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박기성, ‘우파의 답례품’에 딸려온 황당한 부록 < 비평 < 뉴스 < 큐레이션기사 - 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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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노동 3권을 헌법에서 빼자는 독창적인 관점

박기성, ‘우파의 답례품’에 딸려온 황당한 부록

2009. 09. 24 by 안태호/객원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좌파의 선물이었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우파의 답례품이다." 소설가 복거일이 조선일보를 통해 한 말이다. 그런데, 복거일도 미처 몰랐을 것 같다. 그 ‘우파의 답례품’에 깜짝 놀랄만한 ‘부록’이 딸려있을 줄은 말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박기성 원장이 노동 관련 ‘소신발언’으로 연일 화제가 됐다. 그는 지난 17일 국회 정무위에서 ‘노동3권을 헌법에서 빼는 것이 소신’이라고 밝혀 한나라당 의원들마저 격분시켰다.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 한겨레 9월18일자 8면

사실, 박기성 원장의 발언은 대단히 역설적인 구석이 있다. 헌법상의 권리라지만, 한국이 노동3권이 제대로 보장이 되는 곳이던가. 그러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헌법에서 규정되고 보장된 권리가 아니라면, 기업의 횡포와 공권력의 탄압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일 것이다. 그의 신념과는 달리 ‘노동3권 헌법제외’ 발언은 헌법에 명문화되어 있음에도 노동3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는 현실을 다시금 환기시켜주는 바가 있다.

또, "OECD 국가 중에서 헌법에 노동3권을 규정한 나라는 없는 것으로 안다"던 그의 말과는 달리 일본ㆍ스페인ㆍ스위스ㆍ포루투칼, 이탈리아, 멕시코 등은 헌법으로 이를 보장하고 있다. 노동 문제를 연구하는 국책연구원의 원장이 거짓말쟁이거나 노동과 관련해 무지하거나 둘 중 하나란 얘기다.

국회에서 저 정도 발언을 눈도 깜짝 안하고 할 수 있을 정도면, 그저 우발적인 발언이 아니다. 본인이 소신이라고 밝힌 만큼, ‘확신범’이라고 확신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지나지 않아 증거들이 후두둑 쏟아졌다.

22일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박 원장이 취임 직후인 지난해 8월 노사관계연구본부 연구원들과 점심식사 중 ‘모든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등 수차례 공·사석에서 전체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를 주장하는 반노동 발언을 반복해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2007년에는 <한국의 노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공동 저서를 통해 “노사정위원회 같은 사회적 합의주의를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의 ‘소신 행보’는 이 정도로 갈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박 원장은 뉴라이트 출신으로 작년 8월 연구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해고관련 조항 완화, 퇴직금 제도 폐지, 비정규직 기간제한 폐지 등의 발언을 쏟아내 노동계와 갈등을 빚어 왔다. 핵심적인 노동 이슈에 하나같이 반노동적인 언행으로 일관한 셈이다. 이 같은 발언들이 문제가 되자 그는 작년 10월 한국노총을 방문해 그 동안의 언행을 사과하고 앞으로는 신중하게 처신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그러나 국회에서의 발언을 보면 이 약속이 지켜진 것 같지는 않다.

최근에는 연구원 노조와의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해 노조 파괴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 결과로 창립20주년 만에 첫 파업이 들어가는 성과(?)를 올렸다. 노조의 성명서는 원장의 노조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노조만 없어진다면)연구는 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정부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어떤 기관이나 부처가 갖고 있는 기본취지에 반하는 인물을 수장으로 앉히는 신묘한 재주다. 영화진흥위원회 무용론을 펼치던 인사가 영진위 위원장이 되고,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필요없다고 주장하던 교수는 진흥원장이 됐다. 통일부 폐지를 이야기하던 사람은 어엿하게 통일부 장관이 되지 않았던가.

한국노동연구원의 홈페이지에는 박기성 원장의 인사말이 그의 사진과 함께 올라와 있다. 그 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한국사회에는 여전히 많은 노동문제가 산재해 있으며, 산적한 노동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독창적이고 새로운 관점에서의 정책 대안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우리 연구원은 그간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각에서 노동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국책연구기관으로 거듭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연구의 질적 향상과 연구 결과의 정책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혁신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두렵다. 그가 이야기하는 ‘산적한 노동문제’에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과 ‘지나치게 많은 정규직’이 포함되어 있을까봐. 두렵다. 그가 ‘새로운 시각에서’ 이야기하는 ‘노동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책’이 ‘노동3권을 헌법에서 빼는 것’과 ‘전체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것’일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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