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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영광의 ‘언론을 묻는다’] 고 이용마 MBC 기자의 배우자 김수영 씨

“현실에 타협하지 않는 기자들 많아지길”

2022. 12. 29 by 이영광 객원기자

[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공정방송은 쟁의행위의 정당한 목적이 될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2014년 검찰은 2012년 MBC 파업을 이끈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집행부 5명을 업무방해, 재물손괴,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그리고 검찰 기소 8년 만인 지난 12월 16일 대법원은 핵심 쟁점이었던 '업무방해' 부분을 무죄로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공정방송’ 요구가 근로조건에 해당한다는 판례로 남기 때문에 의미가 깊다. 언론 노동자들이 공정보도가 안 되는 상황에서 개선책을 요구했는데 사측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근로조건에 관한 정당한 쟁의 사유가 된다는 판단이다.

이 판결을 보면서 떠오른 사람이 있다. 당시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후 복막암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하다 2019년 세상을 떠난 이용마 MBC 기자(파업 당시 노조 홍보국장)다. 이 기자의 가족은 이번 대법원 판결을 어떻게 봤을지 궁금해 지난 21일 서울 용산역에서 고 이용마 기자의 배우자 김수영 씨를 만났다. 다음은 김 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2012년 MBC 총파업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2년 MBC 총파업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2년 MBC 파업’ 관련 대법원 확정판결이 검찰 기소 8년 만에 나왔는데, 소식 들었을 때 어떠셨어요?

“사실 처음에 기사 내용 보면서 별생각이 없었어요. 이제 와서 무슨 상관인가 싶었죠. 이용마 기자는 두 줄 아래 내려가서 다르게 써 있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였는데 이 사람은 ‘공소를 기각한다’였죠. 이승에 있는 사람하고 저승에 있는 사람은 다르다는 느낌부터 들었던 것 같아요.”

1, 2심 판결 나왔을 때는?

“그때는 이용마 기자가 살아 있을 때라 굉장히 기뻐했던 걸 옆에서 봤으니까요. 저는 항상 애들 아빠가 좋으면 저도 좋고 슬퍼하면 같이 슬퍼하고 그래서 그때는 되게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특별한 느낌은 없죠. 다른 분들한테 굉장히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말씀 많이 들었고, 그래서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2012년 ‘170일 파업’ 당시 이용마 기자는 어땠나요?

“노조 홍보국장 역할 그 이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사명감 가지고 일하는 모습, 되게 멋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노조 일 하겠다고 했을 땐 달갑지 않으셨을 듯한데?

“그런 질문 많이 하시는데 이용마 기자가 뭘 하겠다고 하면 당연히 하는 거기 때문에 반대해봤자 의미가 없었고요. 노조 일 하겠다고 했을 때 저는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많이 신뢰하셨나 봐요?

“뭐든 알아서 잘하니까요. 그런데 친정 부모님은 별로 안 좋아하셨어요. 딸 밥줄 끊길까봐 걱정하셨던 것 같은데 저는 ‘설마 밥줄이야 끊기겠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본인이 하겠다는 걸 반대해봐야 굽히지 않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한다고 하면 기꺼이 ‘잘하십시오’라고 얘기하는 게 익숙했던 것 같습니다.”

MBC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 선공개 영상 (사진제공=MBC)
MBC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 선공개 영상 (사진제공=MBC)

그러나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됐잖아요. 해고 소식 들었을 땐 어땠나요?

“아주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때는 더 이상 MBC 기자가 아닌 게 싫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내가 밥벌이해야 하나’란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생계 부담이 커지니까 힘들기는 했거든요. 근데 그보다는 저의 자랑은 'MBC 기자'인 이용마인데 더 이상 MBC 기자가 아니란 사실이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당시에 사실 일주일 정도 앓아누웠었거든요.”

도대체 MBC 기자가 뭐길래 그랬을까요?

“MBC 기자는 주변 여건이나 권력관계에 영향 많이 안 받고, 자기 목소리를 가장 잘 펼칠 수 있는 위치에서 리포트할 수 있는 기자로 알고 있었어요. 실제로 이용마 기자 본인이 그렇게 활동했던 걸 증명했었고요. 그런 기자가 멋있는 기자 아닐까요.”

집행부로 나서서 해고까지 당하냐는 생각도 하셨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은 안 했어요. 기왕 하려면 제대로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세상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죠. 어떤 의미를 가진 일에 나서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오히려 눈에 띄게 자기 역할 하는 부분에 저는 한 표를 더 줬던 것 같아요.”

해고된 후 이용마 기자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제가 뭐 먹고살 거냐고, ‘백수’라고 계속 놀렸어요. 놀리는 게 반절은 진심이고 반절은 농이었거든요. 해고된 당시는 믿기지 않는 점도 있었고 ‘잠깐이겠지’ 혹은 ‘금방 끝나겠지’라고 생각한 것도 있어서 별 얘기 없이 지나갔는데요. 해고 기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실감이 나고 생계가 걱정되기 시작했죠.

그런데 먹고 사는 거에 대해서는 노조에서 나중에 갚는 생활자금처럼 빌려주셨어요. 그래서 실제 생활에는 특별히 지장이 있진 않았죠. 사실 대부분 사람들에게 해고는 경제적인 부담과 직결되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 문제에서 부담이 덜했던 상황이라 MBC 파업의 정당성이라든지, 사회적인 역할과 의미 그런 부분을 조금 더 지지할 수 있었던 여력이 있었던 것 같아요. 노조의 뒷받침 이런 부분이 실질적으로 정말 감사한 일이었죠.”

MBC TV 창사 6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
MBC TV 창사 6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

가정에서 이용마 기자는 어떤 분이었나요?

“결혼하고 나서 정치 경제 사회적 부분은 이용마 씨가 담당하고 저는 문화, 가정을 책임지기로 했었거든요. 업무 분장이 딱 돼 있었어요. 일단 가정에서 제가 뭘 할 때 크게 관여하지 않았어요. 의사결정이 필요한 부분도 웬만하면 다 맡겨줬어요. 대신에 경제적인 부분은 본인이 다 알아서 했고 그 부분에서 저는 약간 편하게 살았었거든요. 다르게 얘기하면 기둥이었어요. 그러니까 제일 중요한 경제적인 책임, 그다음에 집안 가족들 간의 관계 이런 부분도 이용마 씨가 다 책임지고 모든 걸 다 갖춰줬던 부분이 있어서 배우자로서 편하게 지냈어요. 가정에서 이용마 씨 역할이 너무 컸었기 때문에 암으로 세상을 등졌을 때 굉장히 서러웠던 것 같아요.”

이용마 기자가 2016년부터 복막암 투병하셨는데 옆에서 간병하기 어려우셨을 텐데요.

“처음에는 항암 치료 안 하고 자연치유 했었거든요. 자연치유하겠다고 결정한 것도 본인이고 자신의 병을 어떻게 관리할 건지 항상 매 순간 본인 스스로 결정했어요. 저는 거의 통보받는 수준으로 의사결정에는 참여하지 못했거든요.”

그럴 때 좀 서운하지 않으셨어요?

“아니요. 워낙 무서운 일이었잖아요. 너무 무서운 일이어서 제가 좀 회피했던 면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용마 기자는 원래 본인이 모든 걸 결정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그게 특별하진 않았어요. 또 워낙 무서운 일이라 내가 무슨 조언을 했다가 더 잘못될 수도 있으니 이 사람 말을 더 따라주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본인 몸이잖아요.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그 길을 본인이 어떻게든 관리하고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워낙 강해서 존중하고 싶었습니다. 저희 관계에선 그게 자연스러웠고요. 실제로 존중해 줄 수밖에 없었어요.”

처음 암 진단 받고 얘기 들었을 때는 어땠나요?

“사실 그때는 애들 아빠가 아니라 애들만 생각났어요. 아이들 어떻게 키우지란 생각만 들었던 것 같아요.”

혼자 키우신 지 3년 정도 됐는데?

“경제적인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데 현재 잘 유지되는 편이에요. 주변에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그리고 제가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생활하는 데 부족하긴 해도 불편하지 않아요. 경제적인 부분이 일단 해결되니까 급박한 느낌 같은 건 덜 들어요.”

MBC TV 창사 6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
MBC TV 창사 6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

이용마 기자가 중요하게 생각해온 것은 공영방송 MBC의 역할, 그중에도 공정방송의 구현이었습니다.

“(이용마 기자는) MBC라는 조직 구조가 굉장히 좋은 조직 구조라고 그랬어요. 다양한 성향의 사람이 동시에 존재하고 그러면서 각자의 입장에 맞는 서로 다른 생각들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공간이 MBC라고 했죠. 그게 지배구조에서 나오는 거라고 했거든요. 그런 구조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또 조직화될 수 있었고, 이용마 기자 역시 그 안에서 혜택받았다고 그랬어요. 참 많이 누렸다고 그랬는데, 저는 그 말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의미인가요?

“기자가 기자답게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가치인데, 그런 공간이 MBC라는 거예요. 본인이 알고 있는 MBC요. 이용마 기자는 그런 MBC를 사랑했고 그 MBC에서 일하고 싶어 했던 사람이에요.”

이용마 기자가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약자를 대변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걸 기억합니다. 지금 MBC 상황이 복잡하잖아요. 정권과 갈등도 있고요. 이용마 기자가 현재 상황을 보면 뭐라고 할까요?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께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면, 더 잘하지 못했다고 아마 닦달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금 열심히 싸워주고 계시니 되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해요.”

외부에서 보기엔 어떠신가요?

“불안불안하죠. 그런데 시청자 분들이 오히려 이번 월드컵 때 MBC 몰아 봐주기 하고 그랬잖아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이슈가 되는 부분이 MBC가 정확한 목소리를 내다보니까 두드러진 건데, 이렇다는 사실 자체를 제대로 보도하는 언론이 별로 없잖아요. 그러니 국민들이 MBC의 이런 역할에 대해 더 지지하는 것이고요. 저는 앞으로도 MBC가 색깔 잘 지켜가며 더 잘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고(故) 이용마 기자 1주기 당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방송센터 1층 로비에 마련된 추모공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제공]
고(故) 이용마 기자 1주기 당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방송센터 1층 로비에 마련된 추모공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제공]

이용마 기자의 뜻을 기리려면 후배 언론인들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용마 기자를 기억하는 것만으로 힘 가지게 되지 않을까요. 그가 원한 건 언론인 모두가 바라는 가치였을 것입니다. 어떤 분이 힘들 때 바라볼 수 있는 별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상징적인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면서 공영방송의 기치를 꺾지 말고 잘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후배 언론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일단 MBC 구성원들이 MBC를 잘 지켜주셨으면 좋겠어요. MBC 정말 중요한 조직이고 상징적인 조직이잖아요. 좋은 언론인이 무엇인지 이 사람만큼 강의를 많이 한 사람이 없을 것 같아요. 현실에 타협하지 않는 게 이용마 기자의 장점이었거든요. 현실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인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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