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학교 때 군대에 간 고등학교 짝꿍을 면회하러 간 적이 있다. 포 부대에 배치를 받은 그 친구는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고, 살은 쏙 빠져 있었다. 그러고서 한 달 뒤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휴가' 나왔다는 것이다. 면회 갔을 때 휴가 나온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면회 안 갔다'고 볼멘소리를 좀 했더니, 이 친구가 했던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낸들 나올 줄 알았나? 포사격 훈련 중 초탄 명중 했더니 부대장이 입이 찢어져서 전원 일주일 포상휴가를 주더라."

'초탄 명중'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임을 그때 알았다.

2.
전쟁영화를 보다 보면, '십자포화'라는 말이 나온다. 적이 은폐하고 있는 곳으로 예상되는 지역의 사방 동서남북으로 곡사화기를 쏟아 붓는 것을 말한다. 이 십자포화에 걸린 적은 거의 독안에 든 생쥐꼴이다. 벗어나려면 엄청난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전쟁과 무기 등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한 선배로부터 십자포화는 공중에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몇 해 전 알게 됐다. 음속으로 나는 전투기를 땅에서 미사일이 아닌 대공화기로 격추하기 위해서는 전투기가 날아갈 예상 비행경로의 앞부분에다 그물코처럼 '화망'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사격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땅과 공중에서 적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해 '화망'을 구성해야 한다면, 물속에서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해군 쪽에서 흘러나온 얘기를 들어보면, 천안함이 참가한 작전의 성격은 남쪽의 군함들이 북쪽을 향해 빠른 속력으로 질주할 때 북한의 해안 포와 미사일의 시간별 움직임을 탐지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에서 천안함은 물속에 가라앉기 전과 후에 속력의 변화가 없었다고 보고 있다.

천안함의 속력은 시속 30노트, 그러니까 시속 56킬로미터 정도다. 이 정도로 쾌속 항진하는 군함을 비슷한 속력으로 물속을 가르는 어뢰로 초탄에 명중시키기란 매우 힘들 것이다. 그것도 선체를 직격하는 것이 아니라 군함의 밑에서 폭발시켜 침몰시킬 경우 한층 더 힘들 수밖에 없다. 물속에서도 '화망'을 구성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적어도 여러 발을 쏴야 한다는 것이다.

4.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니 종류마다 다르긴 하지만 어뢰가 항해하는 거리는 15~25킬로미터라고 한다.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 어뢰라면 빗나간 어뢰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현 정권과 군부는 이런 얘기를 전혀 하고 있지 않다. 천안함은 북한의 어뢰에 의해 '초탄 명중' 됐다는 황당한 결론을 함축하고 있는 셈이다.

정말 어뢰가 원인이라면, 빗나간 어뢰를 찾으면 모든 문제가 풀린다. 빗나간 어뢰를 찾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어뢰의 발사 위치와 천안함 피격 각도를 보면 빗나간 어뢰가 항해를 멈춘 지점은 충분히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동아일보 4월 30일자

5.
천안함이 물속에 가라앉는 원인을 두고 북한의 소행일 것이라는 예단과 추정이 판을 치고 있다. 이를 주도하는 세력은, 불과 몇 개월 전 자신들이 무슨 보도를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백치 수준의 기억력을 갖고 있는 수구 '신문'들, 그리고 진정한 보수 우파를 모독하는 뉴라이트들이다. '복수'와 '보복'을 내비치는 말의 향연 속에서 '북한이 저질렀다고 단정한 적 없다'는 식의 수사는 이미 가식의 알리바이일 뿐이다.

짐작했겠지만, 북한의 어뢰가 천안함을 '초탄 명중' 했다는 식으로 현 정권과 군부에서 흘러나오는 '공식 발표'를 그리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다. 천안함의 부러진 단면이 좌초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버블제트에 의한 것인지를 구분할 줄 아는 전문성이 있어서는 아니다. 수류탄을 강물에 던져 터뜨려도 무수한 물고기가 떠오르는 게 내가 아는 상식이다. 하물며 어뢰가 터졌다면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상식에 기초한 이런 무수한 의문들은 이미 '영리한 군중'에 의해 숱하게 제기됐으니 긴 설명은 필요하지 않을 듯싶다.

▲ 이명박 대통령이 4일 국방부에서 열린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6.
북한의 소행으로 몰아가는 이들, 북한의 소행이라고 굳게 믿고 있거나 믿고 싶어하는 이들, 그리고 현 정권은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한반도는 휴전 상태임을 우리는 잊고 살아 왔다'며 국민들의 해이해진 안보 의식을 질타하고 있다. 이런 말들이 6·2 지방선거와 무관하지 않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선거에 주는 영향들'에 관한 온갖 분석이 건강한 상식에 앞설 수는 없다. 휴전 상태에 있다면, 그래서 한반도가 언제든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에 휩싸일 수 있는 상태에 있다면, 빨리 평화 상태로 만드는 게 상식이다. '복수'와 '보복'은 이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제 정신이라면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적어도 현 정권 이전의 두 자유주의 민주정부는 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펼쳤다. 이를 두고 '우리는 휴전 상태임을 잊고 살아 왔다'는 식으로 분칠하는 것은, 정말 역사에 죄를 짓는 짓이다.

한겨레신문 기자, 신문통신노조협의회 의장 등을 거쳐 2008년 2월부터 공공미디어연구소에서 미디어 공공성을 위해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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