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의 속 루시는 ‘날개 없는 천사’처럼 착하기 이를 데 없는 여자다. 잘 알지도 못하는 미래의 남편 찰스 다네이가 불쌍해서 손수건을 적시고, 그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법정에서 증언까지 하는 착한 여자이다.이번에 루시를 연기하는 김아선은 180도 다른 연기를 선보인다. 밀라디처럼 센 캐릭터를 연기하다가 ‘천상 여자’ 루시를 연기하니 말이다. 아니, 어쩌면 밀라디를 연기하기 전의 청순가련 캐릭터인 콘스탄스 스타일로 다시 돌아갔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김우형의 누나이기도 한 김아선을 만나보았다.- 의 밀라디처럼 센 역할을 맡다가 이번에는 에서 KIM을 맡았을 때처럼 에서는 루시 역으로 청순가련형의 연기를 펼쳐야
는 잔잔한 소시민의 일상을 그리는 듯하면서, 스크루볼 코미디 문법을 엿볼 수 있는 독특한 멜로영화다. 통상적인 스크루볼 코미디는 개와 고양이처럼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는 두 남녀가 옥신각신하다가 서로에게 눈이 맞는 이야기를 다룬다.영화 에서 신민아가 연기하는 공윤희는 박해일이 연기하는 최윤에게 처음부터 호감을 가진 게 아니었다. 춘화를 찾는 최윤을 보고는 변태인 줄로만 알고 휴대전화로 뒷담화를 하다가 나중에는 계모임에 초청하기에 이른다. 스크루볼 코미디의 변형된 형태다.장률 감독은 동양화처럼 영화를 만들 줄 아는 감독이다. 특정한 메시지를 관객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사색하고 곱씹을 수 있는 공간적인 여유를 중요시하는 감독이기에 그렇다. 그는 경주라는 공간에 맞게 리듬에 맞춰 영화를 제작
유럽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운 PIGS 국가 중 하나인 이탈리아에서 을 만들었다는 건 ‘웹 캠’이라는 소재로 이탈리아 젊은이의 실업난을 묘사하기 위해서라고 본다. 만일 이 여성 육체의 관능미를 내세우고자 제작되었다면 이보다 수위는 더 세고 농염해졌을 테지만, 은 관능미보다는 우리 시대 젊은이의 실업난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힌다.자, 그럼 영화의 어떤 부분이 실업난에 대한 알레고리일까. 지금 한국은 고용 없는 발전에 시달리고 있다. 1인당 국민 소득은 2만 불을 넘는다고는 하지만 20대 젊은이들은 취업에 좋다는 스펙이나 자격증을 한 아름 달아도 회사에서 일하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나라나 기업은 부자일지언정 젊은이들에게는 취업이라는 수혜가 분배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대학을 나오면 취업
제8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올해의 연출상을 받은 왕용범 연출가는 이번 에서 주목할 만한 배우로 바사드를 연기하는 서영주를 꼽았다. 극 중 바사드는 사기꾼이다. 왕용범 연출가는 왜 사기꾼을 연기하는 배우의 연기에 주목해달라고 했을까. 바로 서영주의 다재다능한 연기 때문이다.에서 돈키호테를 연기하는 조승우에게 호통을 치는 카리스마와, 상냥하기 이를 데 없는 여관 주인을 능수능란하게 오가는 서영주의 연기가 왕용범 연출가로 하여금 바사드라는 캐릭터에 다른 연기 숨결을 부어넣을 것이라는 신뢰를 주었기 때문이다. - 바사드는 주인공인 시드니 칼튼의 숭고함에 기여한다.“언뜻 보면 두 사람은 톰과 제리처럼 보이기 쉬운 관계다. 바사드는 스파이 노릇을 하거나 사기를 치
차승원이 연기하는 지욱은 말이 형사지 해결사가 따로 없다. 독고다이로 칼과 흉기를 든 조직원 11명을 거뜬히 제압하는 스타일로, 강력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해결사급 형사다. 하지만 그에게는 꿈이 하나 있다. 여자가 되고 싶은 꿈이다. 지욱 안에 내재하는 여성은 융이 언급한 ‘아니마’의 차원에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아니마를 외면으로 표출하기를 바란다. 성 정체성을 바꾸고 싶은 게 지욱의 꿈이다. 하지만 부모에게 물려받은 성을 외과적인 수술로 바꾸는 건 돈이 많이 드는 일, 지욱은 강력계를 정리하고 남성을 여성으로 바꾸는 트렌스젠더가 될 것을 굳게 결심한다.장진 감독의 신작 은 두 가지 새로움을 선사한다. 하나는 성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요, 다른 하나는 느와르적 정서다. 장진은 어울리지 않
개척자 정신을 가진 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익숙한 것을 선호하고 변화를 기피하는 이라 할지라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것 가운데 하나는 바로 ‘권태’다. 제아무리 좋은 신상을 갖는다 해도 새로운 상품을 가졌을 때의 기쁨과 희열은 잠깐이요, 한 달 이상 가지 못한다.마찬가지로 손만 잡아도 백만 볼트 전기가 흐르는 것만 같은, 제아무리 열정적인 연인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권태는 찾아오게 마련이다. 제아무리 좋은 신상이나 연인이라 해도 권태를 피할 뾰족한 방도는 없을 듯하다.영화 에서 잘 나가는 신경외과 의사 폴(다니엘 오떼유 분)에게 찾아온 위기는 신용불량과 같은 경제적인 위기나 배우자의 불륜과 같은 부부 사이의 위기가 아니다. 바로 ‘권태’다. 익숙한 것에서 더 이상 새로움을 찾을
도희(김새론 분)는 천덕꾸러기 왕따 소녀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집에 들어오면 의붓아버지 용하(송새벽 분)와 할머니에게 ‘비오는 날 먼지가 날 만큼’ 맞고 또 맞는다. 고달픈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이라도 안식처가 되어야 하겠건만, 집이나 학교나 도희에게 안식처란 없다. 시골 버전 ‘소녀 잔혹사’가 따로 없다. 용하라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피해자가 도희다.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이런 도희에게 한 줄기 빛이 찾아든다. 파출소장으로 영남(배두나 분)이 새로 부임했는데 영남은 왕따 소녀 도희에게 관심을 보인다. 할머니에게 두들겨 맞고 의붓아버지 용하에게도 학대당하는 도희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미성년자 보호라는 법의 보호 아래 도희를 두고자 하니, 도희에게 있어 영남은 수호천사가 따로 없다.
한 발의 총성이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는 경우가 있다. 저격수 오스왈드의 총알은 미국 대통령 케네디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 청년의 흉탄에 비명횡사하는 통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지 않았던가. 역시 한 발의 총알로 돌연변이의 역사가 뒤바뀌게 되었다고 영화 서두에서 이야기한다. 미래에서 돌연변이의 적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돌변변이를 사냥하기 위해 개발된 센티넬은 돌연변이뿐만 아니라 인간에게조차 잿빛 미래를 안겨주는 암울한 공공의 적으로 자리한다.돌연변이를 꼼짝 못하게 하는 센티넬의 가공한 파괴력은 어디에서부터 비롯한 것일까. 과거 천재 과학자 트라스크가 센티넬 개발을 주도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미스틱(제니퍼 로렌스 분)이 트라스
에서 이보영이 연기하는 크림은 권상우가 연기하는 남자친구 케이가 바로 옆에 누워있음에도 직접 말을 하지 않고 문자로 대화를 건네는 장면이 있다. 옆에 있는 남자친구와 말로 대화하는 것보다 휴대폰이라는 중간 매개체를 통해 의사를 소통하는 것이 더욱 편한 신세대 풍속도가 아닐 수 없다.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고 교감하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사람이라는 인격체에 대한 부담일 듯하다. 말을 하지 못하는 애완동물이나 애장품에는 각별한 애정을 쏟으면서도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는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것 역시 사람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갖가지 다양한 변수에 대한 불안, 상대방으로 인한 상처를 감수하기가 부담스러운 대인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후 9년 뒤인 1954년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고지라가, 60년 후 할리우드에 의해 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되었다. 1998년에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고질라를 단순히 ‘거대한 파충류’로 묘사해서 수많은 고지라 팬들에게 원성을 산 바 있는지라, 이번에는 단순히 덩치 큰 파충류로 묘사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일본 원작 고지라에 다가서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인다.이번에 리메이크된 는 제임스 러브록이 주창한 ‘가이아 이론’에 충실하다. 가이아 이론은 지구가 자정 능력이 있다고 믿는 가설로, 지구에 위해를 주는 세력이 나타났을 때에는 지구가 이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 스스로의 힘으로 정화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곤충 혹은 갑
세월호 침몰 참사 보도 과정에서 홍가혜의 허위 인터뷰를 보도한 MBN 뉴스특보의 오보는, 발 빠른 보도를 위해 검증되지 않은 민간인을 인터뷰하다가 빚어낸 참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오보가 비단 MBN만의 일일까.3년 전에 찍은 태풍 사진을 2012년 볼라벤 태풍 사진으로 보도했다가 망신살을 탄 조선일보의 기사나, 철도 노조 파업으로 서울대 시험에 응시하지 못했다는 중앙일보의 오보 모두 속보 경쟁에서 정확성이 검증되지 않은 기사를 내보낸 불상사 아니던가.은 조중동을 타깃으로 보수 언론에 길들여진 언론계의 행태를 꼬집는 영화다. 중립적인 언론이란 있을 수 없다. 매체마다 어떤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프레임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부장적인 유교주의와 권위주의를 민주주의
진평(송승헌 분) 대령은 월남전에 참전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운 전쟁 영웅이다. 하지만 월남전의 참상을 잊지 못해 트라우마를 달고 살아야만 하는 인생이다. 하지만 진평과 한 이불을 덮고 사는 아내 숙진(조여정 분)은 남편의 트라우마를 진심으로 염려하고 걱정하지 않는다. 숙진의 관심사는 남편과 정서적 교류를 나누는 것이 아니다.남편의 군대 내 지위를 발판으로 자신의 지위를 어떻게 하면 굳건하게 만드느냐가 더욱 중요한, ‘지위’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여자가 숙진이다. 아내가 이렇다 보니 진평에게 아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알맹이 없는 공허한 이야기로만 들린다. 한 지붕 아래 있지만 남편의 아픈 내면을 들여다 볼 줄 모르는 아내와 함께 살다 보니 진평의 정신적인 공허함은 깊어만 간다. 중국
요즘 남편이 아내에게 할 말을 다하고 살면 둘 중 하나다. 상남자이거나 아니면 아내에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서 할 말은 다하고 살겠다는 남자이거나. 보통의 남자라면 여자친구나 아내에게 할 말 다하지 못하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렇게 여권이 신장된 시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여성에게 투표권이 허락되는 참정권이 허용된 지가 백 년이 넘지 않다 보니, 여성의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거나 여성이 남성에게 권리를 요구하는 시대 역시 역사가 짧을 수밖에 없다.은 캔디처럼 ‘참고 참고 또 참고’의 인내를 보여주는 김자옥 버전 ‘인내 끝판왕’ 명자에 대한 이야기다. 명자의 남편 동탁은 요즘으로 치면 나쁜 남자다. 새색시와 혼례를 치른 것까지는 별 탈이 없었는데, 도시에서 배우로 성공하고 돌아오
군약강신, 신하는 강하지만 임금은 약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군약강신은 나라를 일으켜 세운 태조가 승하한 이후 왕권을 확고하게 다지지 못한 후대의 왕에게는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암울한 패러다임 아니던가. 더군다나 정조가 즉위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왕을 눈엣가시처럼 생각하는 노론 세력은 왕의 목숨을 호시탐탐 노리니, 노론에게는 천국이지만 정조의 입장에서는 죽을 맛인 군약강신의 비애가 담겨 있다.노론만 불신해야 하는 건 아니다. 할머니인 정순왕후(한지민 분) 역시 정조의 편이 아니라 언제라도 발톱을 내밀 기세다. 의 정조가 있는 궁궐은 처럼 궁궐을 빙자한 왕의 감옥으로 탈바꿈한다. 내 옆에 있는 신하가 칼을 들이내밀 수도 있고, 밤에 자객이 침투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모르고 먹는 음식
2014년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은 독일과 이탈리아, 프랑스 등 어느 한 국가의 오페라에 치중하지 않고 다양한 오페라를 선보인다. 특기할 점은 올해 선보일 다섯 작품 가운데 기독교 혹은 천주교와 관련된 작품이 절반을 넘는다는 점이다. 글로리아오페라단의 과 국립오페라단의 창작오페라 을 제외하면, 한국오페라단의 와 강화자베세토오페라단의 는 성경을 바탕으로, 호남오페라단의 는 신유박해를 배경으로 만든 오페라라는 점이 올해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의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22일 오전 11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기자간담회가 개최되었다. 2010년에 시작된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은 작년까지 4회에 걸쳐 누적관객 11만 명이 다녀간
에서 스파이더맨 피터(앤드류 가필드 분)가 겪는 가장 큰 딜레마는 스파이더맨으로 변하는 슈퍼히어로와 피터로 지내는 일상의 괴리일 듯하다. 스파이더맨으로 변신하고 거리의 불의를 해결할 때에는 무소불위의 슈퍼히어로 피터의 모습이지만, 일상의 피터로 돌아올 때에는 여자친구 그웬(엠마 스톤 분)과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평범한 이십대 청년의 전형성을 갖춘다. 가면을 쓸 때는 못할 것 하나 없는 슈퍼히어로지만, 가면을 벗으면 여자친구의 마음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하는 슈퍼히어로의 고단함을 스파이더맨은 보여주고 있다. 피터가 고단하게 사는 것도 어찌 보면 스파이더맨이라는 초능력이 생긴 결과에서 나온 듯하다. 피터가 보통의 이십 대 남자친구처럼 그웬에게 시간 투자를 한다면
필자는 연극 가운데서 그레첸을 임신시키고 나락으로 떨어뜨린 죄 많은 파우스트라 하더라도 결국에는 신이 파우스트를 구한다는 깔뱅의 예정론적 개념, 결정론이 파우스트의 영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메피스토의 자유 의지보다 우선시된다는 점을 기술한 바 있다. 결국 의 세계관은 자유 의지와 결정론의 대립에서 결정론이 우선하는 세계관이다. 영화 의 세계관 역시 결정론이 지배한다. 개인이 하나의 직업으로 평생을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의 세계는 16살에 받는 적성검사 결과 하나만으로 평생을 하나의 직업에 몸 바쳐야 하는 세계다. 가령 아는 게 많고 지적이다 싶으면 과학자 그룹인 에러다이트에 포함해야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는 현
예술의 전당이 SAC CUBE 2014 기획공연으로 선보이는 는 괴테의 의 전신인 를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다. 가 그리스의 헬레네를 비롯한 방대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파우스트를 주축으로 다채롭게 전개된다면, 는 주인공인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그레첸이라는 세 인물을 주축으로 한 담백한 이야기 구조를 갖는다. 이번에 선보이는 연극 는 마냥 세 인물을 중심으로 압축된 서사구조로 진행된다.를 무대로 올린 많은 작품들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주요한 축으로 서사를 전개한 게 사실이다. 역시 주축이 되는 캐릭터를 파우스트가 아닌 메피스토펠레스로 설정한다. 그럼에도 가 기존 와 다른
* 영화의 일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한순간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는 건 부부생활의 권태를 벗기 위한 활력소이자 설렘이라는 동기에서 출발하기 쉽다. 하지만 이렇게 눈이 맞은 남녀 가운데서 어느 한쪽이 정상적인 부부의 생활로 돌아가기를 바랄 때, 나머지 한쪽 사람은 ‘내가 장난감이었나’하는 의구심을 품기 쉽다. 그리고는 상대방이 원래의 부부 생활로 되돌아가기를 바라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기를 바란다. 이럴 때 의 상황이 되풀이된다. 영화 도 마찬가지다. 준기(장혁 분)와 영은(조보아 분)의 관계를 통해 속 상황이 반복된다. 비의 향기에 취해 관계를 가졌다고 이야기하는 속 수연(고은아 분) 마냥,
결혼이라는 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두 사람이 사랑이라는 명분 아래 리처드 도킨슨이 명명한 ‘유전자의 숙주’ 노릇을 충실하게 감당하기 위한 결합이다. 결혼하지 않고 당대에 죽음을 맞이한다면 2세는 당연히 꿈꿀 수 없고 유전자를 물려줄 수도 없지만, 유한한 생명을 자가증식하는 길은 바로 결혼이라는 제도 아래 새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시킴으로 말미암아 인간이라는 종의 유전자를 번식시키는 행위이다.이렇듯 결혼에는 유전자 번식의 가능성을 품은 생명과 생명의 결합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헌데 그 결혼에 ‘피의’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예사 제목이 아니다. 생명 증식이라는 종의 명령에 거꾸로 가듯, 새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전야제가 되어야 할 결혼이 도리어 타나토스라는 죽음의 명제로 발 빠르게 달려가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