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규항씨와 진중권씨의 논쟁을 보며, 그리고 그 논쟁에 대한 또 다른 논쟁을 보며 내가 든 생각은 엉뚱하게도 ‘대중성’에 대한 나의 ‘강박’이었다. 김규항씨가 펼치는 진중권씨에 대한 비판과 그에 대한 진중권씨의 반박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기에,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우리 사회가 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걸 잘 알기에, 무엇보다 그 둘 중 누가 더 맛깔스러운 말로 상대를 제압하는지를 숨죽여 지켜보기엔 우리 사회가 그리 한가하지 않기에 논쟁 그 자체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진 못했지만 논쟁 가운데에 김규항씨가 내뱉은 ‘대중성에 대한 강박’이라는 말은 분명 내 시선을 끌었다.

▲ 한겨레 6월17일자
마이너리티에 있어 본 사람은 한번 쯤 경험하겠지만, 아니 한번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골머리를 쌓아봤음이 확실한 것이 다름 아닌 ‘대중성’이다. 나 역시도 대중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그 때문에 참 속도 많이 곯았고, 그리고 그렇게 푹 곯다 보니 언젠가부터 그 대중성이란 것에 대해 묘한 ‘애증’(?)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대중성’이란 말만 들으면 한편으론 그것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 까짓 거 때문에 굳이 여타 더 중요한 가치들을 훼손시킬 필요가 있겠느냐는 이중적 사고를 갖게 되었다. 물론 그러한 애증은 지금도 여전히 날 지배하고 있다.

진보 신당과 같은 정당이 굳이 ‘대중성’이란 것에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 그러니까 대중성에 지나치게 몰입함으로써 ‘현실’보다는 ‘가치’를 기치로 존재하는 정당의 정체성 자체를 훼손시킬 필요까지 있는 의문은 정당하다. 당연히 대중성 보다는 가치를 우위에 놓고 판단을 해야 하며, 비록 현실적으로 겪는 어려움이 크다 할지라도 가치 중심적인 태도를 보여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당장이 어렵다면 훗날을 바라보고 그 가치를 향해 정진하는 이들이 다수는 아니더라도 존재해야 하며, 이는 미래를 대비한다는 면에서 어떻게 보면 현실적으로도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거기엔 역설적으로 아주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 필요한데, 적어도 그러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인지도)과, 또한 적어도 그러한 사람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시의성)에 대해서는, 그러니까 최소한 그 수준에 있어서의 ‘대중성’은 확보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방송으로 치자면 최소한의 시청률이 보장이 돼야 ‘대중성은 모자라지만 좋은 프로그램이다’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과연 진보 신당은 그 ‘최소한의 시청률’을 확보하고 있는 것일까? 거기에 답하기 이전에 우선 생각해 봐야 할 건 그 ‘최소한’이라고 하는 것의 기준이 어디에도 명시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는 그 정도면 최소한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여기에 대해 아무리 논쟁을 해봤자 끝없는 설전만이 이어질 뿐 합의에 도달하기란 매우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추세’다. 즉 현재의 수치가 충분한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점점 더 상승하는 추세인지, 아니면 점점 더 하락하고 있는 추세인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볼 때 진보 신당의 대중성 ‘추세’는 상승하고 있다기 보다는 하락하고 있는 쪽에 가까워 보인다. 급격한 하락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분명 그렇게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이유이든 또 누구의 잘못이든 이대로 계속 그냥 두게 되면 분명 어느 시점엔 ‘최소한의 대중성’이라고 하는 것 ‘이하’로 떨어질 때를 맞이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다행히 아직은 많은 이들이 진보 신당에 대해 불평불만을 토로하고, 비판을 하고, 실행에 옮기기 매우 어려운 것을 요구하며,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어대기도 하고, 심지어는 매번 무슨 일만 있으면 과도한 양보를 요구하는 걸로 보아 ‘최소한의 대중성’은 여전히 확보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대중들이 보기에 진보 신당은 그런 걸 요구하고 싶은, 그리고 요구했을 때 적어도 무시하지 않고 귀 기울여 들어줄 것 같은 정당인가 보다. 무시하거나 포기하지 않은, 그래서 그냥 두고 가고 싶지 않은 그런 정당 말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문득 아무런 존재감도 없던, 그래서 기대는커녕 그 어떤 비판이나 불평도 받아보지 못했던 5년 전이 문득 떠오른다. 에이, 이 망할 놈의 대중성에 대한 강박, 아니 궁상하곤….

EBS <지식채널e> 전 담당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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