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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섹시한 혀'와 역겨움이 교차하는 지점

손석희, 매력적인 아이콘의 불공정한 퇴장

2009. 11. 19 by 안태호/객원기자

"무엇이 중립이고 공정이고 균형인가… 정답은 없고 늘 고민하고 추구해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기계적 중립이 옳으냐? 그건 아닐 수 있다. 개념정리 같은 고상한 대답 말고 그냥 즉물적으로 대답한다면, 균형을 지킨다는 건 양쪽으로부터 다 칭찬을 받을 수도 있지만, 다 욕을 먹을 수도 있는 것이다.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차라리 후자를 택하고 싶다.“(2004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 ⓒ'100분 토론' 홈페이지 캡처
손석희 교수가 <100분 토론>을 떠난다. 오늘, 그가 진행하는 마지막 <100분 토론>에 노회찬, 유시민, 나경원, 송영길, 박형준 등 ‘토론계의 드림팀’이 출동한다. 편성시간도 조정돼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시작해 130분 동안 진행된다고 한다. 그러나 솔직히 별 관심 없다. 뭐랄까, 빛나는 전공을 세운 용사를 ‘강제 전역’시키며 수여하는 빛바랜 훈장 같은 느낌이랄까. 지금 같아서는 프라임 타임에 역대 대통령들이 나와서 토론을 한다고 해도 크게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이야기를 하고 보니 ‘토론’을 할 만한 역대 대통령이 누가 남았나 싶은 불경한 생각이 뒤따른다.)

그의 비극은 그가 원한 것처럼 ‘양 쪽’으로부터 다 욕을 먹는 것이 아니라, ‘한 쪽’에 밉보였기 때문 아닐까. 그가 직접 퇴진문제에 더 이상의 논란을 원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더라면 마지막 방송은 ‘방송인 퇴출,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어떤 정치적 배경’도 ‘행간의 의미’도 없다고까지 강조했지만, 그의 말만을 그대로 받아들일 만큼 순진한 이들은 없다. 오늘 방송에 한 가지 기대가 있다면, 그가 직접 퇴진 문제에 대해 솔직한 심회의 한 조각이라도 밝힐 가능성이다. 그러나 평소 자기관리에 철저한 그의 스타일을 기억하자면, 그런 일은 기대하기 힘들 듯싶다.

그는 토론자들을 조율하고 토론이 말싸움의 아사리판으로 흐르는 것을 막는데 천재적인 감각을 지녔다. <100분 토론>을 통해 증명된 것이 그의 토론진행 능력 뿐 아니라 한국사회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의 저열한 토론문화라는 지적들이 많다. 그 말대로 <100분 토론>의 성숙과 성공은 최소한 방송프로그램에서의 토론문화에 대한 학습의 장을 제시해주었다. ‘토론 수업’의 학생은 출연자들이었고, 한편으론 시청자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중심에 손석희가 있었다. "많은 데이터를 합리적으로 꺼내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행자로서의 역할"이라는 그의 말은 토론 진행자들의 경구로 삼기에 모자람이 없다. 누군가는 그를 각각의 악기 소리들을 앙상블로 모아내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다고 했고, 누군가는 서릿발 같은 판정을 꽂아 넣는 운동경기의 심판 같다고 했다. 그의 말은 날카로웠고 단단했으며, 그의 판단은 깔끔하고 치우침이 없었다.

물론, 그는 종종 직설법과 촌철살인으로 패널들을 당혹시키기도 했다. "탄핵안 가결은 지지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한 노무현 대통령의 정략이다. 탄핵을 기다리며 버티기 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한나라당 의원의 발언에 ”알면서 왜 하셨습니까?“라는 말로 그 의원을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든 일은 그가 남긴 수많은 어록과 에피소드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일화다. 혹, 그것을 누군가 당파성이라 한다면, 이는 직접 그렇게 따져 묻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던 시청자들과 국민들의 당파성이라 해도 좋으리라. <100분 토론>이 가졌던 명성은 물론 그만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언론인으로서 신뢰도와 영향력, 명성 등에서 수년째 지켜온 정상의 위치는 그 자신의 매력이 아니고서는 설명되지 않는다.

<100분 토론>에서 물러난다 해도 이전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직접 밝혔던 것처럼 그는 언론인으로서 자기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공중파의 영향력 덕분에 사람들이 흔히 잊는 것은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갖는 그의 집중력과 예리함, 그리고 끈덕짐이다. ‘시선집중’에서의 손석희는 <100분 토론>의 진행자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섹시한 혀’를 가진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그가 정부관계자와 정치인들을 구석으로 몰아붙여 기어이 모종의 사실을 ‘실토’하게 만드는 순간의 카타르시스는 실로 짜릿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역시 <100분 토론>의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명료한 진행을 생각할 때, <100분 토론>이 가졌던 사회적 파급력을 생각할 때, 손석희라는 이름 석자가 주는 어떤 기대감을 생각할 때, 공중파에서 그를 볼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은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가 방송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는 객관적 조건을 조성한 장본인들의 인식이 합리와 상식의 근처에라도 있다면 모를까. 앞으로도 그는 ‘한국사회의 가장 매력적인 아이콘’으로 남겠지만, 이 매력적인 아이콘을 물러나게 한 이들은 오래도록 언론자유를 후퇴시킨 역겨움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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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 2009-11-22 02:15:41
힘내세요 비록 졌다고는 하나 정당한 아져씨의 모습은 여전히 승리입니다. 멋지세요.
그렇게 불공정함을 당하시고도 끝까지 책임을 다하셔서 많은걸 느낌니다.
이제 끝이다 뭐다 너무 신경쓰지마시고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으세용
니르바나. 2009-11-20 03:48:04
이길수 없는 싸움에서 의연하게 물러낫지만 패배는 엄연한 패배이죠.
지지자라면 그 통탄함을 풀어야겟지만 바른말 옮음말하는게 건방지고 무모하다고 치부되고 적당히 넘기는게 일상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무슨 내일이 있고
플러그램이 게속된다고 해도 그게 변질이 아니라고 하는것 또한 말장난에 불과한거겠죠.
전임자가 외압으로 물러난 상황에서 후임자라고 자기입지를 굳힐수가 잇겟씁니까.
그 독한 말장난에서 어찌 살아남을수 잇겟습니까.
결국 상제 민주주의 라고 햇듯이 상제 100분 토론일뿐이라는..
꼭 챙겨보는 시청자는 아니엿지만 이지경에 오니 참 착잡하내요 언젠가 세상이 바뀌어서 다시 진짜 100분 토론이 살아나길 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