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나드 골드버그(Bernard Goldberg)
미국의 4대 지상파 네트워크의 하나인 CBS에서 28년 동안 근무한 베테랑 기자 버나드 골드버그(Bernard Goldberg)는 지난 1996년 2월 13일자 <월스트리트저널>에 ‘공중파 TV는 현실 점검이 필요하다’는 도발적인(?)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내용인즉슨 공중파 TV의 지속적인 시청자 감소는 신뢰도 하락 때문이고, 그 핵심은 ‘미디어 엘리트들’의 ‘진보 편향’이라는 것이다. 골드버그 기자는 이렇게 썼다. “공중파 TV와 다른 ‘미디어 엘리트들’이 진보적인 편향을 갖고 있다는 주장은 아주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더 이상 논의할 가치도 없다. 사실은 그들이 어두컴컴한 밀실에 둘러앉아 뉴스의 편향 보도 전략을 수립하는 것도 아니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다. 뉴스를 편향되게 보도하는 작업은 기자들에 의해서 대부분 현장에서 이루어진다.” 자신이 몸담은 조직에 28년이나 근무한 사람이 왜 조직에 비수를 꽂는 일이나 다름없는 이런 치명적인 글쓰기를 감행한 것일까?

여러 계기가 지속적으로 주어졌겠지만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골드버그가 문제의 칼럼을 싣기 전 CBS 저녁뉴스에 에릭 엥버그 기자가 보도한 <현장 점검>(Reality Check)이었다. 엥버그 기자는 보도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선 거부(巨富) 스티브 포브스(Steve Forbes)의 일률과세(Flat tax) 공약을 다뤘는데, 바로 이 보도가 골드버그 기자를 화나게 만들었다. “포브스 후보는 일률과세 계획(scheme)이 우리를 괴롭히는 경제문제에 대한 만병통치약(Elixir)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포브스의 일률과세 공약의 가장 어리석은(wackiest) 첫 번째 이유는 일률과세가 부모들에게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더 많이 줄 것이라고 포브스 후보가 확신하는 겁니다.” “일률과세는 실험되지 않은 대단한 이론입니다. 이 뉴스 보도에 앞서 한 경제학자는 미국이 일률과세를 도입하기 전에 유럽이 알바니아와 같은 다른 나라에서 일률과세를 먼저 시험해볼 것을 제안했습니다.” ‘음모’의 냄새를 풍기는 scheme이라는 표현을 고른 것이나, 대선 후보의 공약을 ‘가장 어리석은’ ‘만병통치약’에 빗댄 것은 우리의 상식에 비춰볼 때 상궤(常軌)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퍽 악의적인 보도 태도다. 골드버그 기자는 이 보도가 포브스와 일률과세 공약을 조롱할 목적으로 기획된 편파적이고 불공정한 보도라며 “쓰레기 저널리즘의 극치”라고까지 비난했다.

그런데 실은 골드버그의 ‘진보 편향’에 대한 비판은 그가 ‘언론 엘리트’, ‘뉴스 마피아’라 부르는 CBS 뉴스의 간판 앵커 댄 래더와 ABC 뉴스의 피터 제닝스, 그리고 NBC의 톰 브로코 세 사람을 정면으로 겨눈 것이다. 보수 이념의 전파자로 널리 알려진 폭스 TV를 뺀 전통의 3대 네트워크가 진보 편향이라고? ‘똑똑한 마피아 놈들’과 ‘뉴스 마피아’는 하등 다를 게 없다고? 왜? 조직의 비밀을 고자질한 배신자는 제거되어야 하니까. 골드버그 기자는 CBS 내부에서 흔히 일컫는 가장 힘 센 파벌 ‘댄 라인’(The Dan)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댄 래더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기득권의 카르텔을 스스로 깨고 나와 거기에 균열을 일으키는 ‘도덕적 배신행위’를 저질렀다. 골드버그는 CBS의 내부의 뿌리 깊은 진보 편향의 사례로 노숙자와 에이즈(AIDS), 인종 차별과 성의 역차별, 보육 문제 등을 들어 진실한 뉴스 보도를 가로막는 진보적인 편향보도를 비판한다. TV 뉴스는 노숙자에 대한 지원과 동정을 유발하기 위해 전형적인 노숙자 사례를 ‘선택’함으로써 현실을 과장하고, 에이즈라는 질병을 퇴치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에 동조함으로써 스스로 에이즈 활동가 역할을 하고, 스스로의 고통과 죄의식을 덜기 위해서 억압받는 흑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체하고, 어떤 경우에도 페미니스트들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고수하고, 보육과 관련해 어떤 부정적인 결론도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사회적으로 중대한 사안을 다루는 TV 뉴스의 기자들은 객관적인 언론인이라기보다는 진보적인 명분을 수호하는 선전원 노릇을 하고 있다!

▲ 뉴스의 속임수 (버나드 골드버그, 2003)
골드버그가 TV 뉴스의 편향을 이렇게까지 과격하게 비판한 까닭은 간단하다.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언론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신봉하는 이념에 충실한 것을 지고지선으로 여기면서 그런 자신들의 믿음을 진보적(혹은 보수적)이라기보다는 사물을 관찰하고 통찰하는 올바른 방식으로 여긴다. “모든 선(善)은 그들의 것이다.” 언론 엘리트들은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밥 먹듯 쉽게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상황은 못 견뎌한다. 더욱이, 같은 언론계 내부에서, 더 가깝게는 언론사 조직 내부에서 누군가가 뉴스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면, 의문을 제기한 자에게 무례하기 짝이 없는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어 갖은 수단을 동원해 보복을 가한다. “언론인들이 다른 사람들에 관해 비난하면 ‘뉴스’가 되고, 언론인의 오류를 지적하면 ‘협박’이 되는가? 골드버그는 평생 공화당 후보를 한 번도 지지한 적 없는 자신을 ‘전통적인 진보주의자’로 소개한다. 그런 그가 진보 편향을 비판하는 글을 보수 성향의 <월스트리트저널>에 싣고, 진보 세력을 흠집 내느라 혈안에 된 보수 우익 논객들의 반갑지 않은 박수갈채와 동조를 의식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나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우리와는 사뭇 다른 복잡다단한 정치 지형과 이념적 스펙트럼을 가진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저자가 TV 뉴스의 편향성을 비판하는 이유가 이해된다.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진보든 보수든 똑같이 편향 보도이며, 골드버그 기자는 진보적 가치(Values)가 아닌 진보적 편향(Bias)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TV 뉴스에서 주류가 아닌 보수가 ‘보수주의자’로 언급되는 상황은 반대로 우리 사회에 엄연한 주류로서 군림해온 보수가 비주류인 진보 세력에 걸핏하면 ‘좌파’ 딱지를 붙이는 것과 유사한 궤적을 보여준다. 한국 기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중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데, 미국의 경우 대부분 스스로를 ‘진보’로 분류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좀 오래 되긴 했지만 책에 소개된 몇 가지 통계 가운데 하나를 그대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일반인 23%, 저널리스트 55%가 진보적이라고 대답했다.
▶일반인 56%, 저널리스트 30%가 레이건 대통령을 선호했다.
▶일반인 49%, 저널리스트 82%가 여성들의 낙태 권리를 지지했다.
▶일반인 74%, 저널리스트 25%가 공립학교에서 기도하는 것을 찬성했다.
▶일반인 56%, 저널리스트 81%가 소수계층에 대한 우대조치를 지지했다.
▶일반인 75%, 저널리스트 47%가 살인 사건에서 사형을 지지했다.
▶일반인 50%, 저널리스트 78%가 엄격한 총기 규제를 지지했다.

비판, 견제, 감시라는 역할을 요구받는 언론인의 직업적 특성상 일반인과 언론인 사이의 이념적 성향의 차이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특정 이념이 방송국을 지배하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것이 공정이고 균형이며 ‘중도’라는 완고한 믿음이다. <저널리즘의 기본요소>의 공동 저자인 톰 로젠스틸은 “뉴스 편향은 거실에 있는 코끼리와 같다. 우리들은 그 사실을 부정하고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들은 그것을 언론 밖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저널리스트들은 그 문제에 관여하기 싫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골드버그는 “진보적인 견해를 진보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모든 언론인 의식조사는 언론자유를 가장 위협하는 존재가 ‘정치권력’임을 가리키지만, 우리는 그 권력이 기댄 이념에 의해 방송 뉴스 보도가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진지하고 깊이 있는 보도를 갈수록 TV 뉴스에서 볼 수 없게 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중대한 의제를 깊이 파고드는 행위 자체가 주는 수고로움과 부담감을 언론 엘리트들이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갈수록 TV 뉴스가 시청자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데도, 언론 엘리트들은 스스로 “사회가 공인해준 구세주”라는 자아도취에 빠져 배가 침몰하고 있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 집단최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저자가 스스로를 죄인(罪人)이라 고백한 것처럼 나 또한 죄인인 것이다. 저자가 기대하는 것은 ‘다른 목소리’다. ‘진보 편향’의 열쇳말을 ‘보수’로 치환해보라. 그러고 나서 책을 찬찬히 읽어보면 저자가 말하려는 것이 결국은 작금의 우리 상황에도 상당 부분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많은 경청할 만한 구절 가운데서 다음의 경구(警句)를 기억해두기로 한다. “언론인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자기 자신의 오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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