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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교 전 친일진상규명위 전문위원 "간도특설대, 악명높은 독립군 토벌대"

"해방 이후의 업적만으로 백선엽 평가할 수 있나?"

2011. 07. 01 by 곽상아 기자

▲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제61주년 6ㆍ25전쟁 기념식'에서 백선엽 예비역 장군과 인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KBS의 백선엽 미화 다큐 논란과 관련해 서민교 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 전문위원은 "해방 이후의 업적만을 반추하는 것으로는 백선엽 일생 전체의 공과를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에서 백선엽 장군의 친일 행적을 조사한 바 있는 서민교 전 위원은 30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신율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조사하는 과정에서 간도특설대에 소속됐던 사람들을 굉장히 주목했다. 간도특설대는 특수부대로서 굉장히 악명을 떨쳤던 독립군 토벌대"라며 이 같이 밝혔다.

서민교 전 위원은 "백선엽씨의 경우 정확히 말하면 만주군 장교로 '직업 군인'이었다. 본인이 스스로 자원해서 가는 것이지, 강제로 갔던 것은 절대 아니다"라며 "일제 천황에게 충성을 하는 일본군 장교가 되겠다는 꿈을 위해 스스로 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백선엽씨는 1943년 2월 간도특설대에 배속이 돼서 1945년까지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했다. 이 시기는 동북항일연군 세력들이 거의 와해된 상태였지만 활동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43년 당시 간도특설대에 대규모 탄압, 토벌과 같은 전쟁행위를 수행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 전 위원은 "저희들이 '친일행위를 했다'고 판정하는 기준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특별법 가운데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소위 이상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가 있는 자'다. 태평양 전쟁이라고 불리는 전쟁도 궁극적으로는 일제의 침략전쟁이었다고 볼 수 있고, 여기에 관여하면 '친일행위'"라고 분명히 했다.

서민교 전 위원은 백선엽 장군이 일본에서 출판한 회고록에서 간도 특설대 활동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고 전했다.

"우리들이 추격했던 게릴라(항일독립군)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주의주장이 다르다고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서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 이제 오랑캐를 통해서 오랑캐를 제압한다고 하는, 이이제이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전력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다면 독립이 빨라졌다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이에 대해 서민교 전 위원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라고 하는 당위론적인 논리 전개다. 이것은 우리들이 역사적 사실을 명확하게 적시하는 데 있어서는 채용할 수 없는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서 전 위원은 "2005년부터 2009년까지 특별법을 만들어서 위원회가 활동을 했으나, 실제로 저희 위원회가 활동할 당시 '친일파'로 규정했던 사람의 숫자는 굉장히 소수다. 천여명 정도 밖에 안 된다"며 "그랬던 이유는 '역사적 청산 작업을 통한 민족화해'라는 화두에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직 완벽한 (친일역사) 청산은 되지 않았다. 정부가 다 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민간이나 학계에 위임하거나 부탁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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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1-07-02 20:07:20
그냥 니가 전쟁나면 너가 니목숨걸고 저렇게해봐. 아마 너는 너살길 찾기 바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