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징배제'가 PD수첩·추적60분·그알에 미칠 영향은
한국PD연합회장 "지금도 1년 내내 언중위 가는 게 일" 국경없는기자회 "한국 언론, 정치인·관료·대기업 압력 직면"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장 "언론이 감수할 일, 시민은 공감 안 돼" 건설노조 국장 "건폭몰이·양회동…'언론 권력' 유념해달라" 세움 연구위원 "민주당 법안도 없이 속도전…정당화 어려워"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더불어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가 추진하는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시행되면 MBC 'PD수첩', KBS '추적60분', SBS '그것이 알고싶다' 등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정치·자본 권력의 봉쇄소송에 시달려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또 민주당 언론개혁특위가 처리시한을 못박고 사회적 숙의 없이 펼치는 입법 속도전을 멈춰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언론현업단체들은 시민의 언론 피해는 적극적으로 구제하되 권력자의 입막음 소송은 차단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은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허위조작보도 배액 배상제'를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편에서 언론도 권력이라는 점에서 혐오에 가까운 허위조작보도를 차단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1일 언론개혁정책집단 '세움'은 서울 중구 뉴스타파 리영희홀에서 <언론개혁vs언론자유 징벌적 손배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의 토론회를 개최했다.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아직 법안 형태로 제출되지 않았다. 다만 허위조작정보·보도의 기본 손해액을 정하고, 고의·중과실 정도에 따라 배액 배상을 적용하고, 인용·매개에 따른 파급력에 따라 할증을 붙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민주당 언론개혁특위는 정치·자본 권력의 봉쇄소송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언론중재위원회를 내세우고 있다. 정치·자본 권력은 언론에 배액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무조건 언론중재위원회 조정 신청 절차부터 밟아야 하며 언론중재위가 각하·기각·직권조정 결정을 내릴 경우 이를 수용해야만 한다는 내용을 법안에 담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공공의 이해와 관련한 보도에 대해서는 중간판결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PD수첩·추적60분·그알 PD들, 언론중재위 불려가는 게 일"
토론 패널로 참석한 김재영 한국PD연합회장은 현재도 탐사프로그램 PD들이 권력에 의한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며 국경없는기자회(RSF)의 세계 언론자유지수를 거론했다. RSF가 수년째 "한국의 언론 매체들은 정치인, 정부 관료, 대기업의 압력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한다는 것이다. 김 연합회장은 "언론중재법이 통과된다면 언론자유지수가 내려갈 확률이 매우 높다. 이재명 정부에서 언론자유지수가 내려가도 되나"라며 "언론현업단체는 시민에 대한 피해구제는 찬성한다고 지속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구분해서 토론해야 한다"고 했다.
김 연합회장은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을 둔다고 한다. 언론사가 익명 제보자가 있어 자료제출이나 증명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며 "법원은 이미 자료제시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언론이 디테일하게 보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 판결이 언론사에 박하게 나오는 경우는 지금도 굉장히 많다"고 했다.
김 연합회장은 "PD들은 소송에 걸릴 위험에 더해 심할 경우 범죄자들에게 살해 위협을 받고도 사명감으로 보도를 하고 있다"며 "KBS·MBC·SBS에 이런 탐사보도를 하는 PD들이 많은데, 그나마 이런 방송사는 자본이 있으니까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은 방송사와 언론사들은 아예 상상도 하지 못한다. 탐사보도 하는 PD들이 전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반대하는 이유"라고 했다.
김 연합회장은 "'PD 수첩' '추적 60분' '그것이 알고싶다' CP(책임 프로듀서)들이 하는 일은 1년 내내 언론중재위에 가는 것"이라며 "여기에 언론중재법을 더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겠냐고 우려하는데, 이것을 반대하면 '언론개혁의 적'이라고 한다. 'PD 수첩' '추적 60분' '그것이 알고싶다' PD들이 어떻게 언론개혁의 적인가"라고 했다.
이에 김준현 변호사(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장)는 "언론현업에 계신 분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시민들에게 그 목소리가 절절하지 않다"며 "미국에서 공직자에 대한 탐사보도를 해서 진 적이 거의 없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현실적 악의'를 입증하지 못한다. 입증이 굉장히 까다롭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지금 민주당이 (입법 추진)하는 것도 똑같다. '중과실'을 뺀다고 가정하면, '현실적 악의'는 '고의'와 거의 같은 개념인데 원고 측에서 입증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면서 "전략적 봉쇄소송 때문에 공직자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청구 주체에서)제외해야 한다는 논리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에서 공직자에 대한 비판적 보도에 손해배상이 적용되려면 '현실적·실제적 악의'(actual malice)가 입증되어야 한다. 이때 입증 책임은 원고, 즉 공직자에게 있다는 게 미 연방대법원의 결정이다. 미국은 1964년 '뉴욕타임즈 대 설리번' 사건 판결을 통해 이 같은 원칙을 세웠다. 민주당 언론개혁특위가 추진하는 언론중재법은 허위조작보도의 고의·중과실 입증 책임을 일부 전환하는 방안을 담고 있어 미국과는 차이가 있다.
김 변호사는 "공직자로부터 소송이 제기되면 언론계는 업무상 위축효과 때문에 많이 부담스러워하는데, 저는 언론계뿐 아니라 이 사회에서 각자 자기 역할을 갖고 일을 하는 분들은 누구나 한 번은 감당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한다"며 "시민들에게 '책임 크게 질 위험성 때문에 취재·보도 안 할 거야' 물어보면 당연히 '감수하고 해야 한다'고 답할 것"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언론계가 위축효과에 대해서는 조금 더 설득력 있는 논리를 개발해 주었으면 한다. 시민들 입장에서는 공감이 안 된다"며 "4년 전 민주당 법안에서 공직자는 제외를 했고, (배액 수위는)5배였다. 그때도 언론계는 반대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언론은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사회적 책임 강화가 무조건 싫다라고밖에 안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재영 PD연합회장은 "기업·정치인들은 이미지로 먹고 살기 때문에 무조건 소송을 건다. '봉쇄적'도 아니고 (언론이)잘못을 하든 안 하든 무조건 거는 게 '국룰'"이라며 "제가 '불만제로'라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삼성 세탁기가 10kg짜리와 12kg짜리 엔진이 똑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명백한 사실이 있는데도 무조건 (소송)건다. MBC는 소송 비용 대느라고 돈을 써야 한다"고 했다.
김 연합회장은 "MBC·KBS는 현재 방송을 만들면 만들수록 적자인데, 소송비용 계속 드는 방송 상품을 만들면 경영자가 돈을 벌 수 있겠나. 돈 안 되는 프로그램을 없애는 것이 현실적인 두려움"이라며 "사람은 사명감만 가지고 사는 게 아니다. 당장 자기한테 위해가 가해지면 움츠러드는 게 인간"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 '건폭몰이' 동조한 언론도 권력이다"
김준태 건설노조 교육국장은 시민에게 언론의 고의적 혐오 보도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국장은 윤석열 정부 시절 건설노조에 대한 정치권력과 언론의 '건폭몰이'를 구제받을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 국장은 "양회동 열사와 관련해 조선일보의 보도, 월간조선의 유서대필 보도가 있었다. 당시 건설노조가 체감하기에 권력은 누구였는가, 언론이 권력자였다"며 "타워크레인 월례비와 관련해 원희룡 (전 국토부)장관 등과 함께 '노동자들이 돈을 갈취하고 있다'는 보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당시 마침 광주고법에서 '월례비는 임금 성격으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 나왔지만 판결에 대한 보도는 전체 월례비 보도에서 1%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김 국장은 "양회동 열사에 대한 허위조작보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언론중재위를 통하지 않고 경찰에 고소했다. 언론중재위는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고, 조선일보 보도는 악의적 의도를 가진 명백한 혐오보도였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경찰이 사건을 무혐의 처리했다. 경찰조차 조선일보와 해당 기자에 대해 '허위사실이 아니고 명예훼손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무혐의 처리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관련기사▶경찰, 조선일보 '분신방조 허위 보도' 무혐의…"언론권력에 면죄부")
김 국장은 "해당 기자는 취재활동을 했다는 진술만 할 뿐 구체적으로 어떤 취재와 과정을 통해 그런 기사가 나가게 됐는지 밝히지 않았다"며 "언론 현업에 계신 분들은 취재원을 보호해야 하는 입장이 있고, 취재원을 통해 어떤 정보를 확보했는지 낱낱이 밝힐 수 없다는 데 대해 공감은 하지만 저희 사례와는 충돌되는 지점이 있다"고 했다.
김 국장은 "꼭 노조가 아니더라도 일반 시민이 이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시민의 입장에서 언론도 권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달라"며 "양회동 열사 보도가 있기 전까지는 언론이 중립적일 수 없고 이해관계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노조에 부정적인 보도가 나와도 그러려니 이해하려는 편이었다. 건폭몰이와 양회동 열사 관련 선 넘는 혐오보도가 이뤄진 데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고민할 지점이 있다"고 했다.
"처리 시한, 국민이 정한 바 없다"
발제를 맡은 이강택 '세움' 연구위원(전 TBS 대표)은 민주당 언론개혁특위의 '속도전'을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민주당 언론개혁특위는 '언론계와 언론학계, 시민사회 여러 분야의 단체와 종사자들을 만나 설명하고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고 했으나 그 폭과 깊이, 공개성과 투명성에는 아쉬움이 매우 크다"며 "공언했던 처리 시한에 쫓겨 발의된 법률안을 두고 제대로 숙의할 수 있을지 극히 의문스럽다"고 했다.
이 연구위원은 2021년 민주당이 입법 드라이브를 걸었던 언론중재법 개정안도 법안 발의 2개월 후에 상임위를 통과했다며 "언론중재법 개정 법률안이 조기에 제출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준비 부족인가 아니면 의식적 논란 회피인가?"라고 꼬집었다. 이 연구위원은 "어느 쪽이든 과소한 여론 수렴과 혼돈을 초래하는 난맥상, 다급한 민생법안처럼 밀어붙이는 속도전은 정당화되기 어렵다"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표현의 자유와 밀접히 관련된 사안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처리 시한은 민주당이 정해 놓은 것이지 국민이 정한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민주당 언론개혁특위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미국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제 법리에 ▲공공의 관심 사안에 관한 토론은 제한없이 폭넓게 공개되어야 하며 정부와 공인에 대한 신랄하고 날카롭고 종종 인내하기 어려울 정도의 날카로운 공격을 포함한다(Public Figure) ▲공인이 언론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에는 언론인이 보도 내용이 허위라는 사실을 알았거나 진실을 무모하게 무시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Actual Malice)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허위사실의 보도도 어느 정도 보호되어야 한다(Breathing Space) 등의 원칙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 연구위원은 '정치·자본 권력도 배액 손해배상 청구를 할 자격이 있다'는 논리에 대해 "'100% 진실이 아니면 말하지 말라'는 규칙은 그 사회의 숨 쉴 공간(Breathing Space)을 죽이고 궁극적으로 사회의 건강한 지속을 해친다"며 "권력층이 입은 피해를 구제하는 과정에서 그 사회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했다.
이 연구위원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킴으로써 가장 큰 이득을 누리는 자는 트럼프나 윤석열 같은 파시스트들"이라며 "설사 권력층들이 입은 언론 피해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 흉포한 미디어들로부터 피해를 본 우리 사회 곳곳의 사회적 약자들의 피해 구제보다 우선 순위일 리도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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