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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영광의 ‘언론을 묻는다’] 이이백‧임현정 KBS 〈시사 직격〉 PD

“한인 입양인이 내는 목소리에 힘이 되길”

2022. 11. 10 by 이영광 객원기자

[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지난 9월 13일 덴마크를 주축으로 미국, 벨기에 등 어린 시절 해외에 입양된 한인 입양인들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찾았다. 이들은 자신의 해외입양 과정에서 강압, 뇌물, 문서 위조 등의 불법 입양 양상이 나타났다고 주장하며 인권침해와 국가개입 여부의 진실을 밝혀줄 것을 촉구했다. 60년째 '아동수출국'이란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는 한국, 과거 해외입양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지난 10월 28일 KBS 1TV <시사 직격>은 ‘3천 달러의 삶 - 해외입양 잔혹사’ 편 (☞ 방송 다시보기)을 방송했다. 1984년 프랑스로 입양된 김유리 씨 이야기로 시작한 이날 방송은 7, 80년대 해외로 입양된 한인 입양인들의 사연을 통해 해외입양 과정의 문제점을 짚었다. 취재 이야기 듣기 위해 지난 2일 ‘3천 달러의 삶 - 해외입양 잔혹사’ 편을 취재한 이이백, 임현정 PD를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만났다.

KBS 1TV 〈시사 직격〉 ‘3천 달러의 삶 - 해외입양 잔혹사’ 편
KBS 1TV 〈시사 직격〉 ‘3천 달러의 삶 - 해외입양 잔혹사’ 편

‘3천 달러의 삶-해외입양의 잔혹사’ 편 방송 끝낸 소회가 궁금합니다.

임현정 PD(이하 임 PD) : “두 달 정도 준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도 있지만 마지막에 루이스 같은 경우 어머니를 찾았고, 유리 씨도 프랑스에서 계속 취재해 담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최대한 많이 담으려고 했기 때문에 그래도 잘 마무리한 것 같습니다.”

이이백 PD(이하 이 PD) : “저희가 처음 아이템 시작하자마자 해외 출장 갔어요. 급하게 관련 내용 공부하고 취재 시작하다 보니, 초반에는 갈피를 못 잡고 일어나는 일 따라가기에 바빴던 것 같아요. 때문에 제작하면서도 걱정이 됐는데, 결과적으로는 (임)현정 PD가 얘기한 대로 저희가 생각지도 못하게 방송 직전 어머니 찾는 일이 이루어져 마지막에 다 담을 수 있어서 그런 점들은 다행이기도 해요. 근데 방송할 때마다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항상 있죠.”

해외입양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이 PD : “프랑스로 입양되신 유리 씨가 본인 이야기 하실 곳을 찾고 있었어요. 그래서 여기저기 알아보시다가 저희 <시사 직격> 프로그램에 연이 닿았고 부장님 통해서 제보처럼 들어온 거죠.”

처음에 유리 씨 사연 들었을 때 어땠나요?

이 PD : “엄청 걱정됐어요. 왜냐하면 유리 씨는 올해 1년 동안 너무 많은 일을 해오셨거든요. 방송에 담아야 할 모습을 이미 유리 씨가 많이 진행하신 상태였고, 여기에 굉장히 몰두하고 있으셨어요. 제가 보기에는 본인의 공분이 가득 찬 상태여서 만약에 유리 씨의 이야기를 방송에 담는다고 하면 어떻게 이분의 기대에 맞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컸어요.”

임 PD : “한 사람 인생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제가 잘 모르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굉장히 넓고 깊은 이야기인데, 그걸 잘 담아드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제일 많았던 것 같아요.”

임현정(좌)‧이이백(우) KBS 〈시사 직격〉 PD (사진=이영광 기자)
임현정(좌)‧이이백(우) KBS 〈시사 직격〉 PD (사진=이영광 기자)

입양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이 PD : “한국에 4대 해외입양 기관이 있잖아요. 제일 큰 홀트 포함해 전부터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입양 관련된 이야기를 시사프로로 다뤄봐도 좋겠단 생각은 어렴풋하게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하게 된 거죠.”

임 PD : “사실 크게 관심 갖거나 생각해 봤던 주제는 아니었죠. 7, 80년대에 이런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도 아예 몰랐어요. 그래서 취재하면서 더 충격적이었고 오히려 문제의식을 더 갖고 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시작할 때 BGM으로 ‘꽃밭에서’라는 동요가 나오는데, 이 곡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이 PD : “이번 아이템은 모두 성인이 된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거긴 하지만, 그분들이 어린 시절 겪은 잔인한 이야기이잖아요. 그래서 동요를 선택했고 동요 중에서도 좀 스산한 느낌이 드는 동요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찾았어요. 사실 유리 씨가 양부에게 성폭행당했지만 친아버지를 찾으셔서 애틋하게 잘 만나고 계시거든요. 유리 씨에게 아빠는 굉장히 복잡하고 중요한 존재인데 그런 부분들이 노래로 표현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동요를 골랐어요. 듣다 보면 내용이랑 가사 연결해서 생각하면 좀 소름 끼치는 느낌이 들었어요.”

처음에 취재는 어떻게 진행하셨나요?

이 PD : “사례자분들을 제일 먼저 만났어요. 유리 씨, 그다음에 덴마크 단체인 ‘덴마크 한국인 진상규명그룹’의 피터 묄러 씨와 공동대표를 맡고 계신 한분영 선생님 등 세 분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그 사례자분들 이야기 토대로 조금씩 취재 범위를 넓혀갔습니다.”

사전 준비 작업은?

이 PD : “내용이 7, 80년대 이야기잖아요. 저희 작가님들과 현정 PD 포함해서 당시 자료를 많이 찾았고, 입양 기관 관련된 책과 그 당시 보건사회부 자료 등을 찾아봤어요.”

KBS 1TV 〈시사 직격〉 ‘3천 달러의 삶 - 해외입양 잔혹사’ 편
KBS 1TV 〈시사 직격〉 ‘3천 달러의 삶 - 해외입양 잔혹사’ 편

그 당시 입양에 대한 인식은 어땠나요?

이 PD : “자료를 토대로 봤을 때, 그 당시에는 입양을 장려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80년대에는 경제가 그렇게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부모가 없거나 기아나 미아 같은 아이들을 사회적 문제로 취급해서 밖으로 보내는 게 국가적으로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보사부 장관의 발언도 있었어요. 당시 입양 나간 아이들 숫자만 봐도 정부에서 눈감아주거나 오히려 장려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국가가 아동을 인격체가 아니라 돈벌이 수단으로 본 거 아닌가요?

이 PD : “맞아요. 80년대에 가면 숫자가 놀라울 만큼 늘어나거든요. 각각 어딘가 배치되어 있던 실무자들이 ‘이 애를 보내서 돈 벌어야지’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보내도 괜찮다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방송 보면 김유리 씨는 부모님 동의 없이 해외입양됐다고 나와요. 김유리 씨 부모님이 아예 입양 사실을 몰랐던 건가요?

이 PD : “두 분 모두 남매가 입양 가고 난 이후 그 사실을 아셨어요. 부모님이 이혼하신 상태였고, 어머니가 보육원에 남매를 잠깐 맡겼어요. 맡긴 곳이 사실 유리 씨 어머님께서 일했던 곳이고 거기 계신 분들을 잘 알고 계셨어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 잘 돌봐 주겠지라는 믿음이 있었고 그 선생님이랑 종종 연락도 하면서 이 자녀분들한테 편지나 물건을 보내곤 하셨대요. 그런데 프랑스로 입양 간 이후에 부모님이 입양 소식을 전해 들으신 거예요. 그래서 부모님이 따로 입양기관에 한 번씩 다 찾아가 보셨어요. 거기서 들은 답변은 ‘모른다’거나 아니면 ‘나중에 다 찾으러 올 거니까 걱정하지 마라. 좋은 데 갔다.’였다고 하더라고요.”

입양은 부모 동의가 필요하지 않나요?

이 PD : “부모가 있는 아이들은 동의가 있어야 갈 수 있는 게 그때도 법적으로 맞는데, 부모 찾아서 동의서 받는 일이 번거로운 일이잖아요. 그러니 부모 있는 아이들도 고아 호적을 새로 만들어서 다 보냈던 거예요.”

KBS 1TV 〈시사 직격〉 ‘3천 달러의 삶 - 해외입양 잔혹사’ 편
KBS 1TV 〈시사 직격〉 ‘3천 달러의 삶 - 해외입양 잔혹사’ 편

김유리 씨 양부는 성적 목적으로 입양한 것 같은데, 이런 사람은 걸러졌어야 하지 않나요?

이 PD : “지금 같은 입양 환경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인데, 당시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그런 사람을 걸러낼 수 없게 시스템이 작동했다고 생각하는데요. 당시 한국에서는 대리입양제도를 시행해서 양부모가 한국에 오지 않고도 현지에서 아이들을 바로 받았어요. 그러니까 입양할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한국 입양 기관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아요. 프랑스의 입양 기관도 민간 기관이었어요. 프랑스 국내 아동 입양 절차가 훨씬 복잡하고 오래 걸리니, 그런 민간 입양 기관 통해 해외 어린이들을 입양했던 거죠.”

무슨 인터넷 쇼핑하듯 아이들을 입양해 간 것 같아요.

임 PD : “맞아요. 방송에 자료 영상으로도 나갔는데 아기들이 상자에 담겨서 입양됐잖아요. 그만큼 많은 수의 아이들이 갔다는 거고, 또 그만큼 양부모가 직접 와서 데려간 것이 아니라 아이들만 배달되듯 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영상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쇼핑하듯이 애들이 입양됐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신분이 바뀌어 입양된 사례가 많나요?

임 PD : “고아가 아닌데 고아로 입양된 경우도 있고, 다른 아이의 이름으로 입양된 경우도 꽤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진실화해위원회에 접수된 건수는 270건 정도인데, 그 모든 사례가 신분이 바뀐 건 아니지만 그중에서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왜 그렇게 한 걸까요?

임 PD : “고아가 아닌데 고아로 간 경우는, 부모에게 동의받는 절차가 번거로우니 입양 기관에서 그런 행정적인 절차를 간소화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 걸로 알고 있고요. 자기 이름이 아닌 다른 아이의 이름으로 간 경우는, 이미 입양 가기로 한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아프거나 사망하거나 한 경우에 양부모한테 이 사실을 알리기가 껄끄럽고 기다려달라고 말 못해서죠. 대게 그런 상황에서 사실을 말하지 않고 임의로 다른 아이들을 보낸 경우인 걸로 알고 있어요.”

KBS 1TV 〈시사 직격〉 ‘3천 달러의 삶 - 해외입양 잔혹사’ 편
KBS 1TV 〈시사 직격〉 ‘3천 달러의 삶 - 해외입양 잔혹사’ 편

아동 입장에선 인생이 뒤바뀌는 일인데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않나요?

이 PD : “당연히 안 되는 일인데 그렇게 많이 했다는 게 문제입니다. 아예 다른 이름으로 입양된 사례자로 토냐 씨가 나왔는데, 덴마크에서 만난 또 다른 분도 정확히 똑같은 사례로 알고 보니 진짜 자기는 다른 분이었다더라고요. 근데 그분들 모두 자기 입양 서류에 적힌 이름과 생년월일 대로 30년을 살아왔으니까 그대로 살 수밖에 없거든요. 뒤늦게 사실을 알았고 그러니까 그분들 입장에서는 정말 기가 막힌 이야기죠.”

당시 홀트아동복지회 회장 만나셨는데?

이 PD : “딱 그분이 방송에서 한 말 그대로예요. ‘자기는 그때 실무를 담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른다. 또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이민 정책에 의거해 법 절차대로 지켜가면서 다 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나갔으니까 잘 된 사람들이 더 많고, 그중 몇 명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니냐’란 식으로 대답하셨죠.

저는 그런 인식을 가진 분들이 너무 중요한 자리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던 것 같기도 해요. 입양은 아주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이 성장할 거라는 생각을 안 하고 그렇게 일들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과거 그들이 한 일에서 이런 결과를 나왔다고 얘기했을 때, 사과하거나 아니면 뭔가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고 인정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거든요. 그 부분도 너무 화가 나는 거죠. 이 입양인들은 그러면 자기 삶이 이런 식으로 망가지고 잘못됐지만 아무한테도 그 책임을 물을 수가 없는 거잖아요.”

취재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이 PD : “이게 결국 사람들 인생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사실 프로그램 시작할 때 제작진에서 ‘휴먼 다큐’ 같은 느낌으로 나올 것이라 예상했고 저도 그런 부분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희가 자료조사하고 기관들 쫓아다니며 취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사람들의 사연과 삶이 설득돼야 하잖아요. 그 부분이 제일 어려웠던 것 같아요.”

임 PD : “프로그램 보는 사람들이 공감하려면 일단 저부터 그분들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 과정이 그렇게 쉽진 않았어요. 저도 해외입양인과 입양인들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요. 근데 일주일 동안 거의 붙어 있으면서 이야기 듣고 또 나누다 보니 그런 어려움들이 해소가 됐습니다.”

KBS 1TV 〈시사 직격〉 ‘3천 달러의 삶 - 해외입양 잔혹사’ 편
KBS 1TV 〈시사 직격〉 ‘3천 달러의 삶 - 해외입양 잔혹사’ 편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을까요?

임 PD : “일단 한국의 입양사 자체에 대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입양인의 인권이라는 게 결국 아동 인권과 관련 있는 것 같아요. 아직 입양인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건 우리나라의 아동 인권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낮다는 점과 연관돼 있는 것 같아서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됐던 방송이었고요. 시청자분들도 입양인들 혹은 입양 아동들에 대해서 우리가 너무 무관심하고 무지하지 않았는가 돌아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 PD : “사람들이 잘 기억하지 못해도 해외입양인 관련 방송이 수십 년간 꽤 많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전 방송과 어떻게 다르게 만들어야 될까 고민이 컸는데, 그래도 저희 문제의식에 많이 공감해주시고 다르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었던 것 같아서 그 부분은 보람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이 방송이 큰 힘을 발휘하긴 어렵겠지만, 지금 입양인들이 내고자 하는 목소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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