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4일 오전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판사는 반신반의로 여겨졌던 전직 대법원장의 구속을 결정했다. 명 판사는 “범죄사실 중 상당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며,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경과와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추어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구속영장 발부의 사유를 밝혔다. 이로써 사법농단 사건에 대해서 좀처럼 구속을 거부해 받아야 했던 ‘방탄법원’이라는 비난을 비로소 모면할 수 있게 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하기 전 입장을 밝힌 뒤 돌아서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이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들의 시각이 이상하다. 거의 대부분 언론들이 타이틀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헌정사상 초유’라는 부분이다. 차츰 달라지겠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이 가진 본질적 의미를 왜곡한다는 비판을 자초한 행태이다. 이 사건의 본질은 사법농단에 대한 범죄사실을 법원이 더 이상 보호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결과는 단순하지만 과정은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그 고통의 무게를 생각해서라도 전직 대법원장이 사상 처음으로 구속된 것에 방점을 찍을 일은 아니었다.

구속 전에도 언론의 이해 못할 보도 행태가 이어졌다. 양승태 구속심사를 법원의 딜레마라는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어떤 기사는 “여론이냐, 조직이냐”며 드라마 보듯 바라봤다. 판사는 범죄사실에 대해서 법과 양심에 따른 판단을 하면 그만이다. 여기에 여론이니 조직이익을 개입시키면 그것이 곧 사법농단이다.

사법농단을 심판해야 할 법원에게 딜레마 운운하는 것은 언론이 법원에 사실상 또 다른 의미의 사법농단을 부추기거나 유혹하는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판사 개인에게는 인간적인 갈등 요소가 없지는 않겠지만 그것은 판사 개인이 가슴에 묻어둘 일이지 언론이 자의적으로 풀어낼 부분은 아니다.

네이버 뉴스 화면 갈무리

심지어 영장전담판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25년 후배라는 사실까지 굳이 강조하는 대목은 언론의 구태 혹은 적폐적 시각을 그대로 노출한 것이었다. 영장판사의 독립성을 흔들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면 불필요한 주목이었다. 과연 언론이 사법농단의 본질을 알고 양승태 수사에 접근하고 있는지 근본적인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전직 대법원장의 구속심사 자체가 큰 사건인 것은 분명하지만 흥미로운 일은 아니다. 또한 처음인 것이 본질이 아니다. 구속 전에는 딜레마를 강조하고, 구속된 후에는 사상초유에 방점을 찍는 언론의 행태는 철저히 흥미 본위로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또한 시민의 눈이 아닌 검찰이나 법원의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법농단 피해자의 시선에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이 과연 딜레마였겠는가 돌아봐야 할 이유이다. 법원과 검찰을 오가며 취재를 하면서 언론도 그 밥에 그 나물이 된 것 아닌지 냉정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