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도 아니고, 유명한 진보언론들도 아니었다. 뉴스·미디어 검색의 70% 수준을 독점하고 있는 네이버가 청탁을 통해 뉴스 배치를 조작한 사실이 한 매체의 추적에 의해 밝혀졌다. 그동안 네티즌들의 수도 없는 의혹 제기에도 실제로 밝혀지지 못했던 것이 마침내 드러나게 된 것이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20일 사과문을 게시했다.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네이버의 뉴스 편집 공정성에 문제가 있음을 처음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흥미로운 사실이 숨어 있다. 하나는 네이버의 뉴스 배치 조작을 처음 밝혀낸 매체가 스포츠 전문매체 <엠스플뉴스>라는 사실이다( [단독] 네이버, 축구연맹 ‘청탁 문자’ 받고 기사 숨긴 정황 포착 ). 날고 긴다 하는 매체들을 제치고 스포츠 매체인 엠스플의 탐사보도로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를 덤으로 얻는 기분이다. 이는 유독 탐사보도가 적은 한국 언론에 던지는 메시지가 묵직하다. 우선 공룡 포털 네이버를 이긴 <엠스플뉴스> 탐사보도팀에 박수를 보내야만 한다.

<엠스플뉴스> [단독] 네이버, 축구연맹 ‘청탁 문자’ 받고 기사 숨긴 정황 포착- 기사 이미지 ⓒ엠스플뉴스

그리고 또 하나 눈여겨 볼 점이 있다. 이번 <엠스플뉴스> 탐사보도팀이 추적한 이번 기사 재배치 건은 자사 기사가 아니라 다른 매체인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의 기사였다는 사실도 행간에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포털에 송고된 시민기자들의 기사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해당기사는 2016년 10월 3일 한국프로축구연맹을 비판하는 기사로 네이버 주요 면에 배치되었었다. 그러나 연맹의 청탁을 받고는 기사를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 더 이상의 주목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프로축구연맹보다 더 힘이 있는 존재의 청탁 역시 통하지 않았을 리 없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며, 당연히 이번 한번이 아닐 수 있다는 의혹도 뒤따르는 것이다. 프로축구연맹보다 더 크고, 위력을 가진 단체 및 개인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엠스플뉴스>의 보도로 의하면, 프로축구연맹 홍보팀장이 네이버 이사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가 결정적이었다. “제가 K리그의 기사 관련한 부탁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이 문장은 전에도 부탁이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어 “이번 한 번 조심스럽게 부탁합니다”라는 메시지에서도 ‘만’이라는 단독보조사를 사용하지 않았다. 네이버의 기사 배치 조작이 이번 한 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이 무리가 아닌 것이다.

네이버 한성숙 대표 명의로 올라온 사과문 (네이버 스포츠 포스트 화면 갈무리)

무엇보다 이런 문제들이 그동안 매체 종사자들이나 네티즌들로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던 ‘심증’이 단순한 루머가 아니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게다가 <엠스플뉴스>가 익명으로 인용한 네이버 전·현직 에디터의 증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엠스플뉴스>는 “네이버 에디터들 사이에서 마이너 언론사와 시민기자의 기사는 ‘언제든 날려도 되는 기사’ 정도로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는 복수의 전·현직 네이버 에디터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한국은 유독 포털 집중현상이 심하다. 각종 브라우저들이 매우 간편한 즐겨찾기 방식을 제공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개인 즐겨찾기에 등록된 언론매체는 그리 많지 않다. 포털에서는 나름 개별 매체가 편집한 지면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여러 이유에 의해서 그냥 네이버 편집판 뉴스를 이용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이다. 사람들의 습관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때문에 네이버가 기사 배치에 의도를 개입시킨다면 여론 조작의 위험이 높아지게 된다. 네이버가 이번 일을 빠르게 인정하고, 사과문을 게시하며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사과 이상의, 신뢰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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