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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없는 러브레터]To. 대통령님, 얼토당토 판타지 이제 그만

4대강 사업하면 문화강국 된다구요?

2009. 10. 20 by 안태호/객원기자

안녕하세요, 대통령 아저씨. 1주년 라디오 연설(▷‘문화국민과 국가를 만드는데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잘 들었어요. 이번에도 좋은 말씀을 잔뜩 해주셨더라구요. “우리가 행복하게 살고, 대한민국이 일류국가가 되려면, 어린이부터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가까운 곳에서 문화를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와우, 정말이지 우리가 정신없이 사느라 홀라당 잊고 있던 사실을 이렇게 아프게 꼬집어주시는군요. 모두 다 먹고사는 문제에 허덕이고 있을 때 아저씨 같은 분이 이렇게 균형을 잡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예요. 근데요, 하나만 물어볼게요. 문화가 그렇게 중요하다면서, 왜 1년이 지나서야 이야기하세요?

아, 네.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요. 멋모르는 문화예술계 사람들은 문화를 정치ㆍ경제와 함께 국정운영의 3대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까지 떠들어 댄다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요. 그저 문화는 가끔씩 잊지 않을 만큼만 강조해주면 되는 것을 눈치 없는 사람들이 꼭 목소리를 높이더라구요. 네? 정말이라구요? “제가 꿈꾸는 선진일류국가도 단지 소득수준만 높은 것이 아니라 경제적 수준에 걸맞는 문화수준을 가진 문화국가를 만드는 것”이라구요?

▲ 26차 라디오 인터넷 연설ⓒ청와대

오호, 그거 만만한 일이 아닌데... 아, 그런데 이 중요한 순간에 "사회적 통념에 맞지 않는 퇴폐적인 공연을 하는 팀의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서울시 산하 공연에는 초청하지 않도록 하라"던 아저씨 모습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시는 건 아니겠죠? 2005년 8월 30일 인디밴드 카우치가 방송에서 성기노출을 하는 일이 벌어지자 9월 1일 서울시 정례 간부회의에서 재빠르게 하신 말씀이예요. 왜 이후에 여론의 뭇매를 맞고 인디밴드 초청 공연 가서 ‘머리 위 하트’도 그리고 ‘사실은 인디밴드 좋아한다, 그 말은 오해’라고 해명도 하셨잖아요.

뭐, 좋아요. 살다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는 거죠. 오래 살다보면 여러 가지 말들이 충돌하는 일도 생기는 거구요. 다 이해해요. 근데요, 첫 월급 중고카메라와 오디오 얘기는 이제 좀 지겨워요. 슬슬 다른 레파토리로 바꿔주시면 안될까요. 사실, 아저씨가 ‘졸린 눈을 비비면서 읽었던 책’이 뭔지, ‘흘러나오는 음악을 통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는 FM 라디오가 대체 어떤 프로그램인지 궁금하긴 하군요. 동일한 문화산물이 얼마나 상이한 효과를 낼 수 있는지 비교분석 해보고 싶어서요.

오늘 하신 주옥같은 말씀들을 곱씹다 보니, 왠지 아저씨의 라디오 방송은 아파트 광고 같단 생각을 했어요. 특히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시니 더욱 맞춤하게 맞아떨어지네요. 무슨 말이냐고요? 왜 아파트 광고는 저마다 품위 있는 생활과 문화적인 품격에 대해 유난을 떨잖아요. 근데, 아파트 사업이 그렇게 우아한 업종이 아니잖아요. 많은 아파트 단지들이 원주민을 쫓아낸 자리에 폭력적으로 들어선 거니까요. 사람들을 쫓아내지 않은 경우라도 동물들과 식물들을 무자비하게 소거시키는 게 결국 아파트 사업이죠.

그러니까 이런 말이예요. 오늘 하신 말씀들 중에 괜히 덧붙인 말들을 다 버리고 나면 다음 말이 남아요. “저는 우리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크게 넓히고자 합니다. 지역간, 계층간 문화 향유의 불균형을 크게 줄일 것입니다. 농촌, 산촌, 어촌 전국 어느 곳에서나 누구든지, 일상속에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자 합니다. 저는 4대강이 만들어지면 그 주위에 따라서 많은 문화적 시설이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죠? “우리가 행복하게 살고, 대한민국이 일류국가가 되려면, 어린이부터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가까운 곳에서 문화를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까지만 해도 상큼하던 기분이 이 말을 듣고서 걸레 빤 물을 삼킨 것처럼 찝찝한 것으로 급변했어요.

이거 더 줄이면 이렇게 돼요. ‘4대강 사업하면 문화강국 된다.’ 아닌가요? 앞에 러시아 볼쇼이 극장이니, 세계 정상들의 독서습관이니, 외국투자자들의 오페라하우스 발언이니 ‘밑밥’ 깔아둔 게 결국 이 말 하시려던 거잖아요. 아파트 광고가 화사하게 자신을 분칠해 개발사업의 검은 뱃속을 가리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문화국가의 품격으로 치장하고 있지만 결국 4대강 사업을 강조하고 계시네요. 건설업자들이 분양원가 공개도 제대로 안하며 막대한 이득을 챙기고 있는 것처럼, 4대강 사업도 이런저런 절차들 무시하고 편법에 불법ㆍ탈법을 동원해 막무가내로 진행하고 있다는 거,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요. 임기 내에 어떻게든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고 한다는 거.

더 이상 말해봤자 서로 입만 아플 테니, 정답 이야기해 줄게요. 사실, 전에도 말씀드린 적 있어요. 아저씨가 서울시장으로 계실 때,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추진하셨잖아요. 아이러니하게도 문화시설 만들겠다는데 문화예술단체들이 죽어라 반대했어요. 왜 그랬는지 아직도 모르시죠? 아저씨 말로 돌려드릴게요. ‘가까운 곳에서’, ‘일상 속에서’ 문화를 즐기려면 저 멀리 오페라하우스가 아니라 동네극장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어요. 아시겠어요? 저 멀리 4대강 주변에 있는 문화시설이 아니라 우리 동네 공연장과 전시장이, 마을 도서관과 콘서트장이 필요하단 말이예요. 몇 백 억짜리 큰 시설 필요 없어요. 그런 거 나중에 예산이 부족해 관리도 못하고 운영할 인력도 없어 쩔쩔매기 십상이예요. 마을별로 맞춤형 문화시설을 배치하고 거기에 들어갈 프로그램과 프로그램을 운영할 인력들에 투자하세요. 잘 모르시겠다고요? 그냥 참모들에게 물어보세요. 아, 문화부 장관에게 자문하셔도 좋겠네요. ‘4대강 사업하면 문화강국 된다’는 얼토당토않은 판타지를 누가 어디까지 믿고 있는지 궁금해 할 사람은 저 뿐만이 아닐 테니까요.

PS.
어지간하면 그냥 넘기려 했는데, 3조원 넘었다는 문화부 예산 세목 한 번 확인해 보고 싶네요. 몇 개 기사만 검색해 봐도 e-스포츠 전용구장, 4대강 주변 자전거 유스호스텔 건설 신규예산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거 같던데요. 국정홍보처 폐지가 무색하게시리 내년 문화부 홍보예산은 예전 국정홍보처 예산보다 훨씬 많다면서요? 제가 최근에 만난 문화재단 관계자와 지자체 문화담당 공무원은 예산이 줄어 죽을 맛이라던데, 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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