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4일 서울 종로구 인의동에 있는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사무실에서 추선희 사무총장이 안보강연을 하고 있다. 왼쪽 벽에 내걸린 ‘좌파 척결 완수’라는 글씨가 또렷하게 보인다. ⓒ허재현
21세기다. 그것도 이미 10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우리안의 ‘레드콤플렉스’는 여전히 강력하다. 지난해, 11월 26일이다.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란 곳에서 주최한 행사였다. 친북인명사전 편찬사업의 공식적인 시작을 알리는 기자 회견장. 질의응답에서 한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혹시 1단계로 발표할 친북인사 명단 100명에 전직 대통령이 포함돼있습니까?"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위원장인 고영주씨가 "1차 명단에는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기자가 한 질문에 드러난 전직 대통령이란,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런데 1차 명단에 없다는 답변이 나오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웅성웅성도 없었다. 1초도 안 되는 순간이었다.

“김대중, 노무현이 친북인사 명단에 없다고? 김대중, 노무현은 빨갱이다. 그러면 너희도 빨갱이다.” 놀라운 논리다. 바로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의 어르신이 가운데 한 발언이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한 방에 빨갱이로 만드는 것도 놀랍지만, 그 빨갱이 명단을 만든다고 하는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의 고영주(전직 검사 출신)마저 빨갱이로 만드는 놀라운 삼단 논리. 1단, 명단에 없다. 2단, 두 전직 대통령은 빨갱이다. 3단, 고로 명단을 만드는 너희는 빨갱이다.

이 놀라운 삼단논리는 고영주 전직 검사의 이단 논리로 이어진다. “너희들이 우리를 방해한다. 너희가 빨갱이다.” 정말 놀라운 논리다. 1단, 방해한다. 2단, 고로 너희는 빨갱이다. 그 짧은 시간, 그 짧은 단어로 오간 논쟁에서 두 단체는 삼단논리와 이단 논리에 의해 ‘빨갱이’가 됐다.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나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은 어지간한 이들은 익히 아는 이른바 극우적인 단체다.

이게 한국 사회의 ‘레드콤플렉스’가 불러일으킨 논리의 실체다. 레드 콤플렉스는 냉전이 끝난 상황에서 한국 사회만이 안고 있는 독특한 현상이다. 물론 다른 나라도 일정 정도의 레드 콤플렉스는 남아있는 곳이 있긴 하다. 하지만 한국처럼 이렇게 처절한 레드 콤플렉스가 남아있는 건 물론이고 서로를 ‘적’으로 규정짓는 단어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나라는 없다.

그렇다면 콤플렉스란 무엇일까? ‘관념복합체’라고 번역되는 정신분석학적 개념이다. ‘마음속의 응어리’라고도 정의할 수 있는 콤플렉스는 병자든 건강한 사람이건 누구나 콤플렉스를 품고 있다. 의식적인 경우와 무의식적인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모두 습관적인 의식 상태 혹은 의식적인 태도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콤플렉스는 무의식화 되면 될수록 강력한 것이 되어 병리성을 지니게 된다. 한국사회의 레드콤플렉스는 무의식의 경우로 아주 강력하다.

한국의 레드콤플렉스 환자는 ‘좌우 구분 능력’이 없다. 무의식에 잠재된 레드콤플렉스가 사회적 병리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현상에 대해 일정 이해는 한다. 그것은 지난 60년 전 한국 전쟁의 트라우마다. 그 트라우마는 ‘레드 포비아’를 불러 일으켰고, 그 공포는 점차 무의식 속에서 콤플렉스가 된다.

우익 혹은 보수의 미덕은 무엇일까? 애국심이다. 그리고 민족주의적 무장이다. 근데 한국의 레드 콤플렉스 환자들에게선 그게 보이지 않는다. 간단하게 더 예를 들겠다. 중국과의 국경이 압록강 두만강이 좋을까? 아니면 군사 분계선인 휴전선이 좋을까? 지금 이런 식대로라면 북한은 중국의 동북 4성이 아니라 5성으로 추가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징후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지금 한국 사회의 보수들이 벌이는 레드 콤플렉스 발작은 북한을 중국에게 안겨주는 철없는 행동에 불과하다.

한국의 우파 미디어는 서로 경중의 차이는 어느 정도 있지만, 레드 콤플렉스 환자들의 집단이다. 물론 현 집권 정당의 상당수도 그런 증세를 보인다. 이러한 레드 콤플렉스는 자기들끼리도 공격하는 기제로서는 물론이고, 이번 천암한 침몰 이후 전개 되는 과정들을 보면 자기들끼리 서로 입이 맞지 않는 웃을 수 없는 블랙 코미디도 연출되는 모습을 종종 본다. 이게 한국 사회의 비극이다. 사회적 병리현상인 레드콤플렉스는 시대에 뒤떨어진 후진 질병이다. 21세기다. 아직도 우리는 그 후진 질병을 앓아야 하는가? 그것도 꼭 선거를 앞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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