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50%를 돌파하며 화려하게 떠난 제빵왕 김탁구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수목 드라마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기대를 안고 시작했지만 김현중과 원작의 팬들조차 불만과 항의를 남길 정도로 조악한 완성도를 보이며 일찌감치 선두 경쟁에서 탈락한 장난스런 키스를 바닥에 깔고, 1주일 상관으로 시작한 KBS의 도망자와 SBS의 대물이 맞붙은 형국이에요. 첫 주의 비등한 시청률을 보면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가 아니라 각자가 자기 지분을 비슷하게 가져갈 듯하지만 월화드라마의 치열한 다툼의 끝에 결국 동이를 재치고 앞으로 나가기 시작한 자이언트를 보더라도 승부는 좀 더 길게 봐야 결판이 나겠죠. 오랜만에 어떤 드라마를 봐야할지 고르게 되는, 시청자로서는 행복한 고민이 시작되었네요.

그만큼 이 두 작품은 확실한 차이점과 매력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추노의 제작진이 뭉쳐서 현대 액션 활극에 도전한 도망자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추리물의 재미를 톡톡히 보여줍니다. 워낙에 잘 만들어진 추노와 비교하면 아무래도 아쉬움을 감출 수는 없지만 화면의 유려함과 재미난 캐릭터들은 여전히 살아있고 이른바 대작 드라마가 놓치기 쉬운 구성의 헐거움도 아직까진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대물 역시 현재의 상황을 반추해가며 선이 굵은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하죠. 비록 SBS가 월화는 현재의 각하를, 수목은 유력한 특정 정치인을 미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긴 하지만(이 부분은 좀 더 지켜보고 언급하는 것이 공정하겠습니다만) 그런 생각을 지우고 본다면 확실히 흡입력이 있는 드라마인 것은 사실입니다. 고현정이 어떻게 미실을 벗어날 것인가도 재미난 구경거리이구요.

하지만 불행히도, 이 두 드라마 모두 한 가지 씁쓸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몹시나 치명적인,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끝까지 안고 가야하는 아픈 부분이죠. 작품의 만듦새와는 상관없이 극의 핵심인 남자 주인공, 도망자의 비와 대물의 권상우가 모두 부적절한 개인 신변 문제에 얽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단지 개인의 문제라 치부하며 가볍게 지나가버리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극중 인물에 대한 호감까지도, 그리고 몇몇 시청자들에겐 작품 자체에 대한 관심마저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쉽지 않은 문제들이죠. 지금 상황에서 이 두 남자 주인공은 드라마의 민폐라고 밖엔 할 수 없어요.

배임과 횡령. 월드스타를 자부하던 비에게 도무지 어울리지 않은 꼬리표가 너무 오랫동안 매달려 있습니다. 이미 고소고발이 들어간 상태에서 검찰 조사 중인 상황이고, 소속사와 비 역시도 각 사안에 맞추어 적극적으로 해명, 반박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진흙탕 투성이의 공방전이 도망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리 만무하죠. 게다가 그들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듯이 설혹 법적 책임은 없을지라도 도의적 책임은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로 인해 피해를 본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의 아픔을 생각한다면 선뜻 도망자 속의 넉살좋고 유쾌한 탐정을 받아들이기는 힘듭니다. 지금은 해소가 되었지만 군 문제까지 걸려 쉽사리 귀국하지 못했던 촬영 초기 그의 행적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구요. 게다가 이런저런 절차와 법정 공방이 아직 초기단계이기에 그의 혐의는 이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풀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도망자로선 더더욱 우울하기만 합니다.

교통사고 뺑소니 사건이 있은 지도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고, 권상우 역시도 대물이 출발하는 자리에서 사과의 뜻을 표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충격과 이미지가 말끔하게 사라질리 만무합니다. 이번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 관계자는 특혜를 주었다는 봐주기 수사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고, 그런 일에 연루되었던 사람이 대한민국의 정의를 이야기하며 최초의 여자 대통령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검사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뭐 어차피 법과 질서를 말하는 사람들의 이면을 인사청문회에서 낱낱이 보아온 우리에겐 오히려 권상우의 범법자와 검사의 이중적인 모습이 더 현실적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두 작품 모두 사정이 이러하니 작품 홍보를 위한 포커스는 비호감덩어리가 되어버린 남자 주인공이 아닌 다른 부분, 그들의 파트너인 여자 주인공 고현정이나 이나영의 색다른 모습, 변신 운운하는 것에 맞추어 질 수 밖에 없고 되도록이면 언론에 남자 주인공이 부각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 역력합니다. 무슨 편들기를 하는 것 마냥 그를 향한 부정적인 기사들의 출처들도 의심스럽기 그지 없구요. 곤란한 상황 관계를 쭉 나열해놓고 지금 비는 도망자에, 권상우는 대물에 출연하고 있다고 추신처럼 덧붙여 놓은 몇몇 기사들을 보고 있자면 이런 유치한 언론전이 또 어디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워낙에 치열한 싸움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지만 그 속이 너무 뻔하게 보이거든요.

물론 두 사람 모두 변명과 억울함이 있을 겁니다. 권상우는 이미 법적인 해결이 끝난 상태에다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작품에 매진하겠다는 각오를 밝혔고, 비는 악의적인 사실 유포를 경고하며 세세하게 각종 의혹과 문제제기에 대한 반박을 하고 있죠. 하지만 문제는 이들의 논란들이 작품 속 그들의 모습에 몰입하지 못하게, 심지어 작품 자체에 대한 호감을 지워버린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신변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 충분히 해결된 뒤에, 그리고 그 여진과 상처가 본인에게나 대중들에게도 충분히 아문 다음에 복귀해도 좋을 것을 굳이 이렇게 상처 투성이로 드라마에 등장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의 문제이죠. 언제라 특정할 수도 없고, 애매모호하기 그지없는 표현이긴 하지만 이들에겐 드라마 출연 강행이 아닌 자숙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요? 둘 다 끌리긴 하지만 왠지 꺼려지기도 하는 두 드라마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와서 하는 말입니다. 이들 민폐 남자 주인공들을 생각하면 한동안 수목드라마는 무엇을 선택할지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굳이 챙겨보고 싶지도 않은 어중간한 시간이 될 것만 같아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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