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의혹이 전방위로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안대희 후보자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부 보수지에서도 이러한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정작 가장 처음 안대희 후보자의 내정 사실을 사실상 확언(?)했던 <조선일보>는 침묵을 지켰다.
<조선일보>의 28일자 지면 전체에 안대희 후보자 관련 뉴스는 6면에 실린 현금 5억원 관련 소식 단 1개다. <경향신문>이 안대희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과 해명에 대해 10꼭지에 가까운 기사를 배치하고 <한겨레>가 청와대의 사실상 총리후보 내정 통보를 받고 안대희 후보자가 유니세프에 기부금을 냈다는 단독 보도를 한 것과는 대조된다.
안대희 후보자의 거취에 대해서는 심지어 보수지인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도 한 마디씩을 보탰다. <중앙일보>는 김진 논설위원이 쓴 ‘대한민국 총리 값이 11억인가’라는 제목의 시평에서 안대희 후보자의 총리직 수행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주장을 내놨다. <동아일보>는 ‘안대희 총리 후보자, 국민의 눈높이에서 거취 고민하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안대희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을 열거했다. 사실상 사퇴를 촉구한 모양새다.
안대희 총리 후보자 지명 직전부터 이어진 <조선일보>의 행보를 고려해봐도 28일의 침묵은 의미심장하다고 밖에 평가할 수 없다. <조선일보>는 안대희 총리 후보자 지명 사실이 공개되던 22일 조간에서 유일하게 안대희 후보자의 이름을 제목에 넣은 기사를 1면에 배치했다. 기사의 내용이 다른 언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그러한 제목을 뽑은 데에는 일정한 ‘의도’가 있었다고 밖에는 평가할 수 없다.
이후 <조선일보>는 23일 ‘안 후보자, 책임 총리 실천할 각오 없으면 시작도 말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안대희 후보자가 상당한 권한을 갖고 책임 총리제를 관철시킬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요일이었던 지난 24일에는 강천석 논설주간의 칼럼을 통해 ‘이회창 전 총리’의 예까지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대통령과 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책임 총리의 운명을 예언하고 이를 대통령이 용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코치’를 했다. 같은 날 <중앙일보>가 ‘아쉬움’을 말하고 <동아일보>가 국정원장과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인사를 말한 것과는 사뭇 다른 뉘앙스다.
<조선일보>는 이날 지면에서 ‘김기춘 청와대가 논란되는 이유’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법조계 선배인데 책임총리가 가당키나 하겠냐는 세간의 비난을 방어해주기까지 했다. 책임총리를 해야 하니 청와대 참모진도 전면 개편을 하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주장을 내놓은 것이다.
25일 안대희 후보자가 대법관 퇴임 이후 16억원 가량의 수임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26일 <조선일보>는 ‘안 후보자, 변호사 5개월 수임료 16억 더 해명해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안대희 후보자가 맡았던 조세사건과 대기업으로부터 받은 고문료를 공개해야 한다고 ‘코치’했다. 검찰 특수부와 대법원 출신인 안대희 후보자가 형사 사건과 대법원 사건을 맡지 않았다고 하니 ‘전관예우’와 관련한 의혹은 해명이 된다면서 나머지 문제에 대해서는 ‘정면돌파’를 주문한 것이다.
하지만 안대희 후보자가 퇴임 이후 벌었다는 11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조선일보>의 태도는 변하기 시작한다. 다음 날인 27일 <조선일보>는 ‘안 후보자, 번 돈 내놓는다고 공직 적폐 척결 자격 생기겠나’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그런 방식으로는 공직사회 개혁의 동력을 얻을 수 없다며 개탄했다. 거의 ‘아깝지만 이제 안되겠다’는 식으로 읽힌다.
이런 과정을 죽 지켜볼때 28일 <조선일보>의 침묵은 일단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시그널'로 읽힌다. 안대희 후보자가 28일부터 ‘적극 해명모드’로 전관예우, 과다한 수임료, 석연찮은 기부 시점 등에 대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이후 행보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얼마나 그럴듯한 해명이 나오는지, 야당의 문제제기에 얼마나 ‘방어’가 되는 지에 따라 <조선일보>의 29일자 지면의 내용도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만일 안대희 후보자의 대응이 또 미봉적인 것에 그치는 상황이 된다면 <조선일보> 역시 그의 거취를 언급하는 언론의 대열에 함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조선일보>에게는 ‘안대희’ 이름 석 자를 맨 처음 내세운 책임은 없고, 오로지 ‘언제나 이겨야 하는’ 당위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안대희 후보자의 운명이 <조선일보>의 지면 편집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