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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설 없이 항변만…중앙, '한국판 드레퓌스' 가해자 반성 요구

'강기훈 무죄', 조중동의 상이한 태도

2014. 02. 14 by 한윤형 기자

13일 고등법원이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씨의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가해자’ 측에 해당했던 재판부나 수사 당국, 국가 권력의 책임자들의 반성이나 사죄는 없었기에 진보언론들은 아쉬움을 전했다. 한편 보수언론들 역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그리고 <중앙일보>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여 한국 사회가 독재정권 시절의 인권 유린 문제를 대하는 방법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14일자 <조선일보>는 사설란에서 이산가족 상봉 문제, 노사협의 문제, 안현수 귀화를 둘러싼 뒤늦은 논란 등에 대해 다뤘다. 13일에는 강기훈씨 무죄 선고는 물론 영화 <변호인>으로 더욱 유명해진 부림사건의 피해자들 역시 33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조선일보> 사설란에선 다뤄지지 않았다.
‘가해자’의 항변을 그대로 실은 ‘조선일보’
대신 <조선일보>는 12면 기사에서 두 사건의 무죄 소식을 다뤘다. 박스 기사에서는 각각 부림사건의 피고인과 당시 검사들의 입장을 다뤘다. 당시 검사들의 입장을 다룬 박스 기사에서 고영주 변호사는 “임오군란 사건을 지금 다시 재판하는 것과 다르지 않고, 그동안의 공안 사건들을 전부 그런 식으로 뒤집어 왔으니 그 연장선상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또 최병국 전 새누리당 의원은 “당시에는 임의동행 등에 대한 관련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불법 구금이라고 보는 것들도 당시엔 합법적인 제도에 따라 진행된 것이었다”라고 밝혔다.
▲ 14일자 조선일보 12면 기사
<조선일보>의 보도 태도는 피고인의 입장과 이 검사들의 입장을 병렬적으로 배치하면서 이것들이 이 상황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상이한 시선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 것처럼 제시했다. <조선일보>는 다른 기사 제목이나 사설을 통해 이 사건을 바라보는 자사의 가치평가를 드러내지 않았다. 다른 언론들은 보수언론이라 해도 <조선일보>처럼 해당 판결을 부인하는 당시 검사들의 견해를 담지 않았다.
그러나 고영주 변호사와 최병국 전 의원의 견해는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해석한다면 당시는 지금과 같은 민주주의 체제가 아니었고 유신체제나 5공체제였기 때문에 그것이 합법이었다는 견해로 요약된다. 하지만 정치체제가 다르다는 이유로 인권유린 문제를 용납할 수는 없다는 것이 현대사회의 상식이다.
가령 한 나라가 군주국일 경우 우리는 군주가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그 통치행위는 존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군주가 죄없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때리고 죽이는 것을 용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고 변호사와 최 전 의원의 논리대로라면 우리가 북한인권법을 만들겠다는 것 역시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이 되고 통일 이후에도 과거 북한 정권의 인권유린에 대한 책임소재를 물을 수 없다. 파시스트 체제였던 히틀러 치하 독일이나 일제의 전쟁범죄나 인권유린을 묻는 것도 불가능하다.
▲ 14일자 조선일보 12면 기사
더구나 유신체제나 5공화국은 내용적으로야 어쨌든 겉으로는 민주주의 국가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이 사건들을 임오군란과 비교할 만큼 권위주의 시기를 민주주의 국가와 반대되는 시기로 놓는다면 이 시기는 대한민국사에 포함해서는 안 되며 그들의 법조인 경력도 ‘가짜’라는 말에 지나지 않게 된다. 우리는 군부독재세력과 민주화운동세력의 타협이 만들어낸 ‘1987년 체제’ 속에서 살고 있다. 이 타협을 굳이 논리적으로 정당화하려면 그 시기에도 국가가 공공적인 역할을 한 측면이 있었음을 인정하되 민주주의 국가의 원칙을 저버린 인권유린에 대해선 ‘반성적 청산’을 해야 한다.
<조선일보> 기사에서 고영주 변호사는 “사법부의 좌(左)편향을 어떻게 바로잡을 방법이 없고, 선배 판사들을 모두 소신도 없고 엉터리 판결을 한 것으로 몰고 있다”고 반박한다. 대체 이것이 앞뒤가 맞는 논리인가. ‘부림사건’이 ‘임오군란’에 비교될 정도라면 고영주 변호사가 어찌 지금 판사들의 ‘선배’가 되나. 고영주 변호사는 조선왕조의 탐관오리들을 선배로 섬기는가, 아니면 조선왕조가 대한민국으로 변모한 것을 좌경화라고 보는가.
‘진영논리’ 벗어난 법리적 판단 주문한 ‘동아일보’
<조선일보>만큼 황당한 소리를 옮기지는 않지만 <동아일보> 사설 역시 어느 지점에서 선을 긋는다. <동아일보>는 <‘부림’ ‘유서 대필’ 무죄, 진영논리로 재단할 일 아니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두 사건의 무죄에 대해 “합리적으로 수집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증거만이 유죄를 만든다는 형사소송의 원칙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법리적으로 타당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23년도 더 지난 이 사건들을 좌우 진영논리의 연장선 위에서 바라보며 논쟁을 더 끌어갈 이유는 없다. 이번 판결은 과거의 잘못된 수사와 재판을 바로잡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는 사설의 결론은 다소 조급하다. 야권과 진보언론에서 이 사건에 연루된 이들이 현 정부와 관련이 있다는 공세를 취하는 것을 미리 방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 14일자 동아일보 10면 기사
물론 <동아일보> 사설의 논리대로라면 ‘과거의 잘못된 수사와 재판’을 옹호하는데 급급하는 고영주 변호사나 최병국 전 의원의 항변 역시 자제되어야 마땅하기에 <조선일보>와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권위주의 정권의 구성원들이 인정하지 못해서 분란이 나는 문제에 대해 양자의 자제를 요구하는 것이 과연 중립적인 태도인지는 의문이다.
또한 <동아일보>가 사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에는 부림 사건 피고인들이 판사 앞에서 당당하게 사회주의 이념을 주장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번 무죄 선고는 부림 사건의 실체와는 상관없이 불법 수집한 증거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의미를 지닌다”라고 말한 부분은 인권의식의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부림 사건의 피해자들이 단지 ‘불쌍한 피해자’가 아닌 ‘떳떳한 사회주의자’였다는 점을 더 조망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으나, 그 사실만으로 그들이 국가 전복을 꾀했다고 처벌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따라 나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중앙일보’는 적극적으로 ‘가해자’ 반성을 요구했다
이에 반해 <중앙일보>는 <'유서대필' 강기훈씨의 23년, 누가 책임지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사건을 둘러싼 부조리함을 조목조목 짚었다. <중앙일보> 사설은 일단 이 사건을 “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려온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이라 칭하는 등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의 보도와는 온도차가 달랐다.
▲ 14일자 중앙일보 12면 기사
또 <중앙일보> 사설은 “이 사건의 전개 과정을 보면 대한민국에 사법 정의가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라고 물었다. 또 “문제는 그가 구속되고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을 때까지 검찰과 법원의 여과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욱이 진실화해위 재심 권고 후에도 7년이란 긴 시간이 걸린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강씨 사건은 한국 사법시스템에 내재된 ‘인권 불감증’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중앙일보> 사설의 마지막 단락은 민주정부 시절 과거사위원회의 활동 자체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평균적인 보수 세력에게 ‘양식의 표준’을 요구하며 일독을 권할 만하다. 물론 이러한 입장은 다른 보수언론과 차이를 두려는 <중앙일보>의 전략적 지향점일 수는 있으나, 적어도 이러한 견해가 보수의 표준이 될 때에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한층 성숙하리라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강씨는 무죄 선고 후 “사법부의 권위는 과거의 잘못을 인정할 때 세워진다”고 말했다. 법의 이름으로 인격을 짓밟은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무죄 판결이 확정된다면 검찰, 나아가 사법부는 강씨에게 고개 숙여 사죄를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제2, 제3의 강기훈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막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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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2014-02-17 14:21:49
4문단의 첫 문장 맨끝 '이것이들이'라고 오타가 났네요. 수정부탁드려요.
이연희 2014-02-14 18:59:03
조중동에서 중앙일보가 변화하고 있네요..보수가 이렇게만 바뀌어준다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