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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성적 권력 격차는 '도덕론'의 문제가 아닙니다

데이트폭력 사건, 두 ‘진보적 글쟁이’에 대한 응징을 넘어

2015. 06. 22 by 김민하 기자

주말 사이 두 건의 데이트폭력 사건이 SNS 등의 인터넷 공간을 뒤흔들었다. 하나는 본지, 미디어스의 기자로 활동했던 칼럼니스트 한윤형씨에 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일베의 사상> 저자인 필명 박가분씨에 관한 것이다. 두 사람은 각각 교제하던 사이에 있던 여성에 대해 상습적으로 폭행했다는 의혹과 폭언 등 여러 위협을 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윤형씨의 경우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폭행 사실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제기된 의혹에 대해 자신이 기억하는 사실관계와는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고, 박가분씨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이들의 이러한 입장에 대해 피해자들은 반발하고 있으며 SNS 등에서는 두 사람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종편을 포함한 다수 언론들 역시 이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평소 ‘진보’를 말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데이트폭력 사건에 연루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일종의 배신감을 호소하고 있다. 겉으로는 사회의 진보와 여성의 권리 수호를 말하면서 자신의 사적 영역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표리부동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소위 ‘시정잡배’나 할 일을 어떻게 이 시대의 젊은 지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감행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한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이 두 사람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의혹이 사실로 인정되는 상황에서 민형사상의 책임 추궁이나 문화적 권력의 박탈 등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요즘에는 ‘구조의 문제’라는 말을 개인의 책임 회피를 위해 말하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지만, 본래 이 말은 개인이 책임져야하는 것은 물론, 이것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 사회적 변화를 통해 근본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여왔다. 데이트폭력에 대해 우리 사회는 단순히 “남자는 신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식의 ‘매너’의 문제로 인식하거나 “사람을 꽃으로도 때려서는 안 된다”는 등의 도덕론으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실 이 문제야말로 구조적 해결책이 절실히 필요한 것들 중 하나다.

‘구조’를 언급하는 것은 데이트폭력의 문제가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적 권력의 격차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성 우월주의를 기본으로 한 가부장적 사회에 살고 있다. 어떤 남성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여러 역차별(?)을 근거로 들며 자신들을 피해자화 하는데 골몰하지만, 그런 개별적 사례들이 아니라 ‘구조’를 따졌을 때 우리가 남성이 여성보다 우위에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말하자면 애초에 이 사회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남성이 이러한 격차를 인식하고 자신이 이 구조를 이루는 하나의 요소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양성평등을 향한 단 한 걸음을 내딛기도 어렵게 될 것이다.

▲ 한윤형 씨는 주말 1차 사과문을 올린 이후에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22일 오전 두번째 사과문을 올리고 하고 있는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자숙하겠단 입장을 밝혔다. (한윤형 페이스북 화면 캡처)

전형적인 데이트폭력의 형태는 반복되는 남성의 폭력과 이에 대한 여성의 종속으로 나타난다. 데이트폭력의 범주에 포함되는 다양한 개별적 사례들이 존재하지만 결국 남성이 폭력을 통해 여성을 통제한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폭력의 지속적인 활용은 어찌됐건간에 원초적으로 남성의 신체조건이 여성보다 월등하게 낫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어떤 데이트폭력의 가해자들은 자신의 폭력이 경미한 것이었음을 주장하지만, 같은 조건 선상에서 경미한 폭력이 과다한 것으로 발전할 경우 여성은 강간당하거나 살해당한다. 이런 사례들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약육강식’과 같은 비문명적 상황을 지향하지 않는다고 하면, 데이트폭력을 어떤 형태로든 방지하고 처벌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들을 만들고, 유지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은 그야말로 중요한 사회적 과제이다.

언제나 이 사회적 과제의 달성을 가로막는 것은 이 구조에서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남성들의 저항이다. 이 사건에서도 이런 현상은 똑같이 나타났다. “피해자의 고발에 어떤 불순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거나 “가해자들이 유명인이어서 더 큰 피해를 당한 것”이라는 등의 주장들이 인터넷 공간 여기저기에 넘쳐났다. 사람은 합리적 동물이니 세상 만사 모든 것을 의심해보자는 태도를 갖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주장으로서 확신을 갖고 남들에게 내놓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욱 강고하게 만드는 행위다.

이런 식의 주장들은 거의 언제나 피해자들의 문제제기를 무용한 것으로 만드는데 일조한다.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피해자들의 용감한 결심은 개별적인 남녀 간의 어떤 ‘추문’으로 소비되며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상황에서 이는 여성에 대한 더 큰 피해로 이어진다. 폭행을 가한 남성에 대한 비난보다는 ‘맞을 짓을 한’ 여성에 대한 폄하가 퍼져나가는 게 일반적이다. 피해자는 폭행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죄를 지은 사람처럼 그 사실을 가슴 속에 꾹꾹 눌러담고 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피해자의 문제제기를 무력화할 수 있는 모든 행위에 ‘2차가해’라는 개념을 적용해왔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의사를 갖고 있고 힘센 자가 모든 것을 독점하는 정글과 같은 사회법칙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2차가해’에 대해 단호한 태도로 저항하고 나서야 한다. 물론 이러한 ‘2차가해’에 대응하고자 하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안정과 치유이다.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고발을 지지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들의 안정과 치유에 도움이 되지 않는 모든 행위를 중단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최근 SNS 등 인터넷 공간에서 여성주의를 지지하고 실천하자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는 개그맨 장동민씨 등이 연루된 소위 ‘옹달샘’ 팟캐스트 사건 등을 계기로 한 것이지만 인터넷 공간에서 만연해있는 여성에 대한 비하적 문화에 반기를 든 것이기도 하다. 극우적 주장들이 횡행하는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의 이용자들은 ‘삼일한’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자와 북어는 삼일에 한 번 때려야 한다’를 줄인 말이다. “마누라와 북어는 삼일에 한 번 패야 한다”는 출처불명의 옛 말을 활용한 것이다. 이번 사건과 연관지어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여성에 대한 폭력에 무감각한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사례다.

이런 상황은 남성들이 자신들이 겪는 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 체제나 기득권에 맞서기보다는 사회적 약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과정에서 더욱 증폭되고 있다. 체제와 기득권 또한 남성들의 이런 비겁한 책임 전가를 사실상 지지하고 유도하기까지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 큰 폭력에 의한 더 많은 데이트폭력 피해자들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더욱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용기를 갖고 데이트폭력을 고발한 피해자들을 지지하고 보호하며 이들의 목소리가 사그러들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이번 사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문제의식이 두 ‘진보적 글쟁이’들에 대한 응징을 넘어 여성을 적대하는 사회적 장치들의 해체에 일조하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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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킹 2015-06-24 14:38:30
대놓고 말하자면 '새민련당원' 같은 분이 여성주의를 방패삼아 '정서 폭력'을 시전하는 분이시죠.
이런 분들은 유영철같은 강간범이나 어묵드립하는 일베충들이랑 다를 바가 없어요.
잉여킹 2015-06-24 14:37:52
대놓고 말하자면 '새민련당원' 같은 분이 여성주의를 방패삼아 '정서 폭력'을 시전하는 분이시죠.
잉여킹 2015-06-24 14:35:20
솔직히 여성주의 실천한다는 분들이 넷상에서 엄한 사람 몰아 조리돌림하고 따돌리는 '정서 폭력'은 폭력이 아닌지 되묻고 싶어지네요. 과거 경희대 교수 성폭력 무고 사건이 떠오르는지라 더더욱 섬뜩하게 느껴지는데, 꼭 물리적 공격이 첨부되어야만 폭력이라고 느끼는 세태가 안타깝네요.
새민련당원 2015-06-23 14:06:55
/새누리당원2

저 죄송한데 범죄는 돈 권력 없어도 저지르면 안되는건데..
새누리당원2 2015-06-23 05:24:59
물론 돈 권력이 충분한대도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있고. 돈 권력이 없어도 도덕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정말 나쁜놈이고 후자는 존경을 받아야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