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5월 18일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방통위 전체회의를 마치고 나서 기자실에서 "올해 안에 종합편성채널 사업자를 선정할 방침"이라며 미디어랩의 계획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오는 16일 한국언론정보학회가 주최할 한 토론회의 발제를 맡았다. 주제는 ‘종편채널 도입과 지역방송’이다. 그동안 종편채널 관련 토론회는 무수히 많았다. 지난달엔 하루가 멀다 하고 세미나가 열렸고 종편채널을 준비 중인 부자신문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토론회 발제를 위해 관련 자료를 모으고 읽으면서 새삼 놀랐다. 여러 쟁점이 다루어졌으나 지역성에 주목한 경우는 눈을 씻고도 찾기 어려웠다. 사실 방송정책에서 지역성이 사고의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 유령 취급당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래도 이건 심했다. 종편채널은 그 자체만으로도 지역방송에 위협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파괴력은 민영 미디어렙 도입 못지않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종편은 유료방송 채널이기에 지역 지상파방송과 비대칭규제가 적용돼 특혜에 가까운 혜택을 누릴 전망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종편채널은 KBS1과 EBS처럼 케이블과 위성 등을 통해 의무재송신된다. 영리를 추구하는 종편이 재송신 대상에 포함된 건 법적 오류다. 어쨌든 종편은 자체 플랫폼이 없으면서 단박에 지상파 버금가는 시청자 접근성을 갖게 된다. 권역이 방송 운영의 밑천임을 감안할 때 수도권을 기반 삼아 전국을 방송권역으로 하는 종편채널과 협소한 지역을 방송권역으로 하는 지역방송 간 경쟁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다.

지역방송은 과도한 편성규제에 시달렸다. 특히 MBC 지역 계열사는, 독립제작사가 전무한 지역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본사와 동일한 외주비율을 적용받았다. 그러다 보니 외주비율 맞추는 데 급급해 지역 시청자가 원하는 본사 프로그램을 방영하지 못하거나 노력을 기울여 제작한 자체 프로그램을 좋은 편성시간에 내보내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독립제작사가 서울에 편중된 상태에서 외주비율이 강제되다 보니 지역의 광고 수입이 서울 소재 제작사의 제작비용으로 이전되는 어이없는 결과가 초래되기도 했다.

반면 종편채널에 대한 외주비율은 과하지 않은 수준에서 책정된다. 게다가 종편의 국내 제작 프로그램 편성비율에도 느슨한 기준이 적용된다. 이러한 편성 상의 비대칭성은 종편으로 하여금 핵심 시간대에는 제작비를 많이 투입한 국내 제작물을 편성하고, 주변시간대에는 값싼 해외 프로그램을 구매해 편성하는 식으로 운신의 폭을 넓혀준다.

의무재송신과 방송권역, 편성규제 등에서 종편보다 불리한 위치에 있는 지역방송은 방송광고 매출액의 3.37%를 방송발전기금으로 납부하고 있다. 반면 종편채널은 기금 납부 의무가 없다.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의무재송신 규정은 마련해놓고 방송발전기금 징수 근거를 만들지 않은 것은 입법 미비의 전형이다.

이런 식의 비대칭규제는 결국 지역성 구현의 주체인 지역방송의 위기를 가중시킬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간의 종편 논의에서 지역성 문제는 왜 주변부에도 끼지 못한 채 배제된 걸까?

교통수단의 발달로 전국이 일일생활권에 접어들고 위성방송, IPTV 등 전국을 단일 권역으로 하는 방송매체가 등장하면서 지역이란 울타리를 앞세우기 민망한 면은 있다. ‘글로벌화’가 지배적 담론으로 회자되는 마당에 지역성을 거들먹거리는 건 시대에 뒤떨어진 모양새로 비춰진다. 그래서인지 지역이 홀대받는다는 식의 성토가 더 이상 공분은커녕 연민조차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현실임을 이해는 한다.

하지만 동의할 수는 없다. 지역은 누구나에게 삶의 근거지다. 아무리 교통수단과 방송 기술이 고도화해도 사람은 일정한 크기의 지역을 삶의 기반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알고 보니 우리 헌법은 1948년 건국 헌법부터 오늘날까지 일관되게 지역의 가치를 중시하고 있었다. ‘지역균형발전’이란 표현은 묘하게도 유신헌법에 처음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방송법도 지역성 구현을 비교적 비중 있게 명문화하고 있다. 언론학계에서도 지역성은 여전히 공익을 구성하는 유력한 요소로 통용된다. 나라별로, 그리고 학자의 성향에 따라 이견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지역성은 왜 늘 뒷전인 걸까?

누구도 무시하지 않으나 늘 무시되는 정책 가치인 지역성. 우리 사회의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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