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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감독 오보, '받아쓰기 기자'가 된 자의 푸념[기자수첩]정당한 정보원 모델과 옐로우 페이퍼
김완 기자 | 승인 2010.08.03 18:03

리트윗 되어 온, 어느 트위터리안이 남긴 멘션이 아픕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제)북한 김정훈 감독의 노역설을 제기한 영국의 대표적 황색잡지, 더 선의 기사를 그대로 인용 보도한 신문과 기자들, '잘못 보도했다'고 사과라도 하세요. 그렇지 않는다면, 찌라시 잡지에 받아쓰기 기자라는 말을 들어도 쌉니다"라는 것이다.

뜨끔합니다. 제가 바로, 어제 그 기사를 보자 '옳다구나' 썼던 기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 단순히 받아 적은 것은 아니고 나름 비평이랍시고 썼습니다. 일단, 거두절미하고 사과드립니다. <더 선>에 그 기사가 있는지는 확인했지만, 워낙에 많은 인용기사가 나왔던지라 원문을 꼼꼼히 확인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따옴표로 인용된 기사들을 읽으면서 내심 그 기사가 '오보'일 가능성이 김정훈 감독이 노역하고 있을 가능성보다 높다고 생각했습니다.(어제 제가 쓴 글을 끝까지 읽어보면, 아실 겁니다.)하지만 역시, 그러려니 했습니다. 비평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외신 인용 보도 읽으며 일일이 원문 확인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특히, 이미 국내 언론 보도가 숱하게 깔려버린 상황이라면 더더욱 말입니다.

내심 찜찜해 한 줄 걸치긴 했습니다. 참고로, 어제 제가 쓴 글의 제목은 '강제 노동과 강제 하차는 다른 것인가?'입니다. 그 중간 단락쯤에 이렇습니다.

<더 선>의 보도가 얼마나 '팩트'에 근거한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북한 사회의 폐쇄성과 국내 언론의 따라 쓰기 보도 관행을 생각해보면, 또 하나의 '대형 오보' 사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구차한 얘기입니다. 백 마디 말이 필요 없습니다. 기자라면 원문을 확인 했어야 합니다.

   
  ▲ 북한 김정훈 감독 ⓒ 연합뉴스  

알려진 대로 <더 선>의 기사는 '특별한 취재'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국내 언론인 조선일보의 기사를 재인용한 것입니다. 7월 27일자 조선일보 <만물상>의 내용입니다. 쓰기는 신효섭 논설위원이 썼습니다. 북한의 '사상투쟁회의'를 쓰면서 "김 감독이 당에서 쫓겨나 평양 건설현장 근로자로 '하방(下放)됐다'는 소문도 있다"는 짧은 '카더라' 문장입니다. 그리고 <만물상> 기사의 원형이 되는 또 다른 기사는 하루 전에 자유아시아방송(RFA)을 인용 보도한 "'청년장군 믿음 저버린' 북한 축구팀, 사상비판 받아"입니다.

조선일보의 이 보도가 <더 선>을 거치며, 완벽한 사실로 재탄생했습니다. 물론, <더 선>은 조선일보의 인용기사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그걸 빼 먹은 것은 국내 언론들입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선전'의 한 예입니다. 이른바, '정당한 정보원 모델'입니다. 1년 여 전 쯤에 홍성일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운영위원이 기고한 글에서 설명된 개념입니다.(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110)

그 과정은 이렇습니다. 애초의 선전자 조선일보는 원래의 메시지(김정훈이 하방됐다는 소문도 있다)를 기사로 씁니다. 조선일보가 '정당한 정보원'이라고 생각한 <더 선>은 이를 다시 기사화합니다. <더 선>이 기사화 한 내용은 다시 조선일보를 비롯한 국내의 선전자들에게 흘러들어옵니다. 이를 되받아 선전자들은 독자들에게 전혀 새로운 형태의 정보인 것처럼 관련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를 통해 애초 선전자인 조선일보의 의도는 감추어지고, 그 내용은  ‘정당한’ 기구가 생산한 합리적이고 설득적인 메시지로 포장됩니다.

과거, 미국을 겨냥했던 소련의 에이즈 관련 선전이 이와 같았고, 가까이는 동아일보의 촛불시위 관련 보도가 이와 같았습니다. 이것은 엄밀한 의미의 '오보'는 아니지만 명백한 의미의 '조작'입니다.

어제 지적했지만, '북한이 김정훈을 강제노동 시키고 있다'는 선전을 의도한 자가 있었다면 아마도 그것은 북한 사회가 충분히 그런 '부조리와 비합리'를 저지를 개연성이 있다는 추론에 근거했을 것입니다. 그 글에 열띤 호응을 보였던 독자들 역시 '설마 그랬을까' 하면서도 '북한이라면...'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을 것입니다.

문득, 정보의 평행 이동이 굉장히 활성화된 한국 사회에서 종종 괴물 같은 '오보' 사건이 발생하는 이유가 바로, 이 집단 인식의 오류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우리가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쩜 엇비슷한 강박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녀사냥'이 흔해빠진 연예계를 보는 시선도 그렇고, 김석류 아나운서를 향해 '70억 남자'와 결혼해서 좋으냐고 집단 '디스'를 벌이고 있는 오늘 인터넷 풍경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더 선>을 스캔들과 가십성 기사를 주로 다루는 대표적인 '옐로우 페이퍼'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수십 수백의 <더 선>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졸지에 '받아쓰기 기자'가 되어버리니 정신이 번쩍 듭니다.
 

김완 기자  ssamw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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