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경제체제고, 민주주의는 정치체제다.' 지극히 상식적인 개념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낯설다. “뭔 소리냐?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다”란 등식의 개념이 한국에선 상식이 된다. 다시 말하면 이렇다. 사회주의(공산주의)의 반대말이 뭐냐고 물어보자. 그러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정답은 자본주의다. 그런데 한국의 보편적인 상식에선 사회주의의 반대말은 민주주의가 된다. 자본주의의 핵심이라 할 기업의 주주총회에선 주식의 수만큼 권리를 행사한다. 자본가들 눈에 누구나 한 표씩 갖는 투표권만큼 부당한 게 또 있을까. 그런데 민주주의는 ‘일인일표’의 평등한 투표제도가 핵심이다. 이렇게 다른 체제의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등가가치가 된다.

▲ <자본주의 ; 러브스토리>
Pax Americana(미국에 의한 평화)로 세계의 경찰국가 혹은 패권국가로 군림하는 미국도 우리네의 이러한 사정과 다르지 않다. 지난 해, 10월 미국에서 마이클 무어의 신작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됐다. 코미디와 다큐멘터리가 결합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는 마이클 무어가 이번에 발표한 주제는 ‘자본주의’다. 그의 다큐멘터리 속에 등장하는 현실은 늘 끔찍하다. 그러면서도 블랙코미디 같은 웃음을 잃지 않는 묘한 방식으로, 마이클 무어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재주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번 영화의 제목은 심상치 않다. <볼링 포 콜럼바인> <화씨9/11> <식코>와 같이 은유적이고 함축성 있게 제목을 붙여왔던 마이클 무어는, 그 주제가 제목에서 부터 직접적으로 드러난 영화를 신작으로 내놓았다. <자본주의 ; 러브스토리>란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자본주의’가 제목이고, 부제는 엉뚱하게도 ‘러브 스토리’다. 제목과 부제의 기묘한 결합은, 자본주의 폐해로 인해 고통 받는 당사자가 자본주의를 흠모하는 모순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패러독스가 된다.

상위 1%의 부자가 미국 전체 부의 95%를 소유하고 있다. 그러기에 세계 최강 국가라 할 미국의 빈부 격차는 상식을 넘어설 정도로 크게 벌어지고 있다. 의료보험과 같은 공공 사회복지는 한반도의 남쪽 대한민국 보다 떨어진다. 미국에서 공정한 자유경쟁시장의 이상은 독과점 기업의 횡포로 무너졌으며,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카 드림’은 이미 실종된 상태다. 자본주의의 최선봉 미국이 말이다.

▲ 마이클 무어
마이클 무어가 파고든 현실의 모순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자본주의 ; 러브스토리>는 주제 면에서 실업, 총기, 전쟁, 의료문제를 다룬 마이클 무어의 예전 작품들을 관통한다. 그것은 ‘소수의 탐욕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가?’였다. 그런데 <자본주의 ; 러브스토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간 질문을 던진다. ‘다수는 왜 소수의 욕망에 희생되면서도 그대로 참고 있느냐?’

마이클 무어가 내놓은 답은 '욕망의 투사'다. ‘너희도 열심히 하면 상위 1%에 낄 수 있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늘 1%만이 아는 ’비밀-Secret'을 속삭인다. 신용카드를 가지고 앞으로 올 소득을 미리 당겨쓰는 세상인데, '곧 부자가 될 사람'이 부자정당에 투표하는 것이 이상한 일인가?

▲ <자본주의 ; 러브스토리>
이 달콤한 착각 속에서, 고통 받는 한국의 다수는 “내 탓이요!”를 세뇌 당하듯 강요받는다. 그리하여 소수의 욕망에 희생되는 다수는 투표장과 광장을 떠나 대의 민주주의를 부패한 전당포에 맡긴다. ‘투쟁하는 주체’는 방향감각을 잃어버려 서점에 쌓인 '자기계발서' 앞에서 좌표를 찾으려 한다. 젊은 대학생은 그 끝없는 스펙 쌓기를 통해 정규직으로의 진입을 꿈꾼다. 끝내 자본의 배에 동승하지 못한 자영업자는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의 통계의 한 수치가 된다. 자본의 가치는 오르는데, 사람의 가치는 점점 떨어진다.

마이클 무어의 <자본주의 ; 러브스토리>에선 ‘자본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를 강조한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절대다수를 불행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사회주의 좀 하면 안 돼?’란 질문을 던지면서 다른 체제로의 가능성과, 또한 이러한 변화를 한시라도 빨리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마이클 무어는 자본주의를 뒤집으려는 급진적 사회주의자란 말인가? 아니다. 그가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대안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사실상 온건한 개혁이다. 미국의 의료서비스 개혁이나 공공서비스 개선 정책을 진행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이 사회주의자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 <자본주의 ; 러브스토리>
영화 속에서 마이클 무어는 월스트리트의 자본가들을 향해 확성기를 들고 이렇게 외친다. “당신들을 시민의 이름으로 체포한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와 다름없는 돌출행동이다. 그래서 마이클 무어의 영화는 유쾌하다. 하지만 씁쓸하다. 그는 결코 월 스트리트의 자본가를 체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영화계의 돈키호테, 마이클 무어의 <자본주의 ; 러브스토리>를 한국에서 개봉한다면 분명 색깔 논쟁으로 난리가 날 것이다. 인정하고 싶진 않으나, 이러한 현상은 좌우도 구분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다.

립 서비스 하나. 마이클 무어의 <자본주의 ; 러브스토리>는 유럽에서도 소개됐다. 그런데 유럽인들에게 그의 영화는 생뚱맞았다. 반응이 영 밍밍했다. 왜냐하면 마이클 무어가 영화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유럽의 초등학생들에게 조차 상식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에 대한 유럽의 경제 체제 우월성을 확인시켜 줄 뿐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유럽은 민주주의가 아닌 사회주의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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