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4월, 미국 법무부로부터 반독점 조사를 받고 있던 세계 최대의 IT 기업 마이크로소프트를 옹호하기 위해 고용된, 마찬가지로 세계 최대의 홍보회사 에델만 PR 월드와이드의 내부 문서가 유출되면서 큰 파문이 일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살리기 위한 미디어 전략이 상세하게 담긴 이 문서는 “정부 조사관들에게 영향을 미칠 의도로 수립된” 것이었고, 전략의 목표는 정확하게 정부의 반독점 조사 활동을 가로막는 데 맞춰져 있었다. 파문이 커지자 에델만은 단지 ‘제안이었을 뿐’이라고 둘러댔다. 1년 뒤, ‘240명의 경제학자가 클린턴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이란 제목의 전면 광고가 독립연구소(Independent Institute)라는 비영리 단체의 이름으로 신문에 실리는데, 이 역시 나중에 문제가 됐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독립연구소의 최대 기부자라는 사실을 담은 내부 문건이 폭로된 것이었다. 독립연구소는 노골적으로 ‘독립적인 척 하며’ 마이크로소프트가 신문 광고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포템킨의 책략’이라 불리는 이 수법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후원자들의 대외 정책 목표에 부합하는 견해를 선전하고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여론을 조작하는 것이다. ‘보증’이라는 냄새나는 표현 대신 ‘추천’과 ‘후원’, ‘승인’, ‘협력 관계’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이런 ‘제3자 기술’은 결국 ‘누군가 다른 사람’의 입을 빌어 자신의 의도를 ‘독립적인 것’으로 포장해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한 효율적인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돼 왔다.

▲ 거짓나침반 (셸던 램튼·존 스토버, 2006)
언론은 당연하게도 포템킨의 책략으로도 불리는 제3자 기술의 1차 표적이 된다. 기업의 홍보담당자들은 기자들이 얼마나 과중한 업무 부담에 짓눌려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언론에 배포하는 보도자료 내용이 되도록 새로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나, 홍보담당자는 곧 기자다! 토씨만 몇 개 바꾸면 곧 기사가 될 수 있는 보도자료를 써내는 것이 중요하다. 바쁜 기자들이 내가 쓴 보도자료를 죽 긁어다가 오려붙여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완벽한 기사를 써내라! 그렇다면 도대체 신문 지면과 방송 전파의 몇 퍼센트가 기자들의 독립적인 취재로 채워지는 것일까? 책에 따르면, <월스트리트 저널> 한 호를 채운 기사의 절반 이상이 ‘순전히 보도자료에 기초한 것’이었다고 한다. 보도자료와 기사의 차이란 게 기껏 문장을 조금 줄이거나 늘려 각색하는 수준이란 것이다. 기업은 이런 식으로 언론을 부린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언론의 위기’임이 명백한 이런 상황을 때로는 언론 스스로 교묘하게 이용하기도 한다는 데 있다. ‘홍보산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표면상의 위장단체’를 만들어 사상 처음 성공적으로 홍보에 이용한 이래 이 고전적인 홍보 기술은 나날이 발전을 거듭해온 바, 심지어 오늘날 ‘좋은 홍보’는 ‘감쪽같은 정보 조작’과 동의어가 될 정도가 됐다. 이 시대 최고의 홍보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자. “진실은 (…) 유동적일 수 있는 것입니다. (…) 우리가 누구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건가요? 당신의 진실입니까, 아니면 나의 진실입니까?” “당신 스스로를 위해 생산하는 진실 이외에는 어떤 진실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케팅은 제품의 전투가 아니라 인식의 전투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진실은 아무 의미가 없다.” 정치인들의 선거공약이 대부분 ‘빈말’에 그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설탕과 지방이 많이 든 음식물의 위험성과 폐해를 소비자들에게 경고해온 비영리 단체 공익과학센터(CSPI)를 겨냥한 식품업계의 공격을 대행한 어느 홍보전문가는 공익과학센터를 ‘과학의 과대망상을 악용한 초절정 야수’라고 맹비난했다. 후버재단, 미국기업연구소, 건전과학진보연대 등 보수 싱크탱크와 정체불명의 단체들이 떼로 달려들어 공익과학센터를 짓밟아버리는 융단폭격이 가담했다. 1930년대 초반 ‘호크스 네스트’(Hawk's Nest)라 불리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산업재해로 많게는 2천 명에 이르는 노동자가 숨졌다. 터널 굴착공사 과정에서 쏟아져 나온 규토 먼지를 마신 노동자들이 ‘규폐증’이란 생소한 병에 걸려 죽어가자, 산업계는 공기위생재단이란 단체를 급조했고, 수십 년 뒤 규폐증이 계속 문제가 되자 관련 업계는 이번엔 또 다른 신생 단체 규토안전협회를 만들었다. 후에 규토연합도 결성됐다.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석면’의 위험성이 심각한 수준의 위협으로 판명됐을 때도,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유연 휘발유가 ‘납’ 배출 문제로 비화했을 때도, 관련 업계는 이름만 번지르르한 온갖 단체를 급조해 자신들의 방어논리를 선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므로 “실제로 새로운 보건상의 위험을 발견하고 최초의 경보를 발하는 존재는, 의사나 과학자나 학자나 정부 관리들이 아니라 노동자였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소음이나 먼지 등에 의한 위험은 가시적인 피해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한 계량화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환경생태 분야의 선구자인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에서 내분비계를 교란하는 물질로 알려진 DDT와 다이옥신 등 염소계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경고했을 때, 테오 콜본 등이 <도둑 맞은 미래>를 통해 내분비계 교란 물질의 심각한 잠재적 위험성을 주장하면서 대책 마련을 촉구했을 때, 산업계와 언론은 즉각적이고도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염소화학위원회, 염소연구소, 화학제조업체협회, 플라스틱연구소, 전국제조업협회, 미국 상공회의소, 전국목장주쇠고기협회, 전국우유생산자연맹, 미국 동물과학협회, 전국불고기용닭고기위원회, 전국칠면조연맹, 국제유제품협회, 미국 양산업협회, 전국돼지고기생산자협회, 미국 식육연구소, 전국정제업자협회, 미국 농장주연맹, 전국식품가공업자협회… 숨이 차오를 정도로 긴 목록을 이루는 단체들은 똘똘 뭉쳐 ‘염소 화학’을 방어하느라 안간힘을 썼다. 저 악명 자자한 기업 몬산토 역시 재조합 소 성장 호르몬이 문제가 되자 국제식품정보위원회, 전국주정부농무부협회, 미국농업사무국연맹, 미국영양학협회, 미국식료품제조업협회, 식품마케팅연구소 등 숱한 제3자 기구를 동원해 반대 세력을 공격했다. 1997년, 탐사 보도 기자 두 명이 재조합 소 성장 호르몬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을 방송하려고 하자 몬산토가 즉각 개입했다. 73번이나 원고를 고쳤는데도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반응이 나왔고, 기자들에게 20만 달러에 보도 내용과 방송 취소 과정을 함구해 달라는 타협안이 제시됐다. 그들은 이 굴욕적인 타협안을 거부했고, 해고됐다.

기업에 불리한 과학이 ‘쓰레기 과학’으로 매도되고, 반대로 기업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 도움을 주는 과학은 ‘건전 과학’으로 포장되는, 과학이 ‘월가(Wall Street)의 종’이 돼버린 시대. 거대기업과 전문가들의 슬기로운(?) 조언을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어느 정치 이론가의 말대로,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방법은 첫째,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둘째, 사실상 문제이기보다는 좋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셋째, 비록 문제일지라도 사람들이 해당 사항과 관련해서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란다. 그래서 만일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일에서부터 가깝게는 4대강 사업이 환경 재앙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까지도 ‘예방 원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냉소주의의 영역에 머무르게 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정녕 어찌 될 것인가? 저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래서 언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자들이 자신들의 기사에 선전이 스며들도록 허용하는 것은 제품의 품질을 떨어뜨려 싸구려로 팔아먹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밀가루에 톱밥을 집어놓고 빵을 굽는 제빵사의 행위와 똑같은 짓인 셈이다.” 전문가와 홍보집단, 언론의 부적절한 삼각관계를 폭로한 이 책은 “독성 폐기물은 여러분에게 좋은 것입니다.” “믿으세요. 우린 전문가니까요.”와 같은 허튼소리의 정체와 그것이 조작되는 과정, 더 나아가 그런 거짓의 정체를 밝혀낼 절실한 필요성은 물론 구체적인 판단의 요령까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진정 유익한 참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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