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내믹(dynamic) 코리아', '천안함 사태' 그리고 '그로테스크(grotesque) 코리아'

1.
난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농담(?)을 심심찮게 하곤 했다. '6․2 지방선거 앞두고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 충돌행위를 먼저 벌일까 안 벌일까?'하는 물음을 던지고 나서, 정답은 '못 벌인다. 그 이유로 미국, 중국, 러시아도 벌벌 떠는 '세계 최강' 북한 해군의 보복이 두렵기 때문에'라고 말을 하면 대개는 배꼽을 잡지는 않더라도 크게 웃곤 했다.

이렇게 난 천안함 사태 관련 이 정권의 공식 발표를 거의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이지스함이 3척이나 떠서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하고 있는 와중에 중어뢰 2개를 실을 수 있는 북한 잠수정이 서해 외곽을 크게 돌아 조류의 흐름을 이용해 천안함 2~3km까지 근접해 기다리고 있다가 추진체 뒷부분에 1번이라고 선명하게 적혀 있는 어뢰를 1발 쏴서 '초탄 명중'시킨 뒤 유유히 사라졌다'는 발표 내용을 믿기엔 내 상식이 용납하지 않는다.

이게 '천안함 사태'의 원인을 대하는, '정치적 자유주의'의 마지막 숨결을 내쉬고 있는 2010년 5월 대한민국 시민들의 평균적인 심정일 것이라는 게 내 믿음이다. 다만 이 정권의 저급하고 저열한 행태가 두려워 입 밖으로 내고 있지 못하는 '침묵하는 다수'를 이루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의 짓'으로 단정하고 목청을 돋우는 이 나라 '관제방송'들과 족벌 수구신문들, 그리고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대한민국 구성원들은 '준동하는 소수'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야 역사의 어느 순간, 진실과 대면하는 그때, 그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낙관을 갖고 싶어서다.

▲ 이명박 대통령과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28일 오후 청와대에서 양자회담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보희 기자

2.
천안함 사태를 보며, 난 조폭 관련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사건과 무관한 사람이 몽땅 죄를 떠안고 감옥으로 가더라도 진짜 사건과 관련이 있는 자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장면이 그것이다. 개인적으론, 천안함 사태가 이런 영화 장면과 비슷하게 흘러갈지에 깊은 관심을 쏟고 있다. 천안함의 진실에 깊은 회의와 의문이 드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다.

현재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짓이라고 공세를 취하고 있고, 중국은 침묵하고 있다. 북한은 자신의 짓이 아니라며 조사단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혐의를 원천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서 한반도의 무력 충돌 위험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으며, 이 정권은 6·2 지방선거에 이를 한껏 활용하고 있다.

관심은, 중국에 쏠린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짓이 아닌데도(난 진실의 무게는 거기에 있다고 본다), 북한의 짓이라는 한국과 미국의 목소리에 중국이 힘을 보태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아예 없는 것일까? 그래서 여기서부터 조폭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며 시나리오를 그려본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 정권은 '북한이 한 짓'이기 때문에 중국까지 동참한 것이라고 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말이다. 북한의 짓이 아닌데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중국이 한국과 미국의 공세에 힘을 실어주는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천안함 사태의 진실에 미국이 깊숙이 개입돼 있으며, 중국이 이를 잘 알고 있다고 치자(실제로, 천안함 이외에 다른 선체의 해치문을 열고 수색 작업을 벌였다는 UDT 대원의 인터뷰 내용이 음성 변조 처리되어 방송에 보도되기도 했으며, 꼼꼼한 네티즌들은 다양한 근거를 통해 이 선체가 미국 잠수함이라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 언뜻 보기에 중국과 미국은 서로 핏대를 높일 수밖에 없을 것처럼 보인다. 미국이 한국전쟁 정전협정을 위반한 것에 대해 중국이 그대로 침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과 미국은 이런 사태를 피하고 싶고, 중국에게 천안함 사태는 국제무대에서 미국과 벌이는 온갖 줄다리기 게임에서 막후의 유용한 협상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
중국이 이 길을 선택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북한을 달래야 할 것이다. 하지도 않은 짓을 한 범인으로 낙인찍히는 북한을 달래는 일에는 미국도 동참해야 한다. 달래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제재가 아니라, 미국은 6자 회담을 포함해 북한에 대한 음양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북한 짓이라고 해놓고 북한을 지원한다는 것은 '언어 도단'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시간이 해결책'인데, '당장은 제재, 일정 기간 뒤 지원'이라는 문서화한 약속이 거의 유일한 해법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한반도는 준 전시상태에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다.

이 시나리오에서 결정적인 문제는, 한국과 미국 중에서 누가 북한에 '뒤집어씌우는' 방안을 주도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6·2 지방선거 활용을 위해 이 정권이 주도했다면, 미국에 뭔가 큰 꾸러미를 안겨줘야 한다. 영토를 내주지 않는 한, 커다란 보상을 안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미국이 주도했다면,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속된 말로 '양아치' 수준으로 전락한 게 된다. 노벨 평화상까지 앞당겨 받은 오바마가 이런 제안을 했을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이 정권의 제안에 그가 동참한 것이라고 해도 이 역시 '양아치' 수준이기는 마찬가지다.

만약 중국이 한국과 미국의 공세에 목소리를 보태주는 일이 현실화한다면, 그것은 중국과 미국이 맺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결과일 수 있을 것이다. 그 내용은 '북한은 중국의 것이며, 한반도에 어떠한 사태가 발생해도 미국은 휴전선 이북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게 핵심이지 않을까 싶다. 1905년 7월 미국과 일본은 비밀리에 협약을 맺어 '일본은 한국을, 미국은 필리핀을 통치하는 것에 대해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고 서로 약속했다.

천안함 침몰의 진실을 둘러싼 온갖 의혹에서 나오는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하지 않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그것은, 6․2 지방선거에 이용하기 위해, 지금까지 저지른 온갖 불법 행위들로 인해 쇠고랑을 차지 않기 위해, 이 정권은 한반도의 미래인 '통일'을 내준 것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부 장관과 천안함 사태 이후 대북 제재안과 추가 도발 가능성에 대비한 양국간 공조 계획 등을 논의하기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보희 기자

4.
이렇게 엄청난, 어쩌면 무시무시한 함의를 지니고 있을지 모름에도, 선거관리위원회의 용법을 빌려 나는 천안함 사건을 '선거 쟁점'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선거관리위원회가 밝힌 바에 따르면, '선거 쟁점'이란 "각 정당 및 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입후보 예정자들이 공약으로 채택하거나, 정당 및 후보자 간 쟁점으로 부각된 정치적·사회적 현안"을 뜻한다. 선관위는 이런 기준에서 4대강 사업의 계속 여부나 무상급식의 실시 여부를 선거 쟁점으로 구분해 보도의 (기계적) 공정성과 균형을 주문하고 있으며, 이를 어길 때에는 공직선거법의 적용을 받는다고 밝혀 왔다.

4대강 사업이나 무상급식 실시가 과연 선거 쟁점이냐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으련다. 한나라당도 범위만 다를 뿐 무상급식을 실시하자고 하는 판에 이게 선거 쟁점인지에 대해서도 묻어두련다. 다만 같은 기준에서 '천안함 사태' 역시 선관위가 '선거 쟁점'으로 규정해 줄 것을 요구한다. 정당과 후보자 간 사이에서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논쟁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는 천안함 사건은 선관위가 정의한 '선거 쟁점'에 정확히 해당하기 때문이다.

'주적에 의한 도발'을 어떻게 '선거 쟁점'이라고 하느냐는 반발 역시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이 기준에서 보면, 온 국토에 대한 '삽질'을 통해 환경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4대강 사업 역시 선거 쟁점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선관위는 천안함 사건을 선거 쟁점으로 규정해 보도의 공정성을 기할 것을 모든 방송에 권고해 주기 바란다. 선관위에 천안함 사건을 '선거 쟁점'으로 규정할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2010년 5월의 현실. 다이내믹 코리아가 퇴보한 그로테스크 코리아의 슬픈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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