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공사 때문에 정말 채소값이 뛴 걸까?

인터넷에서 관련한 글들을 보고 처음에는 누리꾼들이 너무 억지를 부리는 것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워낙 이 정부가 거짓말 하다가 들통난 게 많아서 누리꾼들 사이에 ‘4대강 괴담’이 떠도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야당 국회의원들과 학계에서 나오는 자료들을 살펴보니 꼭 그렇게 폄하해서 살펴볼 얘기는 아닌 듯 싶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채소값 폭등이 기상이변 때문인 것은 확실해 보이는데, 대체 ‘4대강과 채소값’이 어떤 관련 있길래 논란이 사라지지 않는 지 객관적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이 주장은 얼마나 과장되어 있고, 얼마나 필요이상으로 무시되고 있는지 살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팀장과 상의 후에 취재에 들어갔습니다.

▲ ⓒ허재현 기자

채소값 폭등과 4대강 공사 관련 있다

취재 결과, 제 판단부터 짧게 전해드리면 이렇습니다.

채소값 폭등의 주 원인은 기상이변 때문이 맞습니다.

유통업자의 사재기도 분명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4대강 공사는?

이것도 유의미한 수준으로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정부의 설명처럼 ‘관계 없다’고만 볼 수는 없었습니다.

‘4대강 공사와 채소값 폭등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야당과 농민단체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정부 발표 ‘1.4% 채소밭’ 의심스럽다

첫째. 정부가 ‘4대강 유역에서 사라진 채소밭 1.4%’라는 통계의 순수성이 의심스럽습니다.

정부는 ‘채소값과 4대강 사업은 관련 없다’며 ‘4대강 유역에서 사라진 채소밭이 3,662ha이고 전국 채소밭 면적의 1.4%에 불과하다’는 보도자료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알고 봤더니, 실제 사라진 채소밭 면적이 아니라 ‘정부가 보상해 준 채소밭 면적’만 발표한 것 같습니다. 행정통계에 잡히지 않는 채소밭 면적은 정부 발표 안에 없습니다. 이걸 따져보는 게 왜 중요하냐면, 원래 4대강 유역에는 무허가로 채소밭을 일구던 곳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채소 생산량 감소를 추산할 때 이걸 빠트려선 안 되는 것이지요.

국토해양부가 지난 해 9월 발간한 ‘4대강 살리기 마스터 플랜’ 보고서를 살펴보면 뭔가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보고서를 직접 살펴보니 정부는 애초 ‘4대강 공사로 사라질 전체 영농지 규모’를 17,750ha 정도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토해양부는 얼마전 이 면적을 9,487ha 로 축소 발표했습니다. 여의도 면적 10배 크기의 오차가 난 겁니다.

국토해양부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이런 저런 설명을 해주긴 하는데 결국 요약하면 “모르겠다” 였습니다. “이전 용역업체가 만든 보고서인데 왜 이렇게 오차가 크게 났는지는 자신들도 알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20조원의 혈세가 들어가는 4대강 공사 보고서가 이렇게 엉터리로 만들어졌다는 게 말이 됩니까? 국토해양부의 설명을 곧이 곧대로 믿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야당과 학계 일부에서는 국토해양부가 애초 발간한 ‘4대강 마스터 플랜’에 나온 수치를 근거로 4대강 유역에서 최소 4.7%의 채소밭이 사라진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면적보다 중요한 건 생산량

둘째. 정부는 사라진 채소밭 면적 1.4%에만 집중해 설명하며 애써 ‘4대강 관련성’을 일축합니다. 비교적 합리적인 듯 보이는 이 설명에 대해 그러나 농민단체는 이렇게 반박합니다.

중요한 건, 채소밭 면적이 아니라 생산량이라는 겁니다. 4대강 유역에서 4.7%의 채소밭이 사라졌지만 생산량은 두 배 이상 줄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왜냐. 4대강 유역은 비옥한 충적토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비닐하우스와 같은 시설재배가 많이 이뤄졌기 때문에 그 생산성은 일반 노지보다 훨씬 컸다는 겁니다. 농민단체에서는 최소 10%에서 20% 가량 채소 생산량이 줄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10% 가량의 채소 공급량만 줄어들어도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가격이 10%만 뛰고 말까요. 하지만 농산물이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다. 농산물은 ‘수요가 일정해서 공급량이 조금만 변해도 가격이 크기 오르 내리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김치나 상추가 아무리 비싸도 소비자들이 웬만하면 구매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농촌경제연구원 과일과채관측팀에서는 “3~5% 정도의 공급량만 바뀌어도 농산물 가격은 요동칠 수 있다”고 제게 설명해주었습니다. 4대강 공사 때문에 전국 채소 생산량이 10% 감소했다면 농산물 가격에 분명 유의미한 수준에서 영향을 주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유통업자들도 “4대강 공사 관련 있다”

유통업자들을 직접 만나 물어보았습니다.

‘4대강 공사 때문에 정말 채소 구하기 어려워졌나요?’

물론, ‘큰 관련 없다’고 답한 유통업자도 만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관련이 아주 없지는 않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부산, 경남 지역의 유통업자들이 이런 견해를 보였는데요. 낙동강 유역에서 채소밭들이 어마어마한 규모로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 ⓒ허재현 기자

낙동강 하구에 펼쳐진 부산시 사상구 삼락지구의 25만평 채소밭 대지를 직접 찾아갔습니다. 부산시에 상당량의 채소를 공급하는 곳입니다. 이곳 채소밭은 4대강 사업이 시작되면서 ‘낙동강 살리기 공사구간’에 편입되면서 시커먼 흙더미로 변해버렸더군요. 정부가 강제로 준설토를 쌓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몇몇 농민들은 정부의 방침에 저항하며 계속 농사를 짓고 있었지만 이미 80% 이상의 채소밭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사라지고 있는 채소밭의 규모는 한 눈에 보기에도 어마어마 했습니다.

문제는 4대강 유역에서 사라진 대형 채소밭 부지가 여기 뿐이 아니라는 겁니다. 제대로 통계도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수없이 많은 채소밭들이 사라졌습니다. 농민들은 김해시, 양산시에도 대규모로 사라진 채소밭이 있다고 전하며 제게 가보라고 했습니다. 제 기사가 나가고 나서 충남 논산, 부여 인근에서도 거대한 호수처럼 보이던 비닐하우스들이 사라졌다며 가보라는 제보가 도착하기도 했습니다.

기사 마감 일정이 있어서 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관심 있는 기자들이나 블로거들이 가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부는 지금 어느 어느 지역의 채소밭들이 사라졌는지 그 자료조차도 국회의원들에게 주지 않고 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관심 있는 사람들이 직접 발로 뛰면서 찾아보는 수밖에 없어보입니다.

▲ ⓒ허재현 기자

‘기상이변, 사재기, 4대강’ 세박자 맞아 떨어졌다

글을 정리하겠습니다.

4대강 공사 때문에 채소값이 올랐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기상이변, 유통업자 사재기, 4대강 공사. 이 세 박자가 착착 맞아 떨어져 이번 채소값 폭등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듯 합니다. 이건 제 견해이기도 하지만 제가 만나 본 농민들, 유통업자들의 공통적인 판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4대강만큼은 관련없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정말 백번 양보해서 1.4%라고 칩시다. 그런데 그 1.4%라도 줄이기 위해 중국산 배추도 들여오면서 어떻게든 시장을 안정시키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무조건 관련 없다고만 할 게 아니라 “4대강 인근에서 사라지는 채소밭 규모를 줄이는 데 최선을 다 하겠다” 이런 해명을 들을 수는 없는 걸까요.

정범구 민주당 의원은 “4대강 알레르기에 걸린 정부”라고 표현하더군요.

저 비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건 저 뿐일까 싶습니다.

▲ ⓒ허재현 기자

#덧글.

기사가 나간 뒤 트위터에서 ‘4대강과 채소값 폭등’ 관련 멘션을 했더니‘4대강살리기추진본부’쪽에서 5분도 안 되어 제게 멘션을 보내오더군요.‘배추값 폭등은 이상 기후 때문’이라는 뉴스를 링크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이건 물타기 설명입니다. 야당과 농민들은 4대강과 배추값 폭등을 연관 지어서 얘기한 적 없습니다. 배추값 폭등은 4대강과 상관없는 고랭지 지역의 농사가 좋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배추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채소값이 폭등했다는 겁니다.

조만간 배추값은 떨어질 겁니다. 배추는 심은 지 90일이면 출하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전국 곳곳에서 배추가 자라고 있습니다. 그 때가서 ‘그것 보세요. 4대강 공사랑 상관 없잖습니까’ 이렇게 또 해명하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현재 한겨레 방송부문 뉴스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돼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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