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사고로 대한민국이 비탄에 잠겨있던 슬픈 4월, 널마루 무용단 장인숙 단장이 천안함 희생장병을 위한 추모공연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 전북대 교수를 지낸 장인숙 단장은 1992년 <널마루 무용단>을 창단, 한국 춤의 전통적인 깊이와 대중적인 예술 활동에 주력해온 중견 무용가로 현재 호남 살풀이춤 보존회장과 한국무용협회 전주시 부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장인숙 단장의 많은 활동가운데 개인적으로는 2007년부터 진행 중인 ‘춤으로 풀어내는 판소리 다섯 바탕’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춤추는 춘향’(2007)을 비롯 ‘청의 눈물’(2008), ‘제비 제비 흥부야’(2009) 같은 대작을 차례로 무대에 올려 온 장인숙 단장은 앞으로 적벽가와 수궁가 등 판소리 다섯 바탕을 모두 무대화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해 왔었다. 이처럼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도전, 그리고 깊이있는 예술적 완성도에 관객으로서 남몰래 성원을 보내던 차, 장인숙 단장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장인숙 단장이 무용과를 졸업한 한국무용 전공무용수로 구성된 <널마루 무용단>을 이끌며 전통과 창작 작품을 바탕으로 국내외 공연을 통해 한국 춤의 세계화를 지향하는 한편, 2년여 전 부터는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우리 춤 동아리’를 지도해 왔다는 것이다. 이들은 무용과는 전혀 관련이 없던, 일테면 춤의 ‘ㅊ’ 자도 모르는 문외한이 상당수로 대부분 40대~ 60대의 주부들이다. 이들을 기초부터 가르쳐서 불과 1년 만에 성공적인 공연을 마쳐 주변을 깜짝 놀래킨 것이다. 우리춤 동아리 ‘춤무리’ 회원들 조차 자신들이 해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새로운 자신감을 얻었다고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선하다. 중년의 반란은 신선한 감동 그 자체였다. 장단장은 이처럼 ‘예술의 사회적 나누기’에도 관심을 갖고 실천해온 무용가다.

▲ <혼의 바다> 리플렛. (출처: 널마루 무용단 홈페이지)
그런 그녀가 추모공연을 준비한다는 것은 매우 관심을 끄는 일이었다. 더욱이 태국 최고의 축제가운데 하나인 치앙마이 송크란 축제에 초청공연을 다녀온 직후여서 시간적으로 매우 촉박한 상황, 그럼에도 추모공연에 임하는 자세는 결연했다.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공연을 목전에 두고 새벽까지 연습한 장인숙 단장은 이른 아침 인터뷰에 응해줬다.

그녀는 “온 국민이 46명 용사의 희생으로 슬픔에 빠져있을 때 세상을 떠난 장병들과 그의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전주시 무용협회와 함께 추모공연을 기획하게 됐다”며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나간 희생 장병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 춤꾼으로서 헌무(獻舞)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추모 공연은 이해원 박세련 신진아 양세화 최선주 등 널마루 무용단원과 함께 한국무용협회 전주시지부장인 노현택 도립국악원교수를 비롯해 부지부장인 우석대학교 무용과 양순희교수, 이사를 맡고 있는 정경희 전주예술중고등학교 무용부장 등이 마음을 모았다고. 중견 무용수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도 흔치 않은 것이어서 더욱 관심이 갔다.

“희생 장병들을 위해 어머니의 마음으로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그 넋을 승화시켜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는 장 감독은 “짧은 시간이지만 연습기간 내내 눈물로 버텼다”며 인터뷰 간간히 안타까운 마음에 목이 메이기도 했다.

혼을 다해 혼을 위로하는 <혼의 바다>를 보러 5월1일 오후7시30분 전주전통문화센터 한벽극장을 찾았다.

▲ <흐르는 눈물>에서 노현택 전북도립국악원교수와 장인숙 널마루 무용단 단장이 천안함 희생장병을 추모하며 열연하고 있다. ⓒ무용사진가 한용훈 제공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으로 경건하게 시작된 공연은 널마루 무용단의 <평화의 바다>로 문을 열어 <붉은 절규>로 이어지며 평화의 바다에서 비통의 바다로 변한 바다의 참상을 전했다.

노현택 도립국악원교수와 장인숙 널마루 단장의 듀엣 <기원>에서는 아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등불에 담겨 무대 한 켠을 비추었다. 두 개의 등불이 왼쪽 무대에 매달려있는 동안 모든 국민이 그토록 간절하게 염원하던 마음이 전해졌고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국악으로 편곡한 음악에 맞춰 <흐르는 눈물>을 공연할 때는 뜨거운 가슴으로 흐느끼는 어머니의 절규, 그 처절한 몸부림에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청호무용단 단장이며 우석대학교 무용과교수인 양순희교수는 2008년 한 시사잡지에서 선정한 '한국의 미래 이끌 차세대 영웅 300인'에 뽑혀 화제가 되었으며 지난해 말 바리데기 설화를 현대무용으로 풀어낸 <하늘만큼 땅만큼>을 무대에 올렸다. 그녀는 두 제자와 함께 이선희의 ‘인연’에 맞춰 <아무것도 그 무엇으로도>를 공연했다. 이선희의 애절한 음색과 어우러진 무대는 곧이어 정경희 해울무용단 대표의 <회심곡>과 교체되었는데 현대무용과 전통무용이 한 무대에서 이렇게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을까 놀라웠다. 흥과 한을 춤으로 승화시킨 정경희의 절제되면서도 농익은 춤사위 또한 감동으로 전해지며 희생 장병들의 넋을 달랬다.

추모의 춤판은 이어 노현택의 <신무>, 장인숙의 <영혼의 살풀이>, 널마루 무용단의 <기도>로 마무리되는가 싶더니 에필로그에서 또 한번 눈물바다를 이룬다.

▲ 혼의 바다 - 에필로그의 한 장면, 출연자들이 무대에 올라 애도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관객석은 눈물 바다가 되었다. ⓒ무용사진가 한용훈 제공
국악으로 편곡한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한벽극장에 울려 퍼지고 영정을 상징하는 검은 리본의 액자가 무대에 드리워졌다. 널마루무용단과 청호무용단의 무용수들이 촛불을 들고 행진하는 동안 노현택, 양순희, 장인숙, 정경희 전주시 무용협회 회원들이 검은색 정장에 국화 한송이를 들고 관객석에서 무대로 입장한다. 네명의 중견 무용가들은 고맙게도 관객의 마음까지 담아서 추모공연에 헌정했다. 그리하여 어둡고 외롭고 고독하고 비통한 바다에서 장렬히 산화한 젊은 용사들에게 내 마음의 빚까지 함께 헌무하는 듯 했다. 추모공연은 그래서 더욱 특별했다.

뼈를 깎는 고통으로 공연을 준비한 주관자들을 축하할 수 없는 공연, 무용수 들이 공연 내내 웃을 수 없었던 공연, 관람 내내 눈물과 한숨으로 가슴이 저렸던 공연, <혼의 바다>는 그렇게 막을 내렸지만 공연무대에서 전해진 강력한 전율은 아직도 가슴 한켠에서 아프게 뛰고 있다. 한동안 슬픔이 가시지 않을 것 같다.

바다여,
비통의 물결이여,
내 안에 네가 흐르고
네 안에 내가 흐른다
너를 부른다
붉은 빛 너의 충정을…….

우리는 목놓아 부른다
소리쳐 부르는 어미의 절규가 들리느냐!
아들아, 내 아들아,
그래, 뜨거운 가슴으로 너를 안는다
마지막 따뜻한 입맞춤으로 너를 보내며…….
내 심장에 고이 묻으리라.
<천안함 희생장병을 위한 추모공연 - ‘혼의 바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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