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후플러스>와 <김혜수의 W>를 폐지하는 계획을 확정했지요. MBC의 중요한 시사프로그램이 두 개나 한 꺼번에 폐지되면서 MBC의 공영성이 크게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MBC의 모든 시사 보도물들은 저희 <한겨레>의 중요한 참고물이자 경쟁물들인데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거 참’ 뭐라고 말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김혜수의 W> 애청자였습니다. 김혜수 씨가 투입되기 전부터 매우 아끼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우리의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김재철 MBC 사장 ⓒMBC
많은 분들이 지켜보셨겠지만 <W>는 그저 그런 시사 보도물이 아닙니다. 기존 국제 보도물의 관성을 뒤집어 우리만의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9월 10일 방송분을 볼까요. <김혜수의 W>에서는 아프리카 가나의 아이들이 전자쓰레기에 노출된 채 병들어가는 모습을 취재했습니다. 사용할 수 없는 전자제품들이 ‘기부’라는 형태로 아프리카로 건너가지만 실제로는 ‘쓰레기’나 다름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고발합니다. 여기까지만 봐도 훌륭한 국제 시사 보도물이지만 이 프로그램은 한발 더 나아갑니다.

우리나라 역시 세계의 주요한 전자 쓰레기 수출 국가인 것을 놓치지 않고 이야기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문제들이 우리와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 지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이죠. 이날 방송분을 보면서 저는 무릎을 쳤습니다. <W>제작진을 마음 속으로 크게 칭찬했던 기억이 납니다.

공중파 방송사를 통틀어 <W>같은 국제 시사보도물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국제 프로그램들은 그저 그런 관광물이거나 서구인의 시선에서 찍혀 온 보도물들을 우리말로 번역해 전달하는 것들 뿐입니다. 하지만 <W>는 달랐습니다. 세계 곳곳에 널려 있는 ‘불편한 진실’들을 과감하게 취재하고 특히 아시아인의 눈으로 아시아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어왔습니다. 영미권의 이슈보다 필리핀,동티모르 같은 동남아시아,키르기스탄과 같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현실을 바로 볼 수 있게 하는 거의 유일한 프로그램이 바로 <W>였습니다.

<W>는 시청자 입장에서 보면 정말 모래 속의 진주같은 프로그램이었고, 같은 언론인 입장에서 보면 정말 ‘배 아플 정도로’ 잘 만든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함께 폐지되는 <뉴스 후>도 뒤지지 않습니다. 한번 보도 되고 나면 ‘언제 그런 일 있었냐는 듯’ 망각해버리는 언론의 관성을 뒤집고 ‘뉴스 이후의 이야기’들을 취재해 고발하는 신선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 <김혜수의 W> 홈페이지 화면 캡처
이런 MBC의 주옥같은 프로그램들을 없애버리기로 결정한 MBC 경영진의 생각이 참 궁금합니다. 한발 후퇴하면서 경쟁 언론인들 기 살려 주려는 의도도 아닐텐데 왜 이런 프로그램들을 스스로 포기하면서 MBC의 가치를 떨어트리려 하는 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시청률이 안나오기 때문이라는 해명을 전해듣긴 했습니다. 정말 이들 프로그램들이 시청률 안나오는 시사 프로그램이었는 지도 모르겠지만 시청률을 이유로 시사 프로그램을 정리하겠다는 그 발상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김재철 MBC 사장이 기자 출신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해가 안됩니다. 시사 보도물은 시청률로만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얼마나 꼼꼼하게 취재됐는 지, 사회적 의미는 얼마나 큰 지를 보아야 하는 것이지요. 김 사장 역시 기자였기 때문에 ‘의미 있지만 잘 안 읽힐 기사들’을 어떻게든 세상에 내어놓기 위해 ‘데스크’와 머리 맞대고 싸웠던 경험이 있을 겁니다. 대체 그 저널리스트로서의 뜨거운 심장은 어디로 사라졌나요.

김재철 사장은 왜 MBC가 다른 방송사들에 비해 빛났던 이유들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왜 다른 방송사에 비해 고정팬들이 많은 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MBC에는 늘 다른 방송사들이 생각해 내지 못한 신선한 프로그램들을 용기 있게 해내는 도전정신이 있었습니다.

KBS <1박2일>이 MBC <무한도전>의 아류 프로그램이었던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SBS의 <뉴스추적>이 MBC <피디수첩>의 아류 프로그램인 것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W>나 <뉴스 후>도 다른 방송사들이 시도하지 않은 앞서가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더 살리지 않고 <슈퍼스타K>를 모방한 프로그램을 신설하게 하는 MBC 경영진의 생각이 참 한심스럽습니다.

<뉴스 후>와 <W>가 사라지면서 MBC 시사 프로그램의 사회적 영향력은 크게 위축될 것입니다. 방송사의 프로그램들이 새로 생기고 없어지는 일이야 흔한 일입니다. 시청자들은 채널을 돌려버리면 그만이지요. 하지만 MBC를 대신해 타 방송사들이 활약하지도 않을 것 같아 착잡하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방송사 대신 신문사들이 제대로 활약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요.

김재철 사장은 첫 출근하면서 노조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내가 어떤 사람인 지) 지켜보면 알 것 아니냐”고 큰 소리 쳤지요.

“지켜보니 알겠습니다.”

현재 한겨레 방송부문 뉴스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돼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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