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한국 기득권의 ‘민낯’ 드러낸 한기총 조광작 목사 망언 < 비평 < 뉴스 < 큐레이션기사 - 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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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계층 문제’ 드러내나...'역린' 건드렸단 평가도

한국 기득권의 ‘민낯’ 드러낸 한기총 조광작 목사 망언

2014. 05. 23 by 한윤형 기자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불국사로 가면 되지 왜 제주도로 가다가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

23일 <한겨레>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임원회의 참석자들의 말을 인용해 한기총 부회장인 조광작 목사가 지난 20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연합회관 내 한기총 회의실에서 열린 긴급임원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보도했다.
조광작 목사는 이어 “천안함 사건으로 국군 장병들이 숨졌을 때는 온 국민이 경건하고 조용한 마음으로 애도하면서 지나갔는데, 왜 이번에는 이렇게 시끄러운지 이해를 못하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을 흘릴 때 함께 눈물 흘리지 않는 사람은 모두 다 백정”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보도가 나간 후 몇 시간 동안 수백 개의 기사가 폭주하였다. 조광작 목사는 한기총 부회장직에서 사퇴했다. 그의 발언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결코 건드리기를 원하지 않았던 어떤 '역린'을 건드린 것으로 여겨진다.
▲ 23일자 한겨레 9면 기사
세월호 참사는 흔히 1993년의 서해훼리호 사고, 1994년의 성수대교 붕괴, 1995년의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과 삼풍백화점 붕괴 등 김영삼 정부 시절의 재난사고들과 비교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비교될 때엔 ‘대규모 재난사고 이후 20년이 지나도 안전불감증이 여전한 대한민국’의 문제가 주로 지적되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엔 다른 부분도 있었다. 이른바 ‘이윤은 위로, 위험은 아래로’ 향하는 위험의 계층적 분절이 만들어낸 사건이라는 부분 말이다. 이렇게 볼 때 세월호는 재난사고가 아니라 ‘눈앞에 뻔하게 보이도록 파헤쳐진 우리의 일상’이 되었고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백혈병이나 기타 비정규직 산업재해와 비슷한 계열의 사건으로 환기되었다.
보수주의자들은 참사에 대한 전자의 해석에 주목하면서 후자의 해석은 되도록 덮으려고 시도할 것이다.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전자의 해석에도 동의하면서 후자의 해석 역시 드러내도록 시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전자에만 동의할 때 우리는 ‘아이들의 죽음에 공통의 책임을 진 어른들’의 틀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후자를 포함한 다양한 부문의 문제가 지적될 때에야 우리는 이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
‘대한민국의 문제’가 되었든 ‘계층의 문제’가 되었든 대통령은 이 참사의 수습과정의 혼란에 대한 분명한 책임이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기득권을 구성하는 집단 중 하나인 보수적 기독교단체의 간부는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지나쳐 그 책임마저 피하다가 엉겁결에 계층의 문제를 드러냈다. 어쩌면 세월호 참사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그저 분수에 맞게 행동하기를 바라는’ 그 기득권층의 욕망들이 만들어낸 제도들의 중첩에서 나온 결말이다.
조광작 목사가 하나 모르는 것이 있다. 안산 단원고는 ‘분수에 맞지 않는’ 여행을 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노동자 밀집지구에 위치한 학교의 경우 학부모들이나 학생들이나 장시간의 여행을 선호한다는 증언이 있다. 학부모도 자녀도 잠깐이나마 서로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행기타면 금방인 제주도를 굳이 배를 타고 2박3일 일정으로 다녀오는 단원고의 수학여행 스케줄은 아마도 그런 일반적인 정서의 반영이었을 것이다.
조광작 목사의 발언이 아니더라도 희생자 유가족들은 본능적으로 계층의 문제를 깨닫고 있었다. “강남의 고등학교가 이런 일을 당했더라도 이렇게 처신했겠느냐”는 외침이 일찌감치 나왔다. 자신들을 막아서는 KBS 청경들 앞에서 일부 유가족들은 “우리가 안산 사람이라고 무시하느냐. 안양 사람이라도 되었다면 이리 대했겠느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서 계층문제는 흔히 지역정서로 드러난다. 조 목사의 발언 등이 서울에 대한 경기도의 박탈감에 불을 지를 수도 있는 상황이다.
어쩌면 조광작 목사 덕에 박근혜 대통령이 6월 5일 아침에 “경기도는요?”라고 물으며 일어나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군주를 섬기는 과잉충성의 자세로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인에게 도움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조광작 목사에 대한 시민들의 즉자적인 분노보다도, 그것이 선거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추정하는 얄팍한 계산보다도, 그가 던진 한탄이 기득권층의 ‘민낯’을 드러냈으며 그것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건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더욱 드러내야겠다. 기득권을 누리거나 옹호하는 이들의 인식이 조광작 목사와 같은 이상, ‘참사’의 가능성은 한국 사회 곳곳에나 널려 있고 우리는 제발 그 지뢰를 밟지 않기를 기도하며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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