 받기도 했습니다. 또 우리 선수 가운데서 이영표, 설기현 등이 과거 잉글랜드에서 뛸 때 이같은 문제로 홍역을 치른 적이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이탈리아에서 몇몇 팀 팬들의 인종차별적 구호로 말썽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눈살을 찌푸리게 한 바 있었습니다.

응원 자체가 과격하고 터프한 유럽에서 상대팀 또는 상대 주요 선수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응원, 구호를 외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쳐 상대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응원, 더 넘어서 인종 차별적 응원을 펼치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로 지적돼 왔습니다. 이를 근절하기 위해 FIFA를 비롯한 국제 축구 차원에서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했지만 아직 완전히 뿌리뽑히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갈 길이 멀어 보이기만 한 게 사실입니다. 남아공월드컵 당시에도 8강 토너먼트서부터 양 팀 주장이 인종 차별을 근절하자는 메시지가 담긴 선언문을 경기 전 낭독하는 캠페인을 벌였고, 인종 차별 행위가 나타나면 승점 삭감 및 활동 제재 등 강력한 패널티도 적용해 왔는데 말이지요.

인종, 문화, 종교로 상대를 차별하고 비난하고 무시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될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독일월드컵 원정 취재를 갔을 때 네덜란드 팬들의 매너있고 따뜻한 응원과 달리 스위스 몇몇 팬들이 저를 비롯한 일행이 지나갈 때 다소 무시하는 듯한 응원을 직접 보고 겪으면서 평소 이런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해 상당히 깊은 문제 의식을 갖기도 했습니다. 이런 응원이 하나의 문화라고 이해해야 한다고도 하지만 남의 본질을 무시하면서까지 하는 응원은 결코 좋은 응원이라 할 수 없고, 그나마 모든 이들의 희망과 같은 축구의 본질도 흐리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깨끗하고 정정당당하면서 열정적이고 매너 있는 응원을 펼친 우리 붉은 악마를 보면 왠지 모를 자부심이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선의의 경쟁, 열정적이면서도 룰을 지켜가면서 펼치는 응원이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 명장면으로 연결됐던 사례를 많이 봐 왔습니다. 그 밑바탕에 선수, 감독, 그들을 응원하는 팬들의 매너 있는 자세 그리고 인종, 문화, 종교를 차별하는 행위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인종 차별 행위가 곧 제 살을 깎아먹고 그동안 쌓아온 축구 이미지에도 상당한 타격이 가해질 것이라는 것을 전 세계 축구계 모두가 공감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기성용 문제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축구 내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고, 특히 아시아쿼터제에 따른 외국인 선수 영입 변화로 인해 만에 하나 생길지 모르는 인종 차별 행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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